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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오지 중의 오지

방태산의 아침가리 계곡길

  • 입력 2014.08.16 11:40
  • 기자명 임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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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 거기 멋있는 데야? 힘 안 들어? 가끔 나를 볼 때마다 좋은 데는 혼자만 다닌다고 말하기에 풍광이 좋고 누구나 가볍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명소여서 함께 가시겠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다가 이틀 남겨놓고 전화로 묻는 예기에 나는 “가보면 알아요! 대답했더니 생각해보겠노라고 하곤 결국 연락이 없다. 그럼에도 갈 것도 아닌 듯한 느낌에 조금은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미안스러움으로 남는다. 아침 일찍 출발장소로 이동하는 지하철 내에서 어느 자동차광고의 헤드라인이 눈에 뜨인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 그래! 결코 내가했던 “가보면 알아요!” 라는 대답과 의미는 같은 말이 아닌가? 결코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가끔 지인이나 또는 칼럼을 보고 여행지에 관하여 물어오는 전화를 받는다, 함께하는 사람 등등의 몇 가지 기본적인 것을 묻고 추천을 해주면 교통편, 먹거리를 이어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게으른 분들에겐 추천장소 외에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여행이란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기대가 가슴을 더 설레게 하는 경우도 많다. 조금은 고생스러워도 직접 정보도 찾고 스스로체험하며 느끼는 만족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상상 그 이상으로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 ‘가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얼마나 함축되고 멋진 말인가?

물·불·바람 세 가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명당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3시간여 동안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지루한줄 모르며 어느덧 도착한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 아침가리계곡, 이곳은 오지 중 오지라 하여 조선시대 널리 유포되었던 예언서로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는 정감록[鄭鑑錄]에 방태산 자락의 3둔(살둔, 달둔, 월둔)과 4가리(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가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신처로 기록되어 있다는 하는데 나는 아무리 찾아봐도 십승지 마을은 기록되어있지만 이곳은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십승지 마을에 버금가리만큼 오지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 ‘3둔 4가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물`불`바람 세 가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명당의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서 난세에 숨어 살만한 피난처로 알려졌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둔’은 산속에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이고 ‘가리’는 겨우 밭을 갈아 먹을 정도로 좁은 골짜기와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진 견고한 자연 성곽을 이루어 바깥 세상에 노출이 안 되며 경작할 땅과 물이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해 난리 통에도 능히 살 수 있는 곳이며 실제 이곳 마을 사람들은 6·25 사변 때도 군인들 발길이 없어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 한다. 이곳 중에서도 아침가리계곡은 가장 깊은 오지로 아침나절(朝耕洞)에만 해가 들어 밭을 갈 수 있다 해서 아침가리라 하고 워낙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점심 숟가락 놓기 무섭게 해가 저무는 오지 중 오지로 알려져 있다.

