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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각시의 전설을 아시나요? 덕숭산 수덕사 Ⅰ

  • 입력 2014.05.18 11:46
  • 기자명 임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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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하나에도 고태미를 흠뻑 담고, 아침햇살의 기운을 받아 기품 있는 황금색으로 유유히 빛나고 있었다.
새벽을 달린 끝에 비로소 수덕사의 일주문을 지나 경내 주차장에 들어섰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새벽의 찬 공기를 따라 청량하게 들려오니 어느새 마음조차 차분해진다. 어둠속을 이리저리 살피며 등산로를 찾아 나서는데 경사진 곳에서 두 분이 내려와 등산로를 물어보는 순간, 안녕하세요! 저예요~ 모르세요? 하고 반문을 한다, 누구? 쌀쌀한 어둠속에 파커를 머리까지 덮어쓴 복장이니 어이 알까! 자세히 살피니 오래전 알고 있는 작가의 일행이다. 이런~ 참 죄짓고는 못산다는 말이 딱 맞네! 이런 새벽에도 마주치니… 반가운 인사와 함께 등산을 다녀온 이후에 점심을 수덕사에서 함께 하기로 하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풍광을 즐겨가며, 신선한 공기도 흠뻑 마시고, 사진도 찍고, 내 자신을 위한 기쁨과 즐거움을 충만 시키는 일- 덕숭산 정상을 향하는 길은 깊은 계곡을 끼고 셀 수 없을 만큼 긴 돌계단 오를수록 서서히 숨이 턱에 찬다, 수덕사 대웅전에서부터 정혜사까지 1080계단이라 들었는데 잡념을 버리고 한 계단 한 계단 세며 인간이 지닌 6개의 기관(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분별)이 느끼는 모든 번뇌의 숫자라는 108번뇌를 열 번을 세며 올라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비록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지만 풍광을 즐겨가며, 신선한 공기도 흠뻑 마시고, 사진도 찍고, 내 자신을 위한 기쁨과 즐거움을 충만 시키는 일에 열중하며 활력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싶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약10여 분 오르니 절벽위에 초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만공스님이 참선하던 소림초당이다. 지닌 만공(텅 빈 충만) 스님은 거문고를 즐겨 타며 서울 부민관에 최승희의 춤 구경을 다닐 정도의 한량스님으로 알려졌다, 만해 한용운을 ‘애인’이라고 부르며, 아꼈고 기방(妓房) 출입도 하는 등 기행과 일탈을 자주했다고 한다. 초당 위엔 만공 스님이 세웠다는 약 8~9m쯤 됨직한 미륵불입상이 지금까지 올라온 계단과 수덕사 전경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위의 정혜사 쪽으로 조금 더 오르니 수덕사 고찰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어설픈 현대 조각 모방 작품 같은 만공탑이 좀 생뚱맞게 느껴진다, 왼편 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서면 스님들의 참선도량인 정혜사가 자리하고 있고 문 앞에는 ‘묵언정진’이라는 글자가 여명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조계종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덕숭문중의 본산- 이곳부터는 포근함을 주는 편안한 흙길로 정상을 오르는 동안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매달려 펄럭이는 안내 리본들을 하나하나 풀어 모은 것이 한 꾸러미나 된다, 정상에 이르러서도 가녀린 나뭇가지 하나에 산악회 자랑 경쟁이라도 벌인 듯 수십여 개의 울긋불긋한 리본 무게를 못 이기겠다는 듯 애처롭기만 하다. 이 높지도 않고 외길뿐인 성스러운 곳에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길을 잃을 일도 없거늘… 곧 새봄이 다가올 텐데 100년이 가도 썩지도 않을 비닐인쇄도 모자라 코팅까지 해서 꽃봉오리가 피어야하는 나뭇가지에 철사로 꽁꽁 묶어 숨통을 조이는가! 30여분에 걸쳐 흉물스럽게 주렁주렁 달려있는 60여개의 리본을 수거하고 나니 내 목의 넥타이를 풀은 듯 가슴이 시원해진다. 나뭇가지도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며 웃음 짓는 듯 보인다. 세상이 밝아진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야산과 예당평야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안면도와 천수만도 어렴풋 보인다. 덕숭산 수덕사는 봉황이 둥지에 내려앉은 형국인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의 명당이라 한다.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덕숭산 중심 맥(脈)이 힘차게 뻗어 내리다 우뚝 멈추어 정기를 갈무리한 곳에서는 예부터 성현이 출생한다고 전해진다,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조계종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덕숭문중의 본산으로 경허선사(鏡虛禪師)의 제자 만공선사(滿空禪師)가 주석(住錫)하였던 도량인 것이 그래서일까?

