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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이야기] 전립선암, 더 이상 불치병 아니다

  • 입력 2002.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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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미국의 한 비뇨기과 의사가 1941년 전립선암의 발병과 진행이 안드로겐이라는 남성호르몬과 연관성이 있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이 학설을 근거로 남성호르몬 생산을 중단시키거나 여성호르몬을 투여해보니 말기환자들도 거뜬히 일어나는 게 아닌가. 이 치료법은 그동안 수많은 전립선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다.

며칠 새 진찰실의 전화벨 소리가 잦다. 갑자기 전립선암에 대해 묻는 전화가 늘어났다. 일반인은 물론 동료의사들, 그리고 과거 전립선 질환으로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로부터 쏟아지는 질문들이다. 아마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의 커버스토리로 게재된 미국 인텔사 앤디 그로브 회장의 전립선암 투병기가 국내 신문에 소개되면서 이를 읽고 지레 겁이 난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뇨기과 의사가 무슨 병을 치료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막연히 피부병을 고친다거나 성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어 학회차원에서도 고민이 크다. 비뇨기과학을 영어로 ‘Urology’, 비뇨기과 의사를 ‘Urologist’라 표기한다. 원래 라틴어인 이 말을 순수 우리말로 옮기면 ‘오줌외과학’, ‘오줌외과의사’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인들도 이 단어의 뜻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당신 무슨 과 의사지” “나 urologist야”라고 대답하면 대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좀더 부연해서 설명을 하면 그제서야 “아! 당신 prostate doctor(전립선의사)이구나”하고 무릎을 친다. 왜냐하면 60세가 넘은 미국 할아버지들의 약 60%가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오줌소태로 고생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남성들의 암 순위 제1위가 역시 전립선암이다. 그러니 모든 국민들 특히 남자들이라면 전립선이란 말을 모를 리가 없다. 물론 비뇨기과 의사들의 주 업무가 전립선 환자들 진료고 생업의 수단이기 때문에 전립선 의사라는 말으 들어도 무리는 없다. 아주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에서는 인구 10만명당 75명이 매년 전립선암에 걸리지만 우리나라는 10만명당 5명 이하로 추산되고 있는 정도고 전체 남성암 중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립선암에 관한 한 미국인들에 비해 우리는 복받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2R]














