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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의도(醫道)를 닦는 사람”

윤주홍 윤주홍의원 원장

  • 입력 2004.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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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접수대 앞에서 진찰을 마친 환자가 진료비가 없어 우물쭈물 한다. 환자는 11월 말이 돼야 돈이 생긴다 하고, 난감한 간호사는 은행에도 돈이 없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환자의 대답은 어디에도 돈은 없다는 것. 인터뷰를 위해 병원을 찾은 기자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호기심이 발동해 귀를 쫑긋하고 환자의 뒷모습에 두 눈을 고정했다. 그런데 그때 원장실에서 “다음에 올 때 가져오시라 해라”라는 푸근한 목소리가 들린다. ‘봉천동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윤주홍 원장(윤주홍 의원)의 목소리였다. 환자는 돈이 생기면 그때 다시 병원을 찾기로 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윤 원장이 봉천동에 자리잡은 것은 30여년 전. 당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봉천동에 개원한 그는 돈 없는 환자라고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주 오래 전 밤에 왕진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났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옷을 뒤지던 강도들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며 “우리 아이 그냥 치료해준 저 아래 윤주홍 박사네”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수 십년 전 얘기를 하는 그의 입가에 그만이 알듯한 따뜻한 미소가 번진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의술은 생명은 연장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나는 의도(醫道)라 생각한다. 의사의 행동 즉 도인의 기술에는 사랑과 인(仁)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의사들은 너무 이익에 밝다. 의사는 어떤 경우에서든 상술이 인술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병원에서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한다면, 그건 이미 병원과 의사의 본래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는 듯 했다. “의사가 된 건 신(神)의 뜻” 그는 의대를 졸업하기 전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문학도였다. 지금도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출간한 <고구려의 자존심>을 비롯한 <낙조에 던지 사유의 그물>, <어느 달동네 의사의 작은 소망> 등 단행본을 세 권이나 가지고 있다. 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 클럽 한국본부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등 문학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평생 버리지 못할 만큼 문학에 뜻이 깊었던 그가 의대에 간 것은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神의 뜻’이라 믿고 있다. “내가 의대에 갈 당시는 사회 전체가 모두 어려웠다. 가난한 사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 하느님이 나를 의과대학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그는 아직도 주말마다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고, (재)관악장악회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원래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봉사가 그를 젊게 살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치료비가 없어 병원을 그냥 나섰던 그 환자가 원장실 문을 삐끔 연다. 삶의 무게가 내려앉은 듯한 그의 메마른 손에 만원자리가 쥐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