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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물 상자를 만들어라

이소영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

  • 입력 2014.05.28 14:14
  • 기자명 이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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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심리치료 민간구호 단체인 이스라에이드(IsraAID) 요람 폴라이저 아시아지국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두고 “9.11 테러, 동일본 대지진 때보다도 세월호 피해자들의 분노와 죄책감이 더 큰 거 같다”고 언급했다. 이전 테러나 재난은 불가항력적인 면이 컸지만 세월호 사건은 인재로 인한 참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4.16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리는 것처럼 세월호 사건이 주는 심리적인 외상은 비단 피해자 가족과 그 주변사람들에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앵그리 맘(angry mom)’이라고 불려지는 4·50대 청소년 아이를 자녀로 둔 여성들을 비롯, 전 국민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필자와 같이 예술치료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책무는 더 무거워짐을 절감한다.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매체가 ‘집단 무의식’처럼 사회 공동체에 깊게 각인되는 심리적 외상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음악치료사나 미술치료사가 아니더라도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전문예술가들에게도 비슷한 고민과 과제를 안겨주는 듯 하다. 주위의 동료 예술가들을 보면 내가 하는 음악이, 예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힘과 위로를 줄 수 있는지 예술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각종 추모행사 추모곡 발표, 정신적 외상 다루는 치유적 방법 중 하나

세월호 사건 초반에는 모든 예술 행사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줄줄이 취소되었다. 이는 어찌보면 상중에 있는 가족들이 상을 치르는 동안 모든 일상 활동을 끊고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 집중하는 것과 같다. 온 국민이 상중에 있는 상주처럼 이번 사건을 동일시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애도의 물길은 이제 각종 추모 예술제나 추모곡 발표 등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예술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례로 대중음악가 김창완의 ‘노란 리본’을 필두로 많은 대중음악인들이 세월호 관련 추모곡을 발표하고 있다. 또 애초에 계획되었던 예술행사도 이제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대신에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유가족에 대한 슬픈 마음을 함께 한다는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베버의 ‘마탄의 사수’ 오페라를 보러 갔었는데 뜻 밖에 본 공연의 시작에 앞서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오케스트라 곡(이건용 작 ‘기억하소서’)을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외에도 각종 음악회나 예술제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와 추모를 표현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치료적 관점에 보더라도 매우 적절한 시도라 여겨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이 갖는 심리적 외상의 특징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캡슐 안에 갇힌 것처럼 계속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있다는 데 있다. 이에 비해 건강한 상태에서는 우리의 기억이 매번 재구성되고 다르게 해석되면서 내적 성장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과정 속에 과거의 기억은 통합된다.

정신적 외상·슬픔 외부로 끌어내 충분히 표현하고 지지받고 공감받는 과정 필요

그런데 정신적 외상을 이루는 기억은 이러한 재구성과 변형을 이루지 않은 채 캡슐 안에 있는 약처럼 고정된 이미지로 반복되어 재생산되면서 미해결된 상처로 남는다. 캡슐화된 외상적 기억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적 외상과 슬픔을 의식의 내면에 가두지 않고 외부로 끌어내어 충분히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지지받고 공감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추모행사나 발표되는 추모곡들은 ‘자기표현’과 사회적 ‘공감’을 통해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정신적 외상을 다루는 치유적 방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예술행사나 추모 퍼포먼스에 다 동참하기는 어렵다. 막상 일상의 삶에 쫓겨 슬픔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은 애써 억누르고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그림·사진 등 담은 보물상자 만들기 치유에 큰 힘 돼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평소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나만의 보물상자를 만들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동물, 그림, 소도구, 연예인이나 가족 사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나도 모르게 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종의 보물상자 목록을 만들고 이를 스마트 폰이나 서랍같은 곳에 보관한 뒤 한번씩 그 보물상자를 꺼내어 보고 듣고 한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요사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슬플 때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이다. “어떤 음악이 보물상자에 들어갈 보물인가요?”하는 질문과 같다. 보통은 클래식의 어떤 작품을 기대하며 묻는다. 그러나 한번 들으면 모든 이들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특정 음악은 없다. 그보다는 음악을 선택하는 원리나 원칙이 더 중요하다.

음악치료에서 음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 되는 원리는 ‘선호도’와 ‘동질성’의 원리이다. 선호도의 원리란 자신이 좋아하는 곡, 장르, 가수 등 평소 선호하는 음악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은 소음 공해이며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킬 뿐이다.

평생을 트로트로 살아오신 어르신에게 브람스의 레퀴엠을 들려드린다고 생각해보라. 익숙하지 않은 음악에 어떤 정서적인 반응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동질성의 원리랑 자신의 현 심리 상태와 컨디션, 에너지 레벨에 가장 일치하는 분위기의 음악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저음역대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되는 차분한 분위기 음악 우울할 때 효과적

우울하거나 정서적으로 다운되어 있을 때 빠른 템포의 흥겨운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더 소외감만 느끼게 한다. 이보다는 중간 빠르기나 느린 음악, 혹은 저음역대에서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되는 차분한 분위기의 음악을 찾아듣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전문가의 개입이 없더라도 선호도와 동질성이라는 음악 선택의 원리는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보물상자’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눈물젖은 두만강’이, 어떤 이에게는 스팅의 ‘fragile’이, 어떤 이에게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바로 그들을 치유하는 보물상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보물상자의 목록을 많이 만들수록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기가 용이해진다. 오늘 당장 그 목록을 만들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