육구만달 산삼을 캐낸 그 자리에서 약수가 치솟은 방동약수-
주차장을 출발하여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방동약수는 300년 이상 수령된 엄나무 밑 암석에서 솟는 유명한 약수다. 인제에 잘 알려진 개인약수, 필레약수, 방동약수, 남전약수 4개중 제일 유명한 방동약수는 자연보호 중앙협의회에서 선정한 “한국의 명수”로 지정되었다, 특히 탄산성분이 강하고 철, 망간, 불소성분이 함유되어 예로부터 위장병과 소화증진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전설은 약 300여 년 전 심마니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주어 찾아갔더니 신비의 명약으로 알려졌던 씨가 달린 60년생의 산삼이 자라고 있었다. 산삼을 캐내고 나니 그 자리에서 약수가 치솟기 시작했는데, 그 약수가 바로 방동약수라는 이야기다. 줄을 서서 한참 후에야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오르는 길에는 양 옆으로 활짝 핀 들꽃들에게 내 손끝을 뻗어 살짝 스치는 스킨십으로 교감을 나누어 본다, 산 목련, 엉겅퀴, 개망초, 애기똥풀 등 다양한 들꽃들이 활짝 반기는 모습들로 신선한 행복을 얻는다. 푸르름이 한창인 자작나무 숲, 햇빛의 광채로 반짝이는 개다래 잎의 은색이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긴 언덕의 임도지만 반기는 듯 활짝 웃는 들꽃들의 미소에 가볍게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들꽃과 산새소리, 그리고 상큼한 산들바람-
된비알에 덥고 힘이 들어서인지 뒤늦게 도착한 일행이 언덕정상에 올라서자마자 계곡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다, 에구~ 여기가 백두산 천지도 아닌데 물이 어디 있겠어요? 오르기 전에 이 산만 넘으면 계곡이라고 했다며 원망스런 눈초리다, 언덕이 길어 힘 좀 덜 들게 하려고 한말인데… 조경동 다리로 이어지는 숲길에는 따가운 햇살을 가릴 만큼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들꽃과 산새소리, 그리고 상큼한 산들바람, 이모든 것들이 무척이나 정겹다. 함께 갈까말까를 망설이며 어떠냐고 물어오던 그 지인에게 가보면 안다는 말 외에 이런 곳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리? 와보면 이리도 좋은 것을 스스로 알 텐데… 계속되는 내리막길이 길다보니 사람이 간사하게도 슬슬 지루한가보다, 자꾸 계곡이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다, 드디어 이산저산 골짜기를 돌고 돌아 흐르는 맑은 물과 매끈하고 하얀 돌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순둥이 검은 개가 무척이나 더운 듯 개울에 몸을 담근 체 머리만 내밀고 눈을 껌뻑이며 피서중이다. 다리 아래 그늘에서 간단한 간식 후 피할 수 없는 계곡트레킹에 혹시라도 흠뻑 젖을 것을 대비해 비닐봉투로 중요한 소지품들을 겹겹이 말아 넣는다,

한 틈도 지루함을 주지 않는 이끼와 물풀들이 어우러진 아침가리계곡의 비경-
바닥까지 비치는 투명한 옥빛 계류 속에서 이리저리 노니는 물고기들, 색과 무늬가 다양한 바위와 조약돌들이 어우러져 깔린 모래톱 한 굽이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절경에 심취하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은 협곡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원시림의 풍광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비경이다. 예년에 없는 극심한 가뭄이라 계곡물이 말랐을까? 염려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충분하리만치 힘차게 흐르고 있다. 머리위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물속의 태양은 더 강하게 얼굴을 태운다. 그래도 허벅지까지 담근 계곡트레킹의 시원함에 고무되어 따가움을 잊은 체 계곡절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침가리계곡의 힘찬 물길을 가로 지르며 반복되는 도강으로 청량감을 만끽하면서 물의 흐름에 거스름 없이 나도 함께 흐른다, 모든 곳이 맑고 청정하지만 하류의 4~5㎞ 구간이 옥빛 소(沼)와 아담한 폭포 등 원시의 자연절경이 그대로 살아 있다. 물이든 바위든 걷는 곳이 곧 길이요, 잠시 거칠면서도 투박스러운 순수의 바위와 이끼와 물풀들이 어우러진 아침가리계곡의 비경은 한 틈도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서너 줄기씩 무리지어 바위틈에 자라는 식물들과 푸르른 이끼들이 내 마음은 물론 사진기까지 황홀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탄성과 감탄으로 이어지는 청량함 속에서 깊고 푸른 소에 이르러 큰 바위 위에서 풍덩 몸을 던지는 심청이도 되어본다. 맑은 물이 주는 청량감은 모든 불편을 잊게 하면서 서서히 완만해지고 넓어지면서 진동계곡 유원지에 다다르며 약 12km(5시간소요)의 아침가리계곡길의 트레킹은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며 끝난다. <글, 사진 任容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