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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생화학자, 이석신 박사를 아십니까?

제1회 ‘Professor Suksin Lee Memorial Symposium’ 열려

  • 입력 2014.07.01 15:55
  • 기자명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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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생화학자 이석신 박사서양의학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1920년대, 아직 우리나라에 기초학문은 아직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혈혈단신으로 독일로 건너가 첨단 과학을 섭렵해 생화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닦은 이가 있으니 대한민국 최초의 생화학자 이석신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31년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1944년 젊은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수많은 업적을 이뤄낸 이석신 박사.

지금의 대한민국 의학의 발전은 이석신 박사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의학의 역사인 ‘故 이석신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지난 5월 29일에서 30일까지 양일간 열렸다.

이번 ‘Professor Suksin Lee Memorial Symposium’을 주관한 연세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김건홍 주임교수는 “이석신 박사의 아들이신 이영빈 박사 선친의 뜻을 기리고 후학양성을 위해 매년 생화학?분자생물학 교실에 기부를 해 주셨는데, 이 기금으로 준비한 행사가 바로 이번 심포지엄입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학술발표는 물론 우리 교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매우 뜻 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대한민국 역사에 새겨진 이석신 박사의 짧지만 치열했던 삶

이석신 박사는 1897년 10월 6일 평안남도 대동군 남촌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평양대성학교에 입학했고,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1921년 의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4월부터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병리학교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기념 심포지엄에 단체사진이후 선진 학문을 배우기 위해 독일 유학을 결심하고, 1921년 9월 경성의학전문학교 동기생인 이성용, 메이지대학 법과 졸업생인 김준연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1922년 4월 베를린 의과대학에 입학 후 생화학교실의 로테 교수를 도와 연구에 임했으며, 1926년 5월 졸업했다.

이후 1927년 8월까지 베를린 국립병원 Kaiserin Auguste Victoria Haus에서 조수로 재직한 후 귀국, ‘Ueber Glykolyse’라는 제목으로 Doctoris Medicine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이석신 박사는 1928년 2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의학부 부수副手로 일하기 시작했고, 4월에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생화학(당시 의화학) 및 생리학 강사로 임명되었으며, 다음해에는 이화전문대학교 영양학 및 생리학 강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12년부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생리학과 생화학을 담당하던 밴버스커크(Van Birskirk)는 1928년 이석신 박사가 강사로 임명되면서 생리학 교수로 남고 그에게 생화학을 넘겨주었다.

이미 여러 편의 생화학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이석신 박사는 1931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의화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그 해 12월에는 교토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아 명실 공해 한국 최초의 생화학자로 인정을 받는다.

이후 이석신 박사는 후진양성과 매진함과 동시에 일제하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연구?행정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944년 12월 12일 안타깝게도 뇌출혈로 47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계한다.

‘Professor Suksin Lee Memorial Symposium’ 이어 사진전도 개최 예정

▲이석신 박사의 아들 이영빈 박사“아버님과 함께 외출을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네가 이 박사님의 아들이구나’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습니다. 어느 날 혜화동 로터리를 걸어갈 때 교복을 입은 세브란스 의대생 두 명이 아버님을 보고는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 저도 아버님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의학의 길을 선택하고, 연세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영빈 박사. 그는 자신이 졸업한 곳이자 선친이 처음으로 생화학 강의를 시작한 연세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에 해마다 발전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마련된 ‘Professor Suksin Lee Memorial Symposium’에 참여한 이영빈 박사의 감회는 그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이영빈 박사는 “노인들이 갓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다니던 1920년, 일본인들로부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지만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선진 과학을 받아들이기 위해 독일로 건너가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독일 베를린 의과대학의 박사학위에 당당하게 한국인이라 밝히셨습니다. 고국에 있는 우리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많은 후학들도 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 더 큰 의학의 발전을 이뤄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영빈 박사는 정신과 및 신경내과 전문의로 뉴저지 의과대학 교수와 뉴저지 주립병원 부원장으로 재직했으며, 뉴저지한인총연합회와 여러 한인 봉사 단체의 회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연세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은 앞으로도 꾸준히 ‘Professor Suksin Lee Memorial Symposium’을 진행하고, ‘이석신 박사’의 관련 자료를 모아 사진전도 함께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