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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초기발견, 과연 문제가 될 수 있나!

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장항석 교수

  • 입력 2014.06.10 16:09
  • 기자명 엠디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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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갑상선암의 진단에 대한 논란으로 의학계는 물론이고 환자들에게도 큰 혼란이 생겼다.
논란의 시초는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보이는 일련의 주장들에서 출발되었다. 그동안의 과정들을 대략적인 시간 순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중요 일간지인 C일보에 어느 여교수란 사람의 한 예를 들어 일본의 의사들과는 달리 한국의 의사들이 무조건 갑상선 수술을 권한다는 기사가 났다.
▲역시 일간지 D일보에 KDI라는 정부기관의 윤 모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의사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과도한 검사를 해서 갑상선암이 늘고 있으므로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는 것만이 대비책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 기사가 실렸다.
▲소위 8인 연대란 사람들이 나서서 온갖 매체들을 통해 한국의 갑상선암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데 사망률은 제자리이고, 이것은 과잉진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과도한 검진을 하지 말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와 연관된 주장들 중에 갑상선암은 그냥 놔두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데 괜히 진단해서 일 년에 4만 명에 가까운 사람을 암환자로 만들고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들이 여러 매체에 보도 되었다.
▲이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국립 S대의 허 모 교수는 심지어 2cm미만의 갑상선암은 암이라 분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제 그들의 논리는 한발 더 나아가 갑상선암을 과도하게 진단해서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며 경제적인 해악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주장들을 한 사람들은 다 가정의학과나 예방의학, 또는 혈액종양내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심장내과, 약학과를 전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전혀 갑상선암전문가라고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서 마치 집단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처럼 포장되었다. 그러나 직접 갑상선암을 치료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경제적 효율, 과연 옳은가?

우선 가장 중요한 논란인 과잉진단인지 여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갑상선암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 그리고 30년 전과 비교하여 30배가 넘는 발생률을 보이는 반면, 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으므로 이것은 전형적인 과잉진단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실, 학술적으로 과잉진단이란 개념을 설명할 때 바로 이런 형태가 가장 대표적인 모양인 것은 맞다. 그리고 최근 들어 초음파 검사가 많이 시행되면서 갑상선암의 발견이 늘어난 까닭이란 말도 맞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뭔가를 잘 모르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전 한국은 갑상선암이건 다른 암이건 초음파로 진단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초음파 기계는 아직 정밀하지 못했고, 갑상선암의 진단기준도 제대로 없었으며 너무나 비쌌기 때문에 국민들이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최근 들어 초음파 검사가 정교해지고, 검사 자체가 저렴해졌으며, 국민들의 관심도가 증가하여 초음파 검사를 많이 하는 까닭에 진단이 많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용이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최대 장점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암을 진단해내는 기술의 우수성이나 국민들이 편안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수준은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나라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이다.

다음으로는 요즘 갑상선암이 과잉 진단된 까닭에 불필요한 수술을 받게 되고, 그냥 두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를 끼친다고 하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갑상선암은 소위 순한 암이라 가만히 두어도 되고 증상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검사해도 늦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초음파 없이 증상이 발생했을 때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았던 과거의 치료율이나 사망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영국은 의료에 관한한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로 적극적인 진단을 하거나 소위 과잉진단을 하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 이 나라의 “Cancer Research UK"란 공식기구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1981년-1985까지 갑상선암 5년 생존율은 남자가 59.1%, 여자가 62% 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98%를 상회하는 한국의 갑상선암5년 생존율과 비교할 때 놀랄만한 결과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자료가 발표된 것이 있는데, 서울대학에서 30년간 갑상선암을 관찰한 결과 1990년 이전, 1990년대, 1999년 이후의 기간으로 나누어 10년 재발률은 각각 36%, 29.5%, 7.6%로 나타났으며, 이것은 조기 진단이 이루이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치료성적이 급격히 좋아진 것이다.

