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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강박증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다

  • 입력 2005.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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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년 전 상영된 잭 니컬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를 생각하면 된다. 이 영화에서 작가인 주인공은 식당에서 항상 같은 테이블에만 앉고 미리 챙겨온 깨끗한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며, 집에 들어가면 반드시 5번씩 자물쇠를 확인하고,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새 선을 밟지 않고 타인과 부딪치는 것이 겁나 이리저리 몸을 피해 움직인다. 주인공은 결국 식당 여종업원과 사랑에 빠지고 진정한 사랑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강박증은 영화와는 달리 사랑의 힘만으로는 치유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강박증의 증상은 크게‘강박사고’와‘강박행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강박사고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꾸 반복되는 생각이나 느낌으로, 본인은 그런 생각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한편 강박행동은 그러한 강박사고가 들어올 때 그것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줄이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일시적으로는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강박사고가 들어올 때마다 그런 행동에 습관적으로 매달리는 버릇이 생겨 결국에는 더 큰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짝지어 보면, 어떤 물건이 더럽거나 오염되었다는 생각으로 과도한 청결이나 세척행동을 보이는 것, 문이나 가스렌지 등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확인하거나 질문하는 것, 어떤 것이 균형잡혀 있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 물건을 움직여 균형을 잡거나 대칭이 되게 만들려는 행동을 한다. 또 영수증이나 신문 등 어떤 물건을 이 다음에 필요할 경우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별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모으는 행동, 어떤 일정한 숫자나 그림이 불길하다는 생각 때문에 회피하는 행동, 그밖에도 공격적이거나 성적인 생각이 자꾸 떠올라 그런 생각을 없애려 노력하거나 그러한 생각을 우러나오게 만드는 상황을 피하는 것 등이다.이런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성격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창피해하며 남에게 증상을 숨기려하고 정신과 치료를 회피함으로써 점점 증세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어떤 강박증환자들은 현실 검증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의 평가에 무관심할 수 있는 심한 정신병이 오히려 낫겠다고 말하곤 한다. 왜냐하면 차라리 모르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자신의 행동이 불합리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낀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의지박약자이자 인생의 패배자라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노출-반응방지’기법의 인지행동치료 효과 최근 뇌영상학이나 분자생물학 등 정신생물학적 분야연구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정신과 영역의 많은 질환이 뇌기능의 이상에 의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특히 강박증의 경우 이미 대강의 결론이 내려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연구결과에서 강박증은 전두엽 피질-기저핵-시상하부에 이르는 뇌신경회로에 흐르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활동에 의한 것으로 드러난 바, 이것은 마치 콜레스테롤이 많으면 동맥경화에 걸리기 쉬운 것과 비유될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강박증이란 성격이나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니라 뇌신경계의 신체적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정신적 증상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다행히 최근 이런 이상을 교정할 수 있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라고 불리는 좋은 약물들이 개발되어 약물치료만으로도 상당한 정도의 증세 호전효과를 확실히 볼 수 있다. 강박증이 뇌의 생물학적 이상에 의한 것이고 그것을 교정해 줄 수 있는 약물치료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정신과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심리치료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겠다. 실제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면만을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이상의 질문에‘그렇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신체적인면과 정신적인면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의 생물학적 기능이 정신적 영역에 영향을 주며 반대로 정신영역이 뇌의 생물학적 기능에 변화를 준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실제 정신치료 같은 심리적 치료를 시행할 경우 정신과적 질환에서 보이는 뇌기능 이상이 교정되더라는 뇌영상학 연구는 이미 상당수 확립되어 있다. 다행히 강박증의 경우 비교적 효과적인 심리치료가 있는데 ‘노출-반응방지’라는 기법을 위주로 하는 인지행동치료가 그것이다. 강박증 환자들은 강박사고를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되면 불안감을 느끼고 그것이 두려워 그런 상황을 회피하거나 강박행동을 함으로써 불안감을 줄이려는 방어행동을 취하는데, 그럴 경우 일시적으로 마음이 좀 편해지기는 하겠지만 다음에 다시 강박증을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되면 회피하거나 강박행동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점점 더 커지고 악화되게 된다. 따라서 환자들이 자꾸 회피하려고 드는 상황에 일부러 더 ‘노출’시키고 강박행동이라는 나쁜 방어반응을 못하게 만드는 ‘반응방지’를 함께 조합시키는 치료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노출-반응방지’ 기법이다. 이 치료는 심리, 행동적 치료이므로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별다른 약물치료 없이 이것만으로도 좋아질 수 있다.강박증은 이상에서 소개한 약물치료 및 인지행동치료만으로도 대체로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는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의 강박증 환자들은 죄책감이나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괴로워하는데,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 등에서 유래된 이런 저런 문제나 무의식적 갈등의 심연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다. 경제적, 시간적 문제 등으로 인해 모든 환자들에게 시행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면이 두드러지거나 다른 치료에 반응이 없을 경우 정신분석 등 심층적 정신치료가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가운데 삶에 대해 많은 생각필자는 개인적으로 Shakespeare를 정말로 위대한 작가라고 감탄을 하곤 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글을 쓸 당시는 지금의 정신분석적 이론이 확립되기 전인데도 그의 많은 작품에서 인간 내면심리의 깊은 성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희곡 Macbeth를 보면 주인공의 아내가 계속 손을 씻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행동은 그녀의 깊은 죄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박증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앞서 말했듯이 깊은 내면적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성적, 종교적 죄책감이나 충동에 관련된 강박사고가 있는 경우 특히 심하다. 유명한 철학자인 Kierkegarrd와 Heidegger는 그들 스스로가 기원을 알 수 없는 깊은 불안감으로 평생 고통을 받았는데, 그들이 그러한 고뇌를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한 각고의 산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실존철학이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불안은 분명 괴롭기는 하지만 자신의 존재 가능성 혹은 삶의 가능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표로 이해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불안은 자기존재의 개현을 위해 삼라만상 중 특별히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로, 실존의 방식으로 살고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해 보는 계기로 삼으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필자에게 찾아온 어느 목회자는 예배시간에 우연히 어느 여신도의 모습을 보고 당시 그냥 예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그 이후 신앙적 죄책감에 지속적으로 휩싸이게 되었으며 ‘또 그런 성적인 느낌이 들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에 따른 불안감으로 다른 여신도들과도 얼굴을 마주치기가 힘들어 항상 피하거나 얼굴을 딴 쪽으로 돌리고, 예배할 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설교가 자주 끊기곤 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점이 의식이 되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전공(?)이라고 할 정신적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기가 무척 괴롭고 창피한 일이라 어렵게 왔노라고 말했다.필자는 심층적 정신치료를 시도했는데 내가 치료를 행했다기보다 오랜 기간 그러한 근원적인 고뇌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 또한 스스로의 삶의 방향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녹녹치 않은 기간의 면담 마지막 날 그는 나에게 ‘이보다 저 좋을 수 없다’라는 영화 제목을 차용해 이런 말을 남겼다. “강박증, 그거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었습니다.” [1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