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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 찾아온 빨간 보석 같은 노래, ‘석류의 계절’

  • 입력 2014.09.15 13:58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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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고 햇살이 부실 때빨간 알알이 석류는 웃는데차가운 별 아래 웃음이 지면서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그늘 지나고 햇살이 부실 때빨간 알알이 석류는 웃는데바람이 자면서 낙엽이 지면서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

아침저녁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의 문턱을 노크한다. 꽃,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결실준비에 바쁘다. 이맘때면 뜰에 서 있는 석류나무가 떠오른다. 뜨거운 여름날 자태를 뽐냈던 석류꽃이 지면 ‘동그란 붉은 열매’가 매달린다. ‘루비로 가득 찬 붉은 주머니’로 비유되는 석류는 빨간 비단주머니를 리본으로 꼭 여며놓은 것 같다.

석류가 익으면 껍질을 터뜨리고 속에 촘촘히 박힌 투명한 알맹이는 반짝인다. 보석주머니 같다고 해 사금대(沙金袋)라고도 부른다. 생명의 과일로 당질, 아미노산, 칼륨, 비타민이 많고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

‘여성 과일’ 석류는 곧 외로움
김진옥 작사, 백영호 작곡, 정은숙 노래의 ‘석류의 계절’은 가을 맛이 나는 가요다. 1968년 선보인 이 곡은 석류를 시적으로 노래했다. 4분의 4박자, 슬로우풍으로 나간다.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 가을은 외로운 계절이라고 했다. 잎이 떨어지고 마른 가지에 혼자 매달려 있는 석류처럼 말이다. 아무도 없는 외톨이 신세랄까.

노래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어려운 경제생활에 여성들 삶은 무척 힘들었다. 힘든 속내를 함부로 털어놓을 수도 없는 ‘고독’으로 가득했다. ‘여성의 과일’ 석류를 가을과 연결시켜 노래한 이곡은 바로 그 때 그 시절 우리네 여성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이란 끝 소절이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그 때문인지 이 노래는 여성 팬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크게 히트했다.

석류는 익어가면서 꼭지 끝을 안으로 오므린다. 할 말은 많지만 꾹 참겠다는 듯 입술을 깨문 모습이다.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몰래 삭이는 새댁 같기도 하다. 사랑과 미움, 격정과 정열의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찬바람 부는 가을날 끝내 분노를 터뜨린다. 눈물로 참아온 사연들이 부풀어 제 살갗을 찢고 속내를 드러낸다. 핏빛으로 멍든 가슴은 산산이 부서진다. 가수 정은숙(66)은 ‘동백아줌마’, ‘잊지 마세요’, ‘진정 몰랐어요’, ‘묻지 마세요’, ‘내 사랑아’, ‘향수의 꿈’, ‘보고 싶은 그 사람’ 등을 불렀다. 1960년 후반 데뷔초기엔 이미자 식의 민요조 노래를 불렀다.
 
높고 가는 목소리의 가수들은 민요조의 가요를 불렀지만 그녀는 저음으로 민요를 불러 매스컴을 탔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예술대) 성악과를 나온 그는 ‘이미자에서 느낄 수 없는 구수한 맛이 특징’이라고 언론(1968년 9월 7일자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노래를 작곡한 백영호 선생은 가요계 거목이다. 1920년 부산서 태어나 만주신경음악학원을 수료한 고인은 4,000여곡을 작곡했다. 이미자를 가요계 스타덤에 올려놓은 ‘동백아가씨’의 작곡자이도 하다. 무수한 트로트 곡들을 통해 서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민초들 애환을 달래준 국민작곡가다.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지평선은 말이 없다’, ‘아씨’, ‘여로’, ‘해운대 엘레지’, ‘추억의 소야곡’, ‘새벽길’, ‘추풍령’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그는 2003년 5월 2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폐렴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그의 큰 아들은 진주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부친의 기념관을 운영 중이다. 노래소재가 된 석류는 고려 초기 중국에서 들어왔다. 석류는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달려있는 기간은 4~5개월. 봄철에 잎이 돋을 땐 붉은 빛을 띠고 여름 초입에 꽃이 피어 추석 무렵 붉게 익는다.

가을에 물드는 노란 단풍이 곱고 낙엽이 진 겨울에도 열매는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 열매 모양이 독특하고 꽃 또한 재미있게 생겼다. 옛날 많은 선비들이 석류의 진기한 모습을 시로 읊었다. 그 중 조선 초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이 지은 ‘안석류(安石榴)’가 돋보인다. 석류의 원 이름은 안석류다. 서기 전 2세기 한무제(漢武帝) 때 서한(西漢)에 속했던 안국(安國,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과 석국(石國,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의 앞 머리글을 따 ‘안석류’라 이름 붙였다.

석류, 치매?전립선염 예방에 좋아
석류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남도 쪽에 석류 고목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게 그 때문이다. 석류는 이란산이 유명하다. 지중해지역에서 많이 심었고 아라비아반도, 아프가니스탄, 인도에까지 널리 퍼졌다. 미국의 따뜻한 지방과 남아메리카에서도 심고 있다.
석류나무는 5∼7m 크기로 자란다. 밝은 초록색 잎은 타원형 또는 피침형으로 길이가 약 75㎜이다. 잎겨드랑이에 달리는 오렌지색 꽃이 잔가지 끝 쪽을 향해 핀다. 열매는 오렌지만 하고 6면으로 나눠져 있으나 각이 불분명하다. 익어가면서 부드러운 가죽질의 껍질은 노란색에서 붉은색을 띤다.
여성호르몬과 구조가 거의 같은 에스트라디올, 에스토론으로 불리는 에스트로겐 계열의 호르몬이 석류종자 1kg당 10~18mg 들어있다. 이 호르몬은 노인성치매 알츠하이머와 남성 전립선염 예방에 좋다. 중국의 양귀비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석류애호가였다. 이슬람의 마호메트는 “질투와 증오를 없애려면 석류를 없애라”고 했을 정도였다. 동양에선 석류를 포도, 무화과와 더불어 중히 여겼다. 씨가 많아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다. 혼례용 활옷이나 원삼엔 석류·포도·동자문양이 있다. 석류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