2013년 미국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에서 발표한 갑상선암 5년 치료성적에 대한 자료에서는 1기와 2기는 100% 치료율을 보인 반면, 3기는 93%, 4기는 51%로 감소한다. 이 자료는 초기에 치료를 하면 성적이 우수하지만 늦게 진단되어 병기가 높아지면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결과들을 보면 초음파를 이용한 조기진단이 이루어짐으로써 최근의 높은 생존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지 예전부터 갑상선암 생존율이 높았던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갑상선 암이 새로 진단되는 사람은 약 35,000명인데(2013년 중앙암등록본부발표), 대부분은 아주 천천히 자라고 예후가 좋기는 하지만 여러 자료나 문헌을 종합해볼 때 대략 10-15%가량의 사람들은 치료해도 재발하거나, 기존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거나 또는 갑상선암으로 사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갑상선암으로 위험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 숫자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해 3,500명이상이란 말이데, 과연 사회-경제적인 효율을 강조하느라 무시해도 괜찮은 사람 숫자라 할 만할 것인가?

증상 나타나면 이미 늦은 상태, 수술 성공률 장담 힘들어

다음으로 그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일본의 정책이란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일본은 다 갑상선암을 그냥 지켜보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작은 갑상선암을 지켜보자는 주장을 하는 기관은 Kama병원과 일본 암연구소 병원 딱 두 군데뿐이다. 다른 유수한 병원인 Noguchi 병원이나 Ito 병원, 그리고 모든 대학병원에서는 이들의 주장에 철저히 반대한다. 하지만 이 두 병원도 갑상선암이 1cm미만이라 할지라도 피막침범, 림프절전이, 원격전이가 있으면 당연히 수술하고 암의 위치가 기도나 식도, 목소리 신경등과 근접해 있으면 역시 처음부터 수술을 권유한다.

1993년부터 Kuma병원에서는 이런 위험이 없는 1,395명에게 수술을 할 것인지, 정기적으로 살펴볼 것인지를 선택하게 했고, 이에 1055명은 즉시 수술을 받았고, 340명은 관찰을 원했다고 한다. 추적관찰 그룹은 중간에 6개월에서 1년 간격으로 관찰을 하되, 병이 진행되면 수술을 하는 원칙이었으며, 환자가 중간에 나빠져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받고 진행을 했다. 2010년 중간보고를 했는데 이들 중 109명(32%)은 병이 진행해서 수술을 받았고, 209명(68%)이 관찰 대상으로 남았다고 한다.

최근 이들을 만나 이야기한 결과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대략 40%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 연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즉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의 모든 병원이 지켜보자는 정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아니란 것이다.

증상이 있는 경우나 손으로 만져지는 경우에나 검사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갑상선암은 특유의 증상이 없는 암이다. 크기가 아주 많이 커져서 주변에 있는 기도나 식도, 성대신경을 침범했을 때에야 비로소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1cm 정도의 작은 갑상선암을 만져서 진단을 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확률이 5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주 커졌을 때에야 비로소 만져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미 너무 늦어서 치료가 아주 힘들고 치료 성공률도 매우 낮아지는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2cm 이하는 암도 아니라는 주장에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그 주장은 해부학을 배운지 너무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까닭으로 갑상선의 크기가 얼마만한지 잘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으니 말이다. 갑상선은 아무리 가장 두꺼운 곳의 폭도 2cm되기가 힘들다. 즉, 이렇게 작은 기관에 그 정도 크기까지 암이 자라면 이미 암이 갑상선 피막은 뚫고 나왔을 것은 물론이고 주변 장기들로 침범이 다 일어난 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로 2차암 생긴다는 것은 비전문적인 견해일 뿐

