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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청각장애인’, 인공와우를 통한 소리 획득의 본질을 찾다!

고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인공와우맵핑 탁평곤 교수 interview

  • 입력 2015.07.10 06:05
  • 기자명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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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공와우 이식의 보험화 이후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소리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단순히 들을 수 있다는 것에만 주목을 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선 소통이다. 소리의 본질은 바로 잘 들린다가 아니라 완전한 어울림이 아닐까.

▲고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인공와우맵핑 탁평곤 교수청력 이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건청인(청력 손실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 ‘듣다’라는 의미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반해 태어나서부터 올바른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한 청각 장애인들에게 외부의 물리적인 도구를 통해 소리를 접하게 되면 그것은 그들의 살아온 인생 가운데 가장 놀라운 순간이 될 것이다.

건청인이 원치 않은 사고로 청력을 잃어 중도청각장애인이 된다면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 이들은 여타 중도장애인들과는 달리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공와우(Cochlear implant) 수술이다.

하지만 인공와우가 중도청각장애인의 모든 문제를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들을 수 없다’와 ‘다시 듣게 되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중도청각장애인들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의 본질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논문으로 발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의미 있는 논문은 바로 고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인공와우맵핑 담당 탁평곤 교수의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 본질에 관한 연구’다.

탁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해 “본 연구는 중도청각장애인들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사람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즉 청각을 상실했을 대의 세계와의 관계 맺음과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재획득한 후의 세계와의 관계 맺으을 부석해 소리 들음의 본질을 현상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과연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탁평곤 교수의 연구를 통해 그 본질적 의미를 다시 찾아본다.

인공와우 사용자 정체성 체득이라는 과업 거쳐야

현재 우리나라 장애 인구는 260만 명으로 이 가운데 90% 이상이 교통사고나 질병과 같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 장애인이 된다.

이들 중도장애인은 선천적으로 완전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장애를 입었기 때문에 선천적 장애인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정체성 혼란, 우울, 자존감저하, 만성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가족 내에서는 장애 이전과 이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혼란, 장애 이전에 수행하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 수 없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 가운데 중도청각장애인은 타 중도 장애인들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바로 손상된 청신경에 직접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어 소리를 듣게 하는 인공와우 수술로 청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탁평곤 교수는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도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1980년대에 Clark 박사가 인공와우를 개발해 수술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이 넘게 수술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에 최초로 수술한 이래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소리를 되찾았습니다. 실로 의료기술의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평가될 만합니다. 수술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잔뜩 기대를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수술 후부터 소리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한 수술 후 예견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계를 통한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을 청산하고 건청인과 동일하게 살아갈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 청력상실 이후 그동안 익숙했던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버렸을지라도, 다시 인공와우 사용자의 정체성을 체득해야 하는 힘든 과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텅 빈 공간에서의 내려놓음과 정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탁평곤 교수의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 본질에 관한 연구’ 논문 참여자들은 정상 청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18세 이후 청력을 상실하고, 인공와우 수술을 한 지 1년 이상 된 성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현상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후 인공와우 환자들이 신체관, 공간관, 관계관, 시간관 순으로 기술했다.

이 네 가지의 본질적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체관은 자기 몸의 배려 없음, 정상성의 신화, 의사소통의 자동화, 한 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 삶의 동반자로서의 난청이며, 공간관은 사회적 퇴각과 은둔의 세계, 물적 토대, 세상을 향해 더듬어가기, 숭경함의 대상으로써의 소리, 어울림이었다.

그리고 관계관은 미묘한 세계의 상실과 분쟁의 진원, 사회적 광대와 생물학적 존재(Zeo)로 살아가기, 반편 권리 능력자, 벼랑 끝에서의 극단적 정서, 모성 지향성, 범주화의 거부, 자의반 타의반으로 쌓아올린 장벽, 가족 십자가, 스산함, 동병상련의 외연확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시간관은 마술적 사고 운명론적 전가성, 자기 고립의 세계로의 침잠, 재활 걸음마, 회복과 상실의 연속으로 인한 좌절, 자애의 대범함, 장애의 벽 넘어 마련된 또 다른 길, 존재론적 비움이었다.

탁 교수는 “연구 결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인으로서의 삶은 사회적 고립과 자기 유폐를 포함한 삼의 극한 그 자체였습니다.

삶의 극한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극한의 땅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결정했지만 인공와우 수술이 곧 소리의 재획득과 세계의 재획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탁 교수는 인공와우 수술이라는 의료적 기술과 청각 회복이라는 결과는 본질이나 전체가 아니로 이들의 또 다른 삶을 가능케 한 조건에 불과하며, 인공와우를 통한 소리 세계의 본질은 ‘내려놓음’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탁평곤 교수는 연구 참여자들의 개별적 경험을 통섭할 수 있는 대 주제는 ‘소리 없는 텅 빈 공간에서의 내려놓음과 청각장애라는 극한을 탈출해 정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비인후과 및 청각재활분야에 새로운 도전과 시사점 제공

탁평곤 교수의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 본질에 관한 연구’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사람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탁 교수는 이번 연구 결론을 기초로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성찰적 프로그램 구성, ▲중도청각장애인들이 소리의 세계를 발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중도청각장애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 교육, ▲중도청각장애 재활치료에 있어서 가족을 치료세팅에 포함할 것, ▲중도청각장애인들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특화된 직업 영역의 발굴 및 개발, ▲장애인과 비장애인, 건청인과 청각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결 시스템의 구축,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후 회복을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 모색, ▲중도청각장애인들의 극복 경험을 사회적 자원으로 전환해 다른 중도청각장애인들의 재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애극복 경험자들을 사회교육 강사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8가지 제언을 했다.

결론적으로 ‘중도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 전?후 경험 본질에 관한 연구’는 인공와우 수술이 단순한 외과적 수술이 아니라 중도청각장애인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실존사건으로 발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탁평곤 교수의 연구는 지금까지 인공와우의 기능적 측면만을 고수해 온 이비인후과 및 청각재활분야에 새로운 도전과 시사점을 안겨줄 것이다.

인공와우는 중도청각장애인들이 잃었던 청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재활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모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의료인들뿐만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모든 비장애인들의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