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메디에세이] 염증보다 깊은 상처

종기에 대한 창피한 기억들

  • 입력 2003.03.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험문제로 나온 당시 대통령의 이름을 잘못 썼다고 하얀 눈밭에 코피 묻히도록 야단맞았던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남성호르몬만큼은 어른들 못지 않았었는지, 또래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음모까지 거웃거웃 자라났었던 터라 동네 형들에게 괜한 놀림을 많이 받았었던 암울했던 시절의 어느 날, 나의 배꼽과 은밀한 부위 사이엔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다름 아닌 "종기"라는 기운(?). 부모님께 알리고 싶었지만, 거웃거웃 한 그것(?) 때문에 바지를 까 보이기 싫어 이 좋지 않은 기운을 조금씩 키워나갔고 마침내 그 기운은 스스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는데... 어머니에게 소아과로 연행된 나는 종기의 아픔보다는 단골 소아과인 탓에 간호사누나들과 원장님 모두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과 항상 마주칠 수 있었던 우리학교 친구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날따라 유난히 반겨주는 간호사 누나들, 바지를 내렸을 때 더 밝아지는(?) 그들의 표정과 "○○야 무슨 일로 왔니"라며 진료실을 들락거리는 우리학교 친구들 덕에 아픔은 잊은 채 눈물만 뚝뚝 흘렸던 그 날 이후 내 별명은 거의 "털"이란 단어와 결합되어 생산되기 시작했으니...이런 혹독한 창피함을 겪은 내가 동료의 오해에 주눅들리 없다. 이번에 종기가 난 자리는 벌써 5번째 같은 자리에 생겨나는 지독한 녀석이다. 집에서 혼자 고약이라도 발라 볼까 하다가도 거울을 보며 고약을 붙이려 애쓰는 내 모습(매우 아방가르드한 자세가 나올 것으로 예상)이 싫어져 나만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녀석이 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완전히 곪아버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딱딱한 의자에 콱 앉아버리는 방법이 바로 그것. 위치도 절묘하게 엉덩이 곡선 꼭지점에 자리잡아 효과는 만점이다. 더러운 얘기하지 말라고? 어느 덧 식사시간이다. 오늘도 이 녀석을 키우기 위해 피해야 할 음식을 잔뜩 먹어줘야겠다. 맛있는 식사되시길...
절종(종기, 뽀드락지, 부스럼)이란? 절종은 모낭 주위 조직 깊숙이 급성으로 염증이 생긴 경우를 말하는데, 주로 포도상구균이 모낭 깊은 곳에서 염증을 일으켜 발생하게 된다.임상적으로는 털(모낭)을 중심으로 단단하고 통증이 심한 붉은 색 결절이 생기는 질환인데, 한 개만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종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생기거나 수 주 내지 수개월간 걸쳐서 지속적으로 생기는 경우(절종증)도 있다. 그리고 절종이 2개 이상 서로 모여서 보다 크고 깊게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런 심한 형태의 화농성 염증을 옹종이라고 한다. 몸 어느 부위나 다 생길 수 있지만 목 뒤나 겨드랑이, 엉덩이, 배, 허벅지에 잘 생기며, 당뇨나 면역결핍,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경우 잘 생기므로 이런 사람은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약물 치료로 대부분 효과를 보지만, 염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는 절개하여 농을 제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