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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명분 없어 보이는 의료계 '약대 6년제'반대

의협, 성숙한 모습으로 문제 접근해야 …집단행동 조직하려면 여러 측변의 세심한 검토 필요

  • 입력 2004.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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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 의학계가 약학대학의 교육과정을 현재보다 2년 더 연장해 6년제 대학으로 개혁하는 안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더니, 근래에는 비슷한 목소리가 한의학계에서도 들리고 있다. 의학계와 한의학계가 힘을 모아 약학계를 협공하고 있는 것 같아 실로 민망스러운 모습이다. 서로 협조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 때문에 물고 뜯는 전형적인 집단이기주의의 표상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더군다나 약학대학생들과 한의과대학생들은 각기 자기네 '어른'들의 뜻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국적으로 수업 거부에 들어가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대생의 맹목적 추종 실망스러워"

얼마 전 국내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약대 6년' 실시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부정적 의견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의 모임인 전국의과대학교 학생대표자연합(전의련)이 무슨 목적으로 이와 같은 여론 조사를 시행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의학계가 이러한 조사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면 이 역시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일반 국민에게는 대한의사협회가 이 같은 여론 조사를 종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내 약학대학의 6년제 개편에 대한 의대생들의 생각을 묻곤 했는데, 예측한 대로 학생들은 반대한다는 소신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런데 정작 반대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의사협회가 내놓은 논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추종'하는 모습이어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어떤 학생은 약대 교육 과정이 6년제로 연장되면 국가적으로 볼 때 굉장한 재정적 손실이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 의학계에서는 6년제에서 8년제로 가고 있는 시점인데도 말이다. 젊은 후배들의 논리적인 사고의 결여와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러웠다. 우리나라 의료 산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약학계가 좀 더 공부를 많이해 그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교육 과정을 연장 개편하겠다는데,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 자명하다.

"떠들썩한 외부용 외교(外交)만 있어"

약학대학내 교육 내용이 확대 개편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임상약학 같은 내용이 보강돼 그러잖아도 현재 병·의원계가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약국의 '유사 의료행위'가 더 극심해질 것이 염려되어 우리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의사협회가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약학대학이 6년제 대학으로 개편하는 것에 대해, 마치 사촌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듯한 소인 집단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 같아 크게 염려된다. 이번 '행사'를 보면서 집단행동을 계획·조직하려면 여러 측면에서 세심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 의학계의 시각에서 약학대학의 교육 내용에 문제점이 보인다면 이는 일반 시민을 상대로 호소 작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분명 실무진의 고심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외부 사람들의 의견이 늘 옳은 것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반 시민을 상대로 약학대학의 교육 내용을 가지고 설득전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협회가 주축이 돼 두 학계의 교육 전문가들이 함께 자리하여 비록 내부적으론 큰 소리가 오가며 논쟁을 하더라도,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조용하게 해결되는 듯한 진행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외교 협상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 우리 주변에는 진정한 의미의 조용한 외교 없이 온통 내수용 내교(內交) 또는 떠들썩한 외부용 외교(外交)만이 있는 것 같다.

의학계와 약학계의 갈등 언제까지

현재의 의약분업에 따른 문제점을 대한약사협회가 방관하는 가운데 약학대학 교육내용을 보강해 6년제로 몰아간다면, 우리 의과대학에서도 현재 약리학 교육을 더욱 보강해 의대생들도 약사 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을 협상카드로 제시하면 어떨까?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한의학계에도 계속 우리의 영역을 침범해 오면 의대 교육에 한방 교육을 도입 또는 강화하여 한의사 자격을 함께 취득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생각해 본다. 조용한 물밑 접촉이 간혹 협상 능력에 따라 수만의 군중 시위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젊은 후배 의학도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철학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의학계와 약학계는 서로 지금까지의 갈등의 틀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이 기회에 한번 심도 있게 숙의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