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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관내 분만(官內 分娩)

관에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질병, 외인(外因)에 의한 사망인지 가려야”

  • 입력 2004.08.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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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오스트리아의 화가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그림 ‘어머니의 죽음’(1910)은 임신한 어머니가 어떤 원인으로 사망함에 따라 배속에 임신됐던 태아는 자연히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임신한 어머니의 죽음은 자기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라 결국 두 사람의 죽음이 됨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래서 만일 어머니가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그 살인자는 두 사람을 죽인 것이 되며, 만일 어머니가 자살하였다면 어머니는 자기 자신에게는 자살이지만 태아에게는 살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한 어머니의 생명은 각별히 보호돼야 함을 강조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또 멕시코에서 태어난 여성화가 푸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나의 탄생’(1932)이라는 괴팍한 그림을 그렸다. 즉 두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누운 산모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기를 낳는데 자궁 밖으로 처절하게 머리를 드러낸 것이 바로 칼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 문화로부터 상처 입은 한 여성의 영혼이 이미지화 한 것이다. 그림은 아기의 머리만 나오고 몸통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로서 분만 과정에 있다.[2R]

관내 분만(官內 分娩)
이런 상태의 분만 과정을 두부 분만(delivery of hte head)라고 한다. 사실 이 그림의 태아는 그 앞날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으로 순산이 될지 아니면 도중에 사망해 사산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머리는 나오고 몸통이 나오지 않아 난산(distocia)이 되면 산모는 매우 격한 고통을 받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아이와 어머니 모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의학적으로 분만(delivery)이란 모체로부터 태아가 밖으로 나오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이며, 출산(labor)이란 모체로부터 아기가 분리돼 두 개체가 된 결과를 말한다. 이렇듯 의학에서는 과정과 결과를 구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출산이나 분만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조금이라도 생활력의 증거가 인정되는 아기가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만출(娩出)되는 것을 해산(解産)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앞서 실레의 그림은 임신에 관한 것이고 칼로의 그림은 분만에 관한 그림이다. 이 두 그림의 과정이 합쳐진 임부가 죽은 사후에 관 안에서 분만한 것을 필자는 목격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을 관내 분만(官內 分娩)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사건을 통해 관내 분만이라는 현상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한다.
관내 분만이라는 말은 임신한 부인이 사망했을 때 관에 넣어 매장하면 관내에서 어린애를 낳는다는 의미이다. 예부터 어린이는 사후에라도 반드시 분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사람들은 이것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죽음과 관내 분만
실제로 경험한 관내 분만의 예를 소개하기로 한다. 화제의 주인공인 L부인은 사망 당시 32세였으며, 호남의 명문가(名文家)출신으로 미모와 재간을 겸비한 두 어린이의 어머니였다. 그의 남편인 L씨는 부인보다 두 살 아래인 서울 명문가의 세 아들 중 막내로 장차 모 기업을 인수받을 예비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에 친구의 소개로 알게 돼 열렬히 그리고 진지하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그녀의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대학 졸업이 가까운 시기라 두 사람은 졸업 후 결혼할 것을 굳게 약속하였다. L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으며, 그녀도 자기 부모에게 그렇게 하였다. 여자측 집에서는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하였으나, 남자측 집에서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 중에서도 L의 어머니는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이라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처해진 두 남녀는 하는 수 없이 집을 하나 얻어 살림을 차리게 되었으며, 그러는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득남하게 된 L부인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시댁에서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다. 어린이가 점점 성장함에 따라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시댁 할아버지였다. 하루는 손자가 자라는 것을 보려고 할아버지는 L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였다. 증손자의 귀여운 모습과 L부인의 상냥한 대접에 그만 할아버지도 넋을 잃고 있다가 집에 돌아온 후로는, L부인과 손자를 집에 데려 올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L씨 일가는 큰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L부인은 음독자살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L부인의 친정집에 전해지자 친척들이 대거 상경하게 되었다. 그전부터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L을 냉대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듣고 있었던 터에 갑작스럽게 음독자살 했다고 하니 그 모든 책임이 시어머니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친척은 L부인이 과연 자살하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독살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니 해부해 사인을 밝히자는 의견을 제시, 사태는 점차 그런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즉, L부인의 친척들의 요구로 L부인을 부검해 사인을 구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L부인의 시체는 이미 입관(入官)돼 있었다.
그러나 당국의 지시에 의한 부검이니 만큼 하는 수 없이 관을 부검실로 옮겼으며, 시체를 꺼내기 위해 관의 뚜껑을 열었다. 이 때 이 작업을 하던 인부 두 명이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모두 돌부처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구슬같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부검을 위해 옷을 갈아입던 저자도 고무장갑을 끼다가 이 광경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섰다.
관속의 L부인은 완전히 부패되었으며, 전신은 부패 가스로 인해 기종상(氣腫牀)을 나타내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임신됐던 태아가 관속에 만출돼 있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발로 관내 분만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사후라도 반드시 분만된다‘
사람이 죽으면 장 내용물의 배설 즉, 대변이 정지되므로 장내 세균은 번식만 하게 되며 이의 배설은 없는 셈이 된다. 따라서 번식된 장내 세균은 가스를 형성하고 마침내 혈관 내로 침입한다.
일단 세균이 혈관 내로 들어가면 그 속에 있던 혈액은 세균에 좋은 영양소가 되므로 그 번식은 한층 더 빨라지고 전신에 퍼지게 된다. 그러면 세균은 전신의 각 장기 조직에서 계속 번식되어 기종상을 보이면서 마침내 시체 내는 부패 가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오게 되고, 혀는 밖으로 돌출 되며 배가 부풀어서 고도로 팽만 된다.
이때 생기는 부패 가스의 압력으로 임신된 부인의 경우는 태아가 자궁 밖으로 만출 된다. 이것이 관내 분만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야기되기 쉬우나,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 하겠으며, 또 초산부보다 경상부에서 쉽게 나타난다.
따라서 항간에서 믿고 있는 것 같이, ‘어린이는 사후(死後)라도 반드시 분만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앞서 말한 조건이 맞으면 야기되는 현상이다. 임산부가 어떤 원인으로 사망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체에서 아기를 꺼내 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사후에나마 산모가 겪어야 하는 분만 고통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소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가 있을 때 의사로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그 산모가 질병으로 사망하였는지 또는 외인(外因)에 의한 사망인가를 가리는 문제이다. 질병으로 인한 병사의 경우 그 유가족의 요구가 있을 때는 태아를 모체에서 적출 분리하여도 무방하겠으나, 그 사망이 외인과 관계되거나 또는 사인이 불명한 소위 법률에서 말하는 변사(變死)에 해당될 때는 가족의 요청이 있어도 태아의 적출 분리를 하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법적인 수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일 그러한 수속 없이 태아 적출 분리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시체손괴(屍體損壞)라는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관내 분만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라고 의아스러워 한다.
그러나 실레의 임부의 태아의 죽음과 칼로의 두부 분만의 그림을 다시 보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