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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이야기]잘먹고 잘사는 사람에게 걸리는 VIP병

전립선암, 그 정체를 밝힌다

  • 입력 2002.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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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을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남성들에게만 내려진 재앙, 전립선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홍재선 전 전경련회장, 김동영 의원이 전립선암으로 사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유명인사들에게 전립선암이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손쉽고 유력한 설명은 이들이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혜택을 많이 받아 보통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점이다.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평균수명이 향상되고, 오래 살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암 중에서 가장 온순한 함

암중에서 가장 온순한 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립선암의 암세포는 증식속도가 매우 느리다. 5년 생존율이 통용되는 다른 장기의 암과는 달리 10년 생존율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다. 그래서 70세 이상의 노인이 진단을 받았다 해도 치료 없이 대기하는 대기요법을 실시하기도 하는데, 자연사한 미국 노인들의 13%는 전립선암 환자였다는 미국립암연구소의 부검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VIP들은 장수하고, 장수자는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고로 VIP에게는 전립선암이 많다는 삼단논법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이것을 검증할만한 사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의 영향이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을 남성답게 만드는 호르몬으로 목소리를 굵게 하고, 털과 근육을 자라게 하며 성욕증진과 진취적이고 쾌활한 성격 형성에도 관여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테스토스테론의 생리작용이 VIP일수록 왕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립선암과 이 테스토스테론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쉽게 설명하면 테스토스테론은 불에 기름을 붓는 식으로 전립선암세포의 폭발적 증식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립선암이 뼈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치료가 바로 고환을 수술로 제거하거나 항남성호르몬제를 써서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 뉴욕 메모리얼 슬론캐터링 암센터의 시드니 위노어 박사는 이밖에도 전립선암을 유발시키는 위험한 생활습관으로 비만, 고지방식, 오래 앉아 있는 좌식생활을 꼽았고, 하버드보건대학원은 이외 운동부족과 일광노출 부족이 주요 위험 요인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이 연구결과들의 공통점은 모두 안락한 생활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부유층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 수긍된다.
 
고지방 식생활이 가장 큰 원인

특히 이들 중 최대의 위험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고지방식이다. [1R]하버드보건대학원의 조사 결과 지방 가운데에서도 붉은 색 살코기가 가장 문제시 됐으며, 오메가지방산이 풍부한 연어, 청어 등 한랭 어류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전립선암의 세계적 권위자 미 존스홉킨스 의대 패트릭 월시 교수는, “맥도널드 햄버거로 상징되는 미국식 인스턴트 고지방식은 장기적으로 보면 전립선에 유해하다. 최근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한국, 일본 등 동양 특유의 발효식품이다. 김치, 된장류는 전립선을 위해 매우 권장할 만한 훌륭한 식품이다.”라고 말해 전립선암의 원인이 식생활에 있음을 뒷받침했다. 또 미국 내에서도 햇볕이 부족한 북부가 남부보다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는데, 이는 햇볕에 의해 피부 밑에서 합성되는 비타민D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검진을 게을리 하는 것도 지도층 인사에게 전립선암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부유층인 그들에게는 선뜻 납득이 안가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전립선암 조기 발견을 위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검사가 의사의 손가락으로 항문을 통해 전립선을 만져보는 직장수지 검사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미테랑이나 덩샤오핑 등 국가적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검사가 시행되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전립선암 조기발견에 실패한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답은 전립선 특이항원(PSA, Prostate Specific Antigen)검사에 있다. 전립선 특이항원은 전립선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효소로 암이 생겼을 경우 혈액 내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직장수지검사로 찾아내지 못하는 미세한 초기 전립선암까지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PSA검사가 처음 개발된 것은 86년. 미테랑, 덩샤오핑은 불행하게도 이 검사법이 개발되기 전인 80년대 초에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반면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 회장은 PSA검사 덕분에 조기발견이 가능해 생명을 건진 케이스다. 물론 PSA검사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2L] 암이 아닌 전립선 비대증도 수치가 상승할 수 있는 이른바 위양성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립선암 환자는 초기단계에서 거의 예외 없이 수치가 올라가게 되므로 60세 이상 고령의 환자들에겐 직장수지검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진단법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보다 난감한 분야가 치료다. 착하고 온순한 전립선암이지만 때론 완치가 오히려 괴로울 수 있는 암이 바로 전립선암이기 때문이다.
 
치료방법 선택은 신중해야

치료는 크게 수술과 방사선요법 두 가지. 문제는 수술이 치료효과가 확실한 반면 배뇨장애와 발기부전이란 부작용이 우려되며 방사선요법은 치료효과가 다소 떨어지나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의학 교과서에선 암세포가 전립선 내부에 한정된 초기암일 때는 완치를 위해 수술을 권장하고, 인근 장기로 퍼진 진행성 암이면 생존시한을 늘이는 것보다 삶의 질을 위한 방사선 요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로브 회장 같은 경우 암세포가 전립선막을 살짝 뚫고 나와 초기인지 진행성인지 감별이 막연해 치료법의 선택이 매우 어려워진다. 그는 궁리 끝에 방사선 요법을 선택했는데 여기엔 <10년 후를 알려면 10년 전을 살펴보라>는 그의 사업가적 지론이 반영됐다. 10년 전 자신의 전립선암을 발견케 해 준 PSA 검사법이 개발된 것처럼 앞으로 10년 후 획기적인 전립선암 치료법이 등장할 때까지 완치보다 부작용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 돌이나 슈워츠코프처럼 일찍 발견하면 수술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치료면에선 아무래도 보통사람들보다 유명인사들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브가 받은 방사선요법도 기존 병원에서 흔히 시술하는 방식이 아닌, MIR영상을 보며 암세포 부위에만 코일을 삽입한 뒤 방사선을 선택해서 쬐는 고가의 첨단스마트폭탄(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공격하는 미사일을 의미)요법이었다. 성공적으로 시술을 끝낸 그는 건강을 회복했는데, 수술 역시도 비뇨기과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결과 차이를 나타낸다. 수술 후 필연적인 부작용인 발기부전, 배뇨장애도 존스 홉킨스의대 패트릭 월시 교수 등 일류 비뇨기과 의사의 손을 거치게 되면 10% 정도의 확률로 축소된다.

잘 먹어서 생긴 병은 명의도 어려워

그러나 다른 모든 난치병과 마찬가지로 전립선암도 고가의 첨단치료보다 조기발견이, 조기발견보다는 예방이 더욱 중요함은 자명하다. <못 먹어서 걸린 병은 다시 먹으면 낫지만 잘 먹어서 생긴 병은 명의가 와도 못 고친다.> 영양과잉형 질환이 대개 난치병임을 의미하는 의학속담이다. 통풍, 당뇨병과 더불어 대표적 부자병인 전립선암도 결국 고지방식 등 영양과다가 중요한 원인임을 감안한다면 소박한 식단 구성이 필수적이란 지적이다. 다행히 서구에선 암 발생률 1위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전립선암이 우리나라에선 그 수가 적다. 결국 전립선암 다발연령인 60세 이상 고령인구에서 우리나라가 서구보다 훨씬 낮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과거 5∼6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랐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또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증거다.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의학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서구 의학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사조, <소박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부유층과 유명인사들을 괴롭히는 천적 전립선 암. 급속한 서구화가 지상과제인양 밤낮을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들이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건강화두라 하겠다. <본 원고는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의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