고목의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내는 빛과 그림자와 아침안개가 조화롭게 멋진 한 폭의 산수화 그림 속을지나 - 정상에서의 청량함으로 심신을 맑게 하고 다시 수덕사를 향해 전월사 암자를 거쳐 정혜사로 내려오는 길로 접어든다, 동내 뒷동산처럼 다정하게 느껴지는 흙길이다. 정혜사부터는 올라올 때 느끼지 못했던 내리막 경사가 심하여 돌계단을 하나하나 내려딛기가 꽤나 조심스럽다, 수덕사를 다다르니 오를 때 어둠으로 볼 수 없었던 ‘사면석불’이 보인다. 석불을 돌며 불상을 바라보니 손 모양세가 유독 눈에 띤다. 일체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는 의미로 손의 모습은 왼팔을 길게 아래로 하고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여원인’과 중생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 공포로부터 벗어나며,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대자의 덕을 의미한다는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시무외인’의 모습이다, 보통은 대개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석불은 교대로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른 바지런을 떨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20여m 아래 고목의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내는 빛과 그림자와 아침안개가 조화롭게 멋진 한 폭의 산수화 그림 속을지나 수덕사 경내로 들어서니 백제시대에 창건된 건물 중 유일하다는 목조건물답게 긴 역사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고스란히 쌓아둔 것처럼 기둥 하나에도 고태미를 흠뻑 담고 아침햇살의 기운을 받아 기품 있는 황금색으로 유유히 빛나고 있었다.

수덕각시가 수덕사의 사세(寺勢)를 키우기 위한 관세음보살의 화신- 수덕사가 번성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수덕사에 묘령(妙齡)의 처녀가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데 스님들은 그를 수덕각시라 불렀다. 수덕각시의 출중한 미모 때문에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는데 특히 장가를 가려는 고관대작의 도령들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수덕각시는 자신에게 구애를 한 재력가 정혜도령에게 큰절을 지어달라고 청하자 이를 승낙하는 대신 자신의 청혼을 받아달라고 하자 완공된 후에 혼인을 하겠다고 했다. 이후 절이 완공되는 날에 이르러 정혜도령이 찾아와 혼인을 청하자 수덕각시는 단장하고 나오겠다며, 법당 옆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으나 한참 후에도 나오지 않자 들어가 보니 수덕각시가 갈라진 바위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정혜도령은 급히 수덕각시를 잡았으나 버선만 벗겨진 체 바위틈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그 바위틈에는 해마다 4, 5월이 되면 수덕사 어디에서도 피지 않는 버선 모양의 노란 꽃 복단초가 오로지 그 바위틈에서만 핀다고 한다. 수덕사는 그 후로부터 크게 번성하여 수덕각시가 수덕사의 사세(寺勢)를 키우기 위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전해진다 한다.
한 시간여 둘러보고 사천왕문에 이르러 사대천왕을 올려다보니 다른 사찰의 사대천왕들보다 백제시대 고찰에 어울릴 만큼 화려하고 기세가 위엄스럽다. 금강문을 지나고 일주문을 지날 때 새벽에 만났던 작가 일행이 덕산온천에서 돌아오는 중이라며 따뜻한 일주문 옆의 자그마한 커피집에서 반가움 속에 훈훈한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정담을 나누었다. 내친김에 별일 없으시면 오늘저녁 수덕사에서 묶고 새벽 예불경험 권유에 즉답은 피했지만 이미 가슴속의 호기심 발동이 걸린 듯 끌려가고 있다. 일단 아래쪽 새벽 어둠속에서 보지 못한 일주문, 그리고 수덕여관 등을 둘러보고 한 시간 후 점심때 다시 만나기로하고 헤어졌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의 문 이지만 새벽 어둠속에 지남으로 나오면서 둘러본다, 일주문은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네 기둥[四柱]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의 미술관과 고암(顧庵) 이응로(1904∼1989)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 후 이곳에 머물면서 그 당시 여관 앞 바위에 새겼다는 추상적인 암각화를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내가 무지한 탓에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얼마나 심오하고 비밀스런 뜻을 담았기에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암각을 해 놓았을까? 아무리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 해도 자신만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유로운 시간으로 경내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점심을 작가일행과 함께 수덕사 경내에서 간단히 하고 오후 2시경에 주지스님이신 지운스님과 함께 백제의 미소길(약8km)을 걷기로 했다. 그 길은 지자체의 지방도로 개발계획에 따라 4차선 관통도로로 추진하려던 것을 수덕사지주 지운스님의 긴 시간동안 우여곡절 겪는 노력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역사탐방 길로 보존하게 되었다는 의미 있는 길이라고 한다. <글, 사진 任容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