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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가 되는 길, 책 속에서 찾았습니다!

은혜산부인과 김애향 원장 INTERVIEW

  • 입력 2016.03.24 11:50
  • 기자명 김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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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치고, 병들고, 끊임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의사다. 그런데 과연 의사는 어디까지 사람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과연 의술로 모든 것을 위로할 수 있을까. 병과 함께 따라오는 고통과 근심의 그림자를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서울 은혜산부인과 김애양 원장“학교에서는 의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좋은 의사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요. 졸업을 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나서 책을 읽으면서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떤 의학 교과서에도 ‘의사로 사는 법’에 대해 나와 있지 않지만 문학은 ‘성공하는 의사’보다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을 알려 주었죠.”

얼굴, 표정, 목소리, 그리고 손짓까지도 소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의사 수필가 김애양 원장(서울 은혜산부인과). 1998년 제4회 남촌문학상 수상집 ‘초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김 원장은 이후 ‘의사로 산다는 것’, ‘위로’, 그리고 ‘명작 속의 질병 이야기’를 펴냈고, 최근에는 자신의 다섯 번째 저서 ‘아프지 마세요’를 출간했다. 이처럼 김 원장은 진료 활동과 함께 꾸준히 책을 쓰고, 강단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바쁘긴 하지만 행복하죠. 제가 문학을 하면서 느낀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길 위에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외치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흥분 아닐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의학 서적이 아니라 문학과 인문학을 통해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자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는 김 원장. 사람의 깊은 내면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의학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믿고 있는 김애양 원장의 책 향기 가득한 진료실을 함께 들어다보자.

문학소녀가 의대를 간 까닭은…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셰익스피어 번역에 헌신하신 영문학자이시죠. 그런 것 때문인지 어릴 적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몇 차례 입상한 적도 있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과를 갔는데, 아버지께서 ‘문학은 배고픈 것’이라며, 제가 의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어요.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소원이시라는데 제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드리기로 결심한 김애양 원장은 3학년 2학기에 문과반에서 과감히 이과반으로 옮긴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옮긴 뒤에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눈물겨운 고생은 결실을 이뤄 그해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합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단 합격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활은 김 원장의 생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고등학교 때야 받아쓰고 외우는 게 전부였지만, 대학에 가면 그룹으로 발표도 하고 모여서 토론도 하는 창조적인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학에서도 받아쓰고 외우는 것은 그대로였어요. 다른 게 있다면 양이 엄청 늘었다는 거죠. 실망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에게 있었어요. 왜 그런 것들이 그냥 주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광주 민중 항쟁 시절 대학을 다니던 김 원장, 그 암울한 시기였지만 의사는 사회나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환자만 보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자신이 더 부끄럽다. 오히려 스스로 찾아서 철학 강의를 듣거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정말 열심히 데모를 했던지 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의대생이라고 해서 사회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의술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사회에 눈을 돌리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으면 안 돼요. ‘당신들은 그러시던가’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나쁜 마음이고 부끄러운 대학생활이에요. 지금에 와서야 빈부격차, 외국인 차별, 노인 문제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생각해요. 아마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죽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김애양 원장은 강단에서 인문학을 강의할 때 ‘많은 것을 보고 배우라’고 말한다, 진정한 의학의 길은 교과서 밖에 있다고…

선생님 진료실에는 왜 책이 없어요?

“가끔 젊은 환자들이 와서 ‘왜 여기는 책이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책장에 꽂힌 게 다 책인데 무슨 말씀이냐고 하면, 왜 의학 서적이 없느냐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저런 트집을 잡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죠. 하지만 알 수 있어요. 이 환자의 마음이 지금 그렇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신의 답답하고 속상함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죠.”

김애양 원장의 말처럼 진료실 책장에 90%는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인문학에 관련된 책들이다.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진료기록을 보지 않는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방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김 원장은 자신을 의사로 키워준 것이 바로 이 책들이라고 말한다.

“처음 개원을 했을 때 환자들이 불만을 말하면 ‘내 병원이 작다고 무시하는 거야?’,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야’하면서 괜히 심통이 나고 우울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책을 통해 인간은 모두가 약자라는 것을 알았어요. 재벌로 태어나 호위호식하며 살아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뿔도 없고 털도 없는데 또 질병에는 얼마나 많은지, 인간은 모두가 불쌍하고 약하고 불행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그 나약한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 바로 서로 소통하면서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도구가 문학이죠.”

김애양 원장의 진료실에는 의학책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칠 수 있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묘약이 숨어있다.

우리 누군가에게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자!

“사실 의사로의 꿈은 많지 않아요. 산부인과 개원의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어요. 나라 경제가 나쁘니 병원이 안 되고, 애를 안 낳으니 병원이 안 되고, 건물주는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니 병원이 안 되고… 그렇다고 불임치료나 성형을 전문으로 한다는 것도 그렇다보니 미래가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글에는 욕심이 많아요. 책을 써도 사실 마음에 꼭 드는 글은 별로 없었어요. 많이 쓴다고 해서, 다작이 능사는 아니더라고요. 건방진 소리겠지만 저만의 글을 쓰고 싶어요.”

1998년에 등단을 하고 2008년 이후에는 2년 터울로 책을 써 온 김애양 원장,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글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발한 형식을 통해 문학과 의학의 맛을 보여주었다.

그 책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접하게 된 명작 속에 의사 이야기 ‘의사로 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출간한 ‘아프지 마세요’는 김 원장이 진료실에서 겪은 사연과 이에 환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문학작품을 엮어 만든 책으로 자신에 대한 성찰은 물론 환자를 넘어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벽난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음속에 온기를 잃지 않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말이죠. 문학은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고,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어요.”

‘애양(愛洋)’, 김 원장의 이름은 ‘사랑의 바다’라는 뜻이다. 그 바다는 문학이 될 수도, 그리고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문학으로 사랑을 배우고, 의학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김애양 원장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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