지금까지는 중국이 우리의 상고사를 폄하하고 아예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없고 위만 조선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도 자기들의 변방국이며 자기들의 역사에 속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성립한다. 근자에 와서 중국 고고학자들의 유적 발굴조사에 근거를 두고 7,200년 전에 심양을 중심으로 신락문화(新樂文化)가 존재하고 신석기시대에 심양에는 심양인(瀋陽人)이 번성하고 있었다는 설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중국 중원의 한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녹우당(고산 윤선도의 생가)과 보길도는 내가 꼭 가보고 싶어 한 곳 중의 하나이다. 그곳은 고산 윤선도의 문학과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고장이며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해남과 보길도 여행이다. 몇 번이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 때 마다 이런 사정 저런 이유로 기획이 무산 되었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청승맞게 혼자 덜렁 떠나기란 싱겁고 어려운 일이다. 좋은 곳일수록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떠나 같이 고적을 답사하고 경치를 구경하고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먹
[1L]8월에 접어들면 자영업을 하는 곳은 일반적으로 여름휴가를 시작 하는 시기인데도 시내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다.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청자 보물선 특별전’을 보기 위하여 길을 나섰는데 자동차 물결로 너무 혼잡스럽다. TV을 통해 수많은 차들이 여름휴가로 고속도로를 빠져 나갔는데도 서울거리는 차들로 여전히 생지옥 이다. 차를 경복궁 주차장에 넣을까 생각하고 가니 차들이 꼬리를 물고 끝이 안 보인다. 두 바퀴 P 턴을 하다가 할 수 없이 나만 고궁 매표소 입구에 내려놓고 큰사위는 인사동에 자기 볼일이
[1R]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09년 4.28~8.30일까지 ‘파라오와 미라 전’을 기획 전시한다고 지면을 통하여 알고 있다. 마침 오늘 5월 5일 어린이날을 이용하여 가보기로 하고 큰 사위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이 연휴라고 하지만 박물관은 한산 할 것이라고 나와 큰 사위는 가면서 이야기했다. 더구나 미라 전시회라고 하면 어린 아이들 보기에 살벌할 것 같고 어린이 공원이나 유원지 등이 북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이 박물관 가까이 와서야 예상이 빗나간 것을 알았다. 평일 그렇게 한산하던 주차장에
오랜만에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기왕에도 이곳에서 전시되는 미술작품은 거의 빠짐없이 관람했다. 여기가 시내 한복판인데다 미술전이 아니라도 고궁의 정서가 나를 자석처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미술전을 보고 난 후에는 으레 고궁 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역사의 현장이 주는 경외감과 신비감에 흐뭇해서 그렇다. 그게 이제는 버릇이 되어 있다. 하기야 외국인들도 한국에 오면 여기가 관광 필수코스가 아닌가. 한동안 이 덕수궁 앞에 작고한 전임 대통령의 노상 빈소가 차려져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껏 소용돌이 마당이 되어 있어
오랜만에 서양 미술전을 보게 되었다. 주로 미술전은 학생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여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전에 가면서 ‘벌써 여름방학이 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유별나게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전국이 찜통이라고 기상대에서 연일 방송이다. 서울은 오전인데도 한증막이다. 7월 4일 토요일, 역시 전시장은 학생들로 붐빈다. 입장료는 대인은 12,000원인데 경로는 무료다. 그런데도 노인 관람객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나만 학생들 틈에 끼어 밀려가며 감상했다. ‘노인들은 주중에 오
[1L]장 뒤뷔페가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선 것은 불혹의 나이, 41세였다. 당시 뒤뷔페는 프랑스의 아브르 지방에서 성공한 포도주 상인으로 순탄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화가의 꿈을 버릴 수 없었고 결국 늦은 나이에 새 인생을 결심했다. 뒤뷔페는 독학으로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까지 입성했지만 입학 후 6개월 만에 학업을 포기하고 1925년 아버지의 와인 사업을 이어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묶어놓은 끈들이 있었는데, 이 끈들은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그것이 나의 완전한
[1L]컨테이너 갤러리 얼마 전 방송을 통해 매우 흥미 있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종이로 만든 미술관이 개관을 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특정 전시를 위한 행사의 하나로 그저 종이로 만든 미술관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화재와 궂은 날씨에도 끄떡없고, 그 규모도 세종문화회관에 맞먹는 초대형 미술관이란다. 이 소식은 대번에 필자의 관심을 끌었고 시간이 나는 즉시 전시장을 찾았다. 종이로 만든 미술관으로만 알고 갔던 페이퍼테이너 미술관은 사실 종이와 더불어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미술관이었다. 그래서 미술관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