다음으로는 불필요한 수술로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는데, 내용은 환자들이 수술 후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고, 부작용이 생기며,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아 2차암이 늘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갑상선암 수술 후 호르몬을 복용하는 것은 암 재발을 억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초기암으로 진단되어 빨리 수술 할 경우 전절제를 하지 않게 되면서 호르몬 요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으므로 역시 조기 진압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갑상선 수술 후 부작용의 발생은 0.5-2% 수준이다. 그리고 한국처럼 수술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더 확률이 낮다. 과연 이런 부작용 때문에 암 수술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옛말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방사성 요오드 치료로 2차암이 생긴다는 주장은 너무나도 비전문적인 발언이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는 갑상선 전절제를 한 사람들만 받게 되고, 거의 대부분 총 용량 150mCi 미만으로 치료를 받는데, 림프절 전이가 심하거나 폐나 그 외 기관으로 원격 전이 등 아주 심한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저용량(30mCi) 치료만 받게 된다. 2차암이 발생하려면 대략 2000-3000mCi 이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 약간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대부분이므로 일반적인 치료용량의 대략 100배는 되어야 겨우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갑상선암 치료 중에 그들이 주장과 같이 되는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선 안 돼

다음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갑상선암으로 수술 받는 비용은 초기암일 때 수술로 인한 환자부담이 대략 100만 원가량이다. 그럼 보험공단 등 사회에서 부담하는 비용을 다 합해도 대략 300만원 남짓의 총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암이 측경부 림프절 전이가 발생하고 수술이 커질 경우에는 수술비용만 생각할 때 환자부담이나 총비용이 각각 3배정도로 증가하고, 아주 심각한 림프절 전이와 주변 기관을 침범한 경우에는 환자부담이 12배로 증가하고 총 경제적 부담은 15배에서 20배로 증가하게 된다.

더구나 초기암이 아닌 경우에는 수술 후 추가치료가 필수적이고 재발할 확률이 높으므로 2차 3차의 치료와 수술비용이 발생하여 비용은 급격이 증가하게 된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서 비교해도 작게는 열배 이상이고 심하면 몇 십 배의 비용이 더 드는 것이다. 지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단을 적게 하도록 만들면 사회 비용이 줄어들 것이란 얄팍한 생각으로 이런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 같은데, 당장은 비용이 절감되는 듯 착각이 생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회-경제적인 논리는 시한폭탄이 되어 돌아 올 것이 너무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국민의 기본 권리인 건강권을 법으로 막는다?

백보 양보하여 과잉진단이란 그들의 주장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조기에 치료를 하면 아무 문제없이 잘 치료될 수 있는 병을 검사를 하지 못하게 하고 상황을 악화시킨 다음에 치료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모든 암에서 조기 진단과 초기치료가 가장 우수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순한 암이라 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급속히 자라고 난치성갑상선암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현재까지 그 것을 예측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즉, 조기 진단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나쁘다는 논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경제-사회적인 문제로만 접근하여 비용을 따지는 이런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의료를 받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기본 권리에 해당한다. 어떤 경제적인 논리나 비용효율을 따져 검사를 하라 하지 마라 할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고 저잣거리에 떠도는 비전문가의 말을 믿고 전문가를 배척하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서 오랜 세월 묵묵히 암과 투쟁하며 단 한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원칙과 신념에 입각해 진료에 임해 오던 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과거에는 갑상선암에 대해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조차도 거의 없었다. 다들 자신의 전문 과목을 연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우리가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고 전문적인 내용을 모르는 것처럼 그들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지금 이렇게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일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갑상선암과 전혀 관련도 없었고 치료를 해본 경험도 전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나서게 되었는지 연유가 참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일을 벌인 저의는 무엇일지, 혹은 그 배경에 어떤 뿌리 깊은 이유가 있을지 의혹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비과학적인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근본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용-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할지라도 단 한 명에게라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그 일은 비윤리적이라 규정되며, 원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작금의 일에 대해 히포크라테스의 선언문을 떠올리며 비애를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의사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던 그런 일들이 소위 의과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우리 동료 의사들에 의해 자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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