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지녔던 하나의 고유의 심리적인 특성으로 그것은 죽음이 영원과 어떻게 연결 될 것인가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죽음을 의식한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고대인들이 지녔던 신앙행위는 자연숭배에 기초한 애니미즘(aminism 유령관 有齡觀)의 형태로 싹트게 되었으며, 이것이 점차 일상생활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불안 심리는 생활에서 생겨나는 길흉사에 대해서 이를 미리 점쳐 보려는 심리로 발전되고,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이익 추구의 소망기원을 목적으로
사람이 어떤 대상을 노려본다는 것은 화가 났다거나 무서움을 느꼈다거나 아니면 어떤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경우 어떤 대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응시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이 상대를 노려보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일상생활과 관련되는 경우에 대해서만 기술하기로 한다. 우선 노려보기 때의 눈매와 눈길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눈의 모든 근육에 힘이 들어가 눈길의 움직임이 정지되고 고정되며 눈뜨기에 감정이 실리기 때문에 눈매는 사납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화가 났을 때 눈매와 눈길의 제일 먼저 눈에 띠는 특징은 위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바쿠스(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이탈리어 이름)가 술의 신이 된 것에는 상당한 사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출생을 알아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바쿠스는 제우스와 그의 애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정실인 헤라는 남편의 아이를 낳을 ‘시앗 세멜레’를 파멸시킬 한 가지 묘안을 짜내, 마침내는 눈 깜빡할 사이에 타 죽게 하였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몸에서 아기 바쿠스를 꺼내어 자기의 허벅지에 넣었다가 달수가 차자 이를 꺼내어 인도의 뉘시산의 요정들에게 맡겼다. 이 뉘시산의 요정들은 바쿠스를 맡아 길렀다. 바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69)는 1632년부터 이듬해까지 1년 사이에 초사화만 약 46점을 그려냈다. 그는 초상화 한 점에 500굴덴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금액은 당시 한 상인이 1년을 장사해서 벌 수 있는 액수였다고 하니 그는 화가로서 거부가 된 셈이다.렘브란트는 그의 후원자이며 화상이었던 헨드리크 반 웰렌부르흐의 집에 살면서 이 집의 조카딸인 사스키아라는 처녀에게 완전히 반해 버려 청혼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그녀는 고아였는데,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우리에게 미소로 손짓하곤 한다. 화창한 봄날에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힘입어 활짝 피어나는 꽃들은 확실히 봄의 미소이다. 이렇게 봄의 미소, 꽃의 미소라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꽃의 여신 ‘플로라(Flora)’다.이러한 봄과 꽃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은 이탈리아의 화가 보티첼리(Sundro Botticelli, 1444~1510)이다. 그의 작품 ‘봄 (La Primavera, 1482)’에 나오는 식물은 무려 500여종으로 봉오리를 펼친 꽃송이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는 북(北)프랑스의 카토에서 출생 되었다. 마티스는 원래 파리에서 법학(1887년 - 1889년)을 공부하였는데 1890년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파리로 나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1892년에는 파리의 장식미술학교에 적을 두고, 미술학교의 수험준비를 하였으며, 또 아카데미 쥘리앙에서는 부그로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아카데믹한 가르침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모사(模寫)에 힘쓰고 있었다, 그
옛 부족사회에서 코는 ‘혼(魂)이 다니는 길’로 생각해 매우 중요시 하였으며 아직도 이런 생각을 믿고 있는 증거로 영국에서는 재채기를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신의 가호가 있기를!’하고 말해 재채기를 통해 지녔던 혼의 일부가 콧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인사로 되어있다.이렇게 코의 기능을 중요시 하였으며 또 코에는 그 사람의 감정이 표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눈이나 입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기는 하나 코에도 얼굴 전체에서 보는 것과 같은 표정을 나타내는 근육이 있어 나름대로의 표정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전기 작가인 바자리(Giorgio Vasari 1511-74)는 자기가 쓴 ‘르네상스의 미술가 열전’(1568)에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미술의 절정에 이룬 화가는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라고 두 화가를 극찬하며 앞으로도 이들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화가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후배화가들은 이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했다. 기존화가의
[1L]▲ 스텐비크 작: ‘정물 ; 바니타스의 알레고리’(1640) 런던, 국립 미술관중세 이전의 옛 사람들은 죽으면 ‘호모투트스’라 해서 몸과 영혼이 한 덩어리 되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있게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으로 고통 받고 죽음이 다가와도 그것을 겁내지 않고 저주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이를 맞이하였다. 죽음에 대한 개념은 개인 또는 조상의 죄에 대한 신의 벌로서 또는 악마의 유혹에 의해서 병이 생기고 죽는 것으로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 상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있다는 것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다른 나라의 국립미술관과 같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세계적인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자기네 나라의 미술 작품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회화 부분에 있어서는 15세기에서 17세기의 작품을 주로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것은 17세기가 네덜란드 국력의 황금 시대였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시기에 렘브란트를 위시한 여러 명의 거장이 출현하여 세계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 네덜란드 회화의 발전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1L]말셀 뒤상 작: 'LHOOQ복제', 1919, 필라델피아 미술관한달 후에는 돌아온다던 마르케스는 석 달이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 그 사이에 경찰은 루브르 박물관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면서 페르지아나 란체로티 형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사를 받았으며 가택수색까지 받았으나 무난히 넘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장차 도난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즉 장물아비에게 팔아넘길 것인지 아니면 루브르 당국과 교섭하여 그림 값을 받아낼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어 조바심이 가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한편 미국으로 간 마르
[1L]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모나리자'1503-05. 파리, 루브르 박물관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천재적인 사기꾼 마르케스와 마르세이유 출신의 천재적인 그림의 복제 기술을 지니고 있는 이브쇼트롱의 두 사람은 스페인의 명화를 복제하여 이를 파리의 사교계를 통해 마치 원작의 도난품으로 속여 거액의 돈을 벌었다.마르케스가 이번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그림 ‘모나리자’(1503-05)의 복제를 부탁했는데 그것도 무려 6장이나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부탁을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