전립선이란 방광에서 시작하는 요도를 둘러싼 메추리알 크기의 조직이다. 위치로 보면 방광의 바로 아래고 항문의 바로 앞쪽에 있는 셈이다. 전립선이 하는 일은 아직도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밝혀진 것 중 가장 큰 일은 남성의 내부 생식기 또는 부성선으로서의 역할이다. 우선 부부생활을 할 때 정액이 통과하는 곳이고 정액의 20∼30%는 전립선액이 차지한다. 이 전립선액에는 여러 가지 효소ㆍ화학물질이 포함돼 정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돼 있고 또 남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도를 둘러싼 이 전립선에 암이 발생하면 먼저 요도를 압박하게 돼 배뇨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소변이 자주 마렵고 한참 뜸을 들여야 배뇨가 시작되고 나오는 소변줄기도 고장난 수도 같다. 때로는 소변이 붉게 나오는 혈뇨도 나타난다. 그런데 불행하게 이런 증상도 어느 정도 암이 진행돼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전문의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못마땅한 점 중 하나다. 사전 인식이 가능한 특징을 꼽는다면 배뇨장애 증상이 가볍게 나타나면서 허리가 아프거나 엉치뼈가 아픈 좌골신경통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3L]속속 개발되는 조기 진단법
왜냐하면 전립선암은 이상하게도 주로 뼈조직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즉 골반골ㆍ대퇴골ㆍ척추 때로는 늑골ㆍ두개골까지 퍼져간다. 그러나 젊어서 고생깨나 하신 우리네 할아버지치고 오줌소태나 신경통 없는 분이 어디 있으랴. 이 병을 초기에 잡아내야 하는 비뇨기과 의사로서는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들어가면 가볍건 심하건 오줌소태나 신경통 증세 외에 체중이 급격히 줄거나 식욕이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함께 따라온다. 이쯤 되면 수준급의 전문의사라면 먼저 항문에 손가락을 살며시 넣어 전립선을 만져본다. 이때 한 부위 또는 전체가 딱딱하게(전문용어로 stony hard, 돌같이 딱딱하다고 표현함)만져진다. 그러나 이 직장 내 진료로 정확한 조기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아주 숙련된 의사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 전립선암의 조기진단을 위한 몇가지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됐다. 하나는 혈액검사를 통해 전립선암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전립선 특이항원(PSA)검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전립선 특이항원의 수치가 일정수준을 넘으면 일단 전립선암으로 의심하게 된다.
또 하나는 과거 X-선으로는 전립선 조직을 영상화할 수 없었으나 최근에는 초음파단자를 항문에 넣어 전립선을 일목요연하게 영상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음파의 안내로 암이 의심되는 부위에서 조직검사가 가능해져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전립선암의 빈도가 증가하는 것은 실제 환자가 늘고 있다기보다는 전립선 특이항원검사ㆍ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진단율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적어도 웬만한 수준의 병원이라면 전립선암의 진단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41년 미국의 허긴스라는 비뇨기과 의사가 전립선암의 발병과 진행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이 학설에 근거해 남성호르몬의 생산공장인 양쪽 고환을 제거하거나 남성호르몬에 대항하는 여성호르몬을 투여해 보니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환자도 거뜬히 일어나는 게 아닌가. 이 치료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전립선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생명을 연장시켰다. 얼마 후 허긴스 박사는 노벨의학상을 받았지만 그의 공로에 비하면 노벨의학상 정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모든 전립선암에 이 호르몬 요법이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또 고환절제술이나 여성호르몬의 투여로 진행된 암이 완치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증상을 호전시키고 전신적 조건을 향상시키다 보니 생존기간이 연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신기한 것은 이 치료의 효과가 하루 이틀만에 극적으로 나타나서 초죽음이 됐던 환자가 기적같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존기간도 5년 때로는 10년 이상 연장이 가능하다. 이쯤 되니 환자의 눈에 비친 비뇨기과 의사는 정말 명의가 아니겠는가.
최근에는 한달에 한번 주사를 맞고 항남성(抗男性) 호르몬제를 투여함으로써 고환절제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도 개발됐다. 또한 배뇨장애가 심하면 내시경을 통해 암조직을 전기칼로 절제해서 시원하게 배뇨시킬 수도 있다. 적어도 전립선암의 치료만큼은 다른 어떤 암보다 앞질러 가고 있는 것이다. 전립선암이 노인성암이기는 하지만 조기에 발견되고 환자의 연령이 젊다면(이 병에서 60대는 청춘으로 친다) 비록 대수술이지만 근치수술로 완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4R]치료방법 여타 암보다 앞서
앞에서도 미국 인텔사 그로브 회장의 투병기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보다는 더 감동적인 환자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H회장은 이 나라 재계사에 남을 만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 굴지의 경제단체장을 오랫동안 역임했고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은 분이기도 하다. 68년 전립선암으로 진단받을 당시 68세였다.
가벼운 오줌소태, 간헐적인 혈뇨, 혈액검사 상 몇 가지 이상소견들이 양성소견을 보였고 모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으로 진단 받고 1차 수술을 했으나 방광 일부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출장 겸 미국을 방문해 그곳 대학병원에서 근치수술을 받았다. 방광과 전립선은 모두 제거하고 소장의 일부를 이용해서 인공방광을 만들었고 오줌주머니까지 차고 귀국하였으니 보통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러나 H회장에게서 찡그린 얼굴을 본적이 없고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밖으로 노출된 창자를 드레싱(소독하고 치료하는 행위)하고 오줌 주머니를 갈아붙이는 작업은 부인이 비뇨기과 의사를 뺨칠 정도로 능숙하게 직접 처리했다. 언제나 산뜻한 양복, 화사한 넥타이가 그야말로 멋진 노신사였다. 분명한 것은 이 때가 이 분의 생애 중 가장 활동적인 시기였다. 이 나라 경제서장의 전성기였던 70년 중반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전립선암은 장에까지 퍼져 배꼽 왼쪽에 인공항문을 만들어 대변주머니까지 차게 된다. 그래도 이 분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사업은 번창일로였다. 그러다 결국 81년인가 타계했다. 전립선암 투병 13년만이었고 향년 79세였다.
10여년 동안 계속된 본인의 의지, 부인의 헌신적 노력, 자녀들의 효심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의학은 인간성을 초월할 수는 없다”, “전립선암은 암이지만 아주 착한 암이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현대의학의 개념으로 보면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에서도 5∼10년은 더 살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