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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어머니로부터 독살을 배우다

  • 입력 2014.09.15 11:45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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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그리피나가 어린 네로를 안고 있는 동상아그리피나(Agrippina)는 로마 황제 칼리쿨라(재위37~41)의 누이동생이자, 폭군 네로의 어머니이다. 아그리피나는 14살 때 오빠인 칼리쿨라와 관계를 맺었다는데,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는 오누이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그리피나는 15살 때 크리스푸스라는 귀족과 결혼했으나 얼마 못가 남편이 죽었으므로, 이번에는 아헤노바르부스라는 명문과의 귀족과 결혼하였다. 아헤노바르부스라와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네로(본명은 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다.

그러나 네로가 3살 때 아그리피나는 다시 과부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오빠 칼리쿨라가 총애했던 미남청년 레피두스와 관계를 맺은 뒤, 그를 부추겨 오빠인 황제의 암살을 꾀했다. 그러나 사전에 음모가 발각되어 레피두스는 처형되었으며, 아그리피나는 칠레이아 해의 섬으로 유배 되었다. 

41년 칼리쿨라 황제가 이집트 병사에게 암살당하자, 아그리피나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가 제위에 올랐으며, 이때 아그리피나는 죄를 용서받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내가 죽자, 환관 파룰라스가 천거한 아그리피나를 황후로 맞아 들였다.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의 조카였다. 숙부와 조카의 결혼은 로마의 혼인법상 금지되어 있었으나, 파룰라스는 황제와 모의하여 혼인법을 개정하였다. 황후가 된 아그리피나는 파룰라스가 쥐고 있던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아그리피나는 파룰라스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황후가 된 후에도 그를 공공연한 정부로 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함께 국사를 간섭했으며, 원로원 회의에도 참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아그리피나의 아들인 네로는 클라디우스 황제에게 있어서는 남이었다. 전처 메살리나와 사이에 낳은 브리타니쿠스야말로 진짜 자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있었다. 아그리피나에게 있어 그러한 점이 장래에 대한 불안의 싹이었다. 그리하여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졸라 메살리나가 낳은 딸 옥타비아와 네로의 혼인을 허락받음으로써,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만든 아그리피나는 서기54년 10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일 축하연에 거대한 버섯요리에 독을 넣어 황제를 살해하려 했으나, 클라우디우스가 그 요리를 먹고 토해 독 기운이 몸 안으로 퍼지지 않자 아그리피나는 시의(侍醫)인 크세노폰에게 눈짓을 하자, 시의는 황제에게 좀 더 토하게 한다면서 깃털을 목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황제는 몸부림을 치며 가슴을 쥐어뜯더니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아그리피나가 그렇게도 바랐던 아들 네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 2. 아그리피나의 동상서기50년께 로마에는 악명 높은 여인 독살전문가 로쿠스타(Locusta)가 있었는데 아그리피나 황후와 네로 황제를 비롯한 당대 최고위층을 고객으로 두고 있었다.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로마 황제로 만들기 위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먹을 버섯 요리에 로쿠스타가 만들어준 독약을 넣어 그를 독살하였던 것인데, 문헌에 의하면 로구스타가 사용하던 독초 만드레이크(Mandrake, 학명으로 Mandragera officinerum)라는 식물인데 그 주성분은 스코폴라민(scopolamine), 히요스치아민(hyoscyamine), 아트로핀(atropin) 등이 혼합되어 독작용을 발휘하는 독초로써 이를 소량 사용하면 미약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고, 또 헨벤(Henben, 학명으로 Hyscyanus riger)이라는 가지과 식물도 만드레이크와 유사한 성분으로 독작용을 발휘하는 독초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에다 독작용을 빠르게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아코니틴 독을 포함한 부자를 사용하곤 하는데, 크라디우스 황제 살해의 경우는 독버섯을 같이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시의인 크세노폰이 황제를 토하게 하기 위해서 새의 깃털을 목안에 넣었다는 것은 당시 귀족들은 음식을 먹고는 이를 토하고 또 먹기 위해 깃털로 목구멍을 자극하여 토하고는 음식을 또 먹었다는 것인데, 황제의 경우는 식도 상부보다 기도의 상부를 자극 폐쇄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네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몇 년 동안은 선정을 베풀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황제 네로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정부인 파룰라스가 그전과 마찬가지로 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네로는 마음을 굳게 먹고 파룰라스를 추방하였다. 아들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분노한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저주하며 “너 따윈 황제 자격도 없어. 정통한 제위 계승자는 브리타니쿠스라고!”하며 발악하듯 외쳤다.

그러자 네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첫 번째 왕비 소생으로 정통 후계자였던 동생 브리타니쿠스의 존재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브리타니쿠스에게 로쿠스타의 독약이 든 포도주를 마시게 하자 발작을 일으키다가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그러자 네로는 브리타니쿠스가 평소 간질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식사 중에 간질이 발작되어 음식물에 의해 질식되어 죽은 것이라 하여 그의 죽음은 자연사로 처리되고 만다. 즉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죽인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한 것이다.

그림 3. 아그리피나와 아들 네로황제의 동상 (살해되기 전)로쿠스타의 놀라운 솜씨에 만족한 네로는 계속 일을 맡겼을 뿐 아니라 가까운 귀족이나 신하가 독살가를 필요로 할 때에는 그를 추천하기까지 해 로쿠스타는 부귀영화를 누렸다. 네로의 후원에 힘입은 그는 본격적으로 청부 독살 사업을 벌이고 심지어 독살 학교를 세워 독약 제조법과 사용법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그리피나는 갑자기 네로를 겁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로 네로를 유혹하여 네로는 곧 생모의 성의 포로가 되었다. 백주대낮에 벌이는 모자의 추행을 보고 환관들이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네로가 곧 싫증을 느끼고, 또한 두려움을 느껴, 네로는 아그리피나를 로마 시내에 있는 안토니아 궁으로 쫒아내듯 옮겨가게 했으며, 그 후로는 만나기를 거절했다.
안토니아 궁은 이윽고 네로에 대한 불평분자들의 집회장이 되었다. 과거에는 아그리피나를 미워했던 옥타비아(네로의 첫 번째 부인)도 네로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드나들었다. 네로는 그 무렵 포파에아라는 미녀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포파에아는 네로의 남색 상대인 오토의 아내였으나, 오토는 네로가 아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이혼하여 그녀를 양보했던 것이다.

네로의 정부가 된 포파에아는 옥타비아를 누르고 황후가 되려고 기도했다. 그런데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는데 옥타비아보다 오히려 아그리피나가 더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포파에아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네로를 부추겨 아그리피나를 없애도록 충동질 했다.

서기59년, 네로의 심복인 아니케토우스가 부하들을 이끌고 안토니아 궁전을 습격했다. 그때 아그리피나는 “내 아들이 날 죽일 리 없어!”라고 외쳤으나, 병사들은 그대로 아그리피나를 칼로 찔렀다.

그러자 아그리피나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병사들을 향하여 자신의 자궁이 있는 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를 찔러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로가 바로 여기서 나왔으니까!” 그리하여 그녀는 칼로 무수히 배를 찔린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