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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시인이 되다!

강서 연세이비인후과 홍지헌 원장 interview

  • 입력 2016.02.16 09:21
  • 기자명 김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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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전 일 년에 쓰는 시가 열편 남짓이었다면, 지금은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사는 의사로서의 사명이 있듯이,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세이비인후과 홍지헌 원장, 그는 지난 2011년 문학청춘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운 홍 원장, 그는 매일같이 시를 소개하는 메일을 지인들에게 돌린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큰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시를 쓸 수 있고, 시를 사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글쟁이 특유의 고집과 자만은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겸손과 순종으로 소박하게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의사시인 홍지헌 원장의 시와 함께한 인생을 함께 들었다.

시와의 인연, 그리고 젊은 날의 고뇌

▲대학시절 받은 세란문학상“초등학교 시절 문예부에 있던 형님들의 영향으로 동시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쓰면 얼마나 잘 썼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선생님의 칭찬으로 실증을 느끼지 않고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형님들의 영향으로 시와 만나게 되었고, 이후 홍지헌 원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백일장을 비롯한 여러 창작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소위 말하는 ‘문학 소년’의 청소년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후 홍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오면서 시는 그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창작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는 제2회 세란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과 함께 졸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홍 원장의 시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여기까지였다.

1983년 졸업을 한 홍 원장은 전공의로 가지 못하고 삼척보건소의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그를 짓누르며 문학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다들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데 혼자서 보건지소에 있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무슨 과를 선택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고, 공중보건의를 하면서 그동안 공부해왔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문학을 더 공부했어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 3년이라는 시간을 고민으로 보냈다. 물론 문학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강원일보 등 신춘문예에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글을 좀 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정도는 아니었구나…’

시인, 다시 시를 만나다!

공중보건의를 마친 홍지헌 원장은 친구들의 조언으로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은 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도 홍 원장은 전공의 기간 중에 결혼도 하여 아이도 있는 어엿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던 1990년 둘째가 태어났고, 두 아이를 바라보는 홍 원장의 마음에 불현 듯 다시 시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연세대 동창회보를 타블로이드판으로 증보를 해야겠는데 시 감상 코너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고, 홍 원장은 이 일을 계기로 동창회보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2008년, 홍 원장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2008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의사시인으로 유명한 마종기 시인과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첫 대면에서 마 시인은 홍 원장에게 “시를 소개하는 코너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혹시 본인 시는 없냐”고 물었다.

“막상 대 선배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보여드리긴 했지만 부끄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종기 선생님께서 등단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장은 자격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마 시인과 함께 의사시인으로 잘 알려진 신승철 원장의 계속된 권유와 추천으로 드디어 2011년 문학청춘 신춘문예 신인상을 통해 홍 원장은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시 홍 원장은 “20대에 시 쓰기를 시작해 50이 넘어 등단하니 기쁘기보다는 어색하고,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시에 목숨을 걸지 않았고, 생계도 걸치지 않았고, 다만 쓰고 싶어 시를 썼을 뿐이므로, 이런 비전문가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저 자신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비록 치열하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시는 써야되지 않겠는가하는 다짐을 해 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삶의 흔적을 담은 첫 시집, ‘나는 없네’

▲의사시인 홍지헌 원장의 첫번째 시집 '나는 없네'지난해 9월 홍지헌 원장은 자신의 가운데 66편을 묶은 첫 번째 시집 ‘나는 없네’를 출간했다.

“의대생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제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홍 박사라고 부르셨습니다. 방위병이었던 동생을 홍 방위로 부르신 것에 비하면 홍 박사라는 말이 너무 기분이 좋고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박사가 아니었고, 2000년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변변한 시집 한 권 없던 시인이 이제야 제 시집이 생긴 것이니까요.”

홍 원장의 첫 시집 ‘나는 없네’에는 우리 삶에서 반복되는, 무기력한, 피로한, 서러운, 뼈아픈, 허무한, 뭉클한, 따뜻한, 행복한, 가슴 벅찬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이 담겨 있다.

홍 원장의 시는 살아온 흔적이 담긴 삶의 기록이다. 음악가가 작곡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듯이 홍 원장은 마음에 생기는 감정의 무늬를 시로 표현한다. 결국 그의 삶은 시로 표현되고, 그의 시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있는 것이다.

홍 원장은 지금 새로운 작업을 준비 중에 있다. 하루하루가 지나다보니 어느덧 또 한 권의 시집이 나올 만큼의 분량이 모인 것이다. 하지만 홍 원장은 급히 서두르지 않는다. 시는 짧지만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박하지만 진정성으로 가슴 깊은 곳까지 울림을 전해주는 의사시인 홍지헌 원장의 두 번째 시집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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