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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인류 최초의 살인과 살인미수

형 카인과 동생 아벨의 싸움 … 여호와가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한 것

  • 입력 2005.0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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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7?~1576)가 그린 <카인과 아벨(16세기)>이란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에는 근육질의 두 사내가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에는 몽둥이를 들고 상황을 압도하며 힘과 폭력의 미학을 생생하게 전하는 사람도 있고, 몽둥이로 얻어 맞아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는 사람도 있다. 다시 몽둥이로 내려치려는 찰나라 보는 이에게 곧 있을 파괴에 대한 무의식적 아픔을 강하게 안겨준다.
이미 4,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피를 나눈 두 형제 사이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보잘것 없는 일로 형이 사랑하는 동생을 죽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내게 하며 또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림의 주인공은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인 형 카인(Cain)과 동생 아벨(Abel)인데 그들의 싸움에 대해서는 구약성서 창세기 제4장에 기술돼 있어 이를 토대로 더듬어 보기로 한다.

작은 일로 형이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다
[1L]크게 자란 두 아들은 집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카인은 들에서 농사일을 했고, 아벨은 아버지의 양떼를 몰았다. 물론 아이들은 여느 형제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시기하기도 하며 또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루는 그들 모두가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게 됐는데, 아벨은 새끼 양을 잡았고 카인은 경배의 제단에 자기가 가꾼 곡식을 바쳤다.
그런데 아벨의 제단에 올린 제물 옆의 장작은 불을 집히니 연기를 내며 잘 타들었으나 카인은 제물에 불을 집히려 했지만 부싯돌마저 켜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게다가 장작의 불길도 시원치 않았다. 이를 삽화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여호와는 아벨이 바친 제물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나 카인이 바친 제물은 좋아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돼 있다.
카인은 이에 질투를 느낀 나머지 격분하였으며 아벨이 비웃는다고 생각하고 화를 냈다. 그러나 아벨은 옆에 서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이를 부인했다. 아벨은 자기가 키우고 있던 양들 가운데서 가장 살지고 좋은 놈으로 골라 바침으로써 자기의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을 바친 것이었으며, 카인은 제물에 특별히 신경 써 고르지 않고 적당히 챙겨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여호와는 두 사람의 믿음의 차이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은 예로부터 세계 각처에서 행해진 일종의 종교적인 관습으로, 대부분이 자연숭배에 근거한 애니미즘(animism)이라 불리는 원시종교에서도 있었다. 인간이 왜 예로부터 자연을 숭배하여 왔는가에 대해서는 자연의 은혜와 관용 없이는 자기의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전해 듣고 또 몸소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제물을 바치고 돌아오는 길에 화가 가라앉지 않은 카인은 아벨에게 시비를 걸었으며, 이것이 싸움으로 번져 카인이 아벨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만 너무 세게 때려 아벨이 죽고 말았다. 카인은 너무나 무서운 일을 저지른 나머지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던 여호와는 덤불 사이에 숨은 그를 찾아냈다. 여호와가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카인은 퉁명스럽게 모른다고 하며 자기는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너는 무슨 짓을 하였는가? 대지에서 나를 향해 울부짖는 네 동생의 피의 소리가 들린다. 네가 갈아놓은 대지는 네 동생의 피로 물들어, 대지는 너를 저주하기 때문에 이제는 네가 그 대지에 농사짓는다 해도 곡식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땅을 떠나라” 하셨다.
그러나 카인은 다른 땅에 유배되면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곧 알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을 자기를 죽일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카인을 죽인 자는 7배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사람들이 카인을 죽이지 못하게 그에게 하나의 표식을 내려주었다. 살인자가 된 카인을 추방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살해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여호와의 슬픔과 자비가 잘 나타난다. 이것이 인류 사상 첫 번째 살인에 대한 여호와의 재판이며 벌이었다.

최초의 살인미수
이번에는 기록상 인류 최초의 살인미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아브라함(Abraham)은 개척자였으며 무엇보다 여호와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신앙심이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죽음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여호와는 갑자기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 아들인 이삭(Isaac)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 죽여 제물로 바치라 했다. 아브라함은 고민 끝에 부하 두 명에게 명해 당나귀 등에 장작을 싣고 물과 식량을 준비한 다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다.
아브라함은 부하들에게 기다리라 하고, 이삭의 손을 잡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이삭은 아버지가 제사지내는 것을 종종 보아왔는데 재단이나 장작 그리고 희생 양의 목을 따는데 사용하는 칼도 있었지만 양이 보이지 않아 이상히 여기고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브라함은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양을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산꼭대기에 도달하자 이삭을 묶어 제단의 거친 돌 위에 올려놓고 칼을 꺼내 든 후, 목을 쉽게 칠 수 있도록 아들의 얼굴을 뒤로 제끼며 잡아쥐었다.
이때 여호와의 목소리가 들리며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이 쥐고 있는 칼을 쳐 떨어트리게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누구보다도 믿음이 두텁고 충성스럽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브라함에게는 충성의 증거를 더 이상 시험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삭은 일어났으며 근처 수풀에 뿔이 걸려 꼼짝 못하고 있던 커다란 검은 양을 대신 제물로 바쳤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미수에 대한 줄거리이다. 이를 여러 화가가 그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실감 있게 표현된 것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가 그린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635)>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이 손에 쥔 칼을 쳐 그는 칼을 놓쳤다. 아브라함의 손을 떠난 칼은 허공에 머물고 있다. 칼이 떨어졌으니 이삭의 목이 달아날 염려도 없어졌다.
그러나 제단위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이삭은 구원의 낌새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칼을 꺼내 목을 베려다가 칼을 떨어트리기까지의 숨 막히는 순간은 짧았지만, 이를 당하는 이삭에게는 다시 없는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화가는 배경과 주변 소재들을 어둠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공간을 모두 지워버린 것은 아니며 세 명의 등장인물인 이삭과 아브라함과 천사를 세 축으로, 달리는 인물 구성의 뼈대를 구성해 배경을 대신해 공간을 만들고 있다. 평면에서 확장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배역들이 주고받는 행동과 반사행동의 논리이다. 이삭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난다. 그의 몸을 흘러내리는 빛은 칼날의 반짝임보다 차갑다. 두 팔을 결박당한 이삭은 두 다리를 잔뜩 오므리고 억센 아버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감싸누르는 순간까지도 죽음의 앞에 다가서 있었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이 비극은 살인미수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 작: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1635, 페텔스브르크, 에르미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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