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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아버지를 살해한 화가

  • 입력 2005.05.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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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대체로 감성이 보통 사람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때로는 이상한 행동을 하며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할 때도 있다. 이는 아주 개인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그러한 행동을 자주 할 때 사회는 미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여기 한 화가가 그의 광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데 왜 그랬는지 그 내막을 살펴보기로 한다.

리챠드 닷드, 아버지를 죽이다
영국의 화가 리챠드 닷드(Richard Dadd 1817~1886)는 1817년 영국의 동남부 켄트 주 챠탐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그의 아버지는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닷드의 형제는 7남매였는데 그 중 4명은 정신병으로 일찍 사망했다.
하지만 닷드는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머리도 우수한 편이어서 13세 때 고전문학을 마스터했다. 이 무렵 그는 그림에 관심을 두고 1837년에는 왕립 아카데미 스쿨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첫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평론가들로부터 절찬을 받았으며 주위로부터는 장래가 촉망되는 화가로 지목됐다. 그가 25세가 된 1842년 7월에는 변호사 토마스 필립 경이 중동을 여행하는데 동행 화가로 선택돼 10개월이라는 장기간 여행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당시 화가로서는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그는 견문을 넓히고 자료도 수집하며 스케치도 많이 했다.
지중해의 말타 섬과 로마를 방문하는 동안 닷드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악마가 나타나 로마 법왕을 살해해야 한다는 유혹을 한 것이다. 닷드는 이런 괴로움을 당한 나머지 여행을 끝마치지 못하고 런던으로 귀환하게 됐다. 집에 돌아온 닷드는 스케치한 자료를 정리하려 했으나 증상은 계속 악화됐다. 자기는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의 지배하에 있으며 악마를 죽이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1843년 8월 28일에는 자기 아버지를 근처 공원으로 유인해 칼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엄청난 일을 저지른 닷드는 영국을 탈출해 프랑스로 도망쳤다. 프랑스로 간 닷드는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황제를 살해해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마차를 타고 가던 사람을 살해하려다 체포된다. 그는 검사 결과 정신병자로 판단돼 프랑스의 중부 고지대에 있는 크레르몬 패란의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된다. 이 병원에 10개월간 수용됐다 그는 44년 여름에는 영국으로 송환됐다.
송환된 그는 재판을 받았는데 역시 정신병자로 판단돼 사리 주의 베트레헴 정신병원의 범죄자 병동에 수용된다. 그러다 1964년에는 영국 남부에 있는 파크샤 주의 프로드모아의 범죄자 전문시설로 옮겨져 그가 1986년 1월 8일 사망할 때까지 42년간을 외부에는 한 발짝도 나가보지 못하고 형무소와 같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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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는 후반기에 증상이 좋아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레헴 병원의 찰스 후드 원장의 각별한 배려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결국 닷드는 정신병원에서 환자 생활을 하면서 그의 걸작을 많이 남겼다. 후드 원장이 보관하고 있던 ‘격정(激情)을 위한 스케치 시리즈’는 극적인 장면과 개인적인 체험이 복합된 이미지가 함축된 ‘증오’, ‘야만’, ‘살해’, ‘번민’, ‘분노’등을 나타내 정신이상자의 깊숙한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을 형상화해 정신이상자의 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닷드의 광기의 표현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정신세계를 분리하려는 것으로 그 이미지는 예술세계에 속하며 일상생활의 세속적인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인식, 표현하고 있다.
닷드는 입원 기간 중 1840년 후반기에는 자신의 정신불안정에 대해 알아차렸으며 그 정신불안정은 일종의 계통적인 망상으로 구조화돼 그 망상은 이집트의 신들, 특히 오시리스 신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이러한 이집트에 대한 집착은 19세기 전반 유럽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던 이집트 열(熱)의 연장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그가 이집트 여행에 즈음해 그의 정신세계에 이상을 야기하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닷드가 그의 아버지 살해에 대한 고백을 후드 원장에 한 기록을 보면 ‘닷드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는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하는 남자를 살해했다는 것이며, 그 남자에는 악마가 붙어 있기 때문에 신이 그 남자를 죽이라고 명령해 그 남자를 죽였을 뿐이다’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신이 그 남자를 죽이라 명령해 죽였을 뿐”
닷드가 남긴 작품을 보면 ‘격정의 스케치, 증오(1853)’는 리챠드 공작이 헨리 6세를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이 닷드의 광기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닷드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리챠드 공작이 닷드 자신으로, 살해 후 살인자의 표정이 그 잔인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닷드의 살인이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미쳐버린 젠(1855)’이라는 그림은 사랑하던 연인에게 버림받고 정신이상이 돼 입원하고 있는 젠이라는 여성을 그린 것인데, 머리 위에 이상한 것들을 올려놓고 있으며 옷이 흐트러진 것으로 젠이 미쳤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또 눈은 한 곳을 주시하고 있어 원한이 가득 찬 눈이기는 하나, 살인자의 눈과는 다르게 사납지는 않게 그리고 있다.
‘박카스 축제의 정경(1862)’은 오른쪽 밑에 있는 것이 사튜로스인 것으로 박카스 축제를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튜로스는 산양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고, 박카스의 쾌락주의를 대신해 표현하고 있다. 사튜로스가 마시려는 잔에는 라틴어로 된 글이 쓰여 져 있는데 읽기 편하게 그림의 뒤에 썼다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불행한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불운은 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닷드는 사람은 죽어서도 불운은 면할 수 없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최후까지도 자기는 살인을 한 것이 아니며 악마가 한 짓임을 주장했다고 한다. 정신이상자의 내면세계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닷드와 같이 침착하게 그리고 정연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도 다른 화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의 지나온 경력과 병원에 남아있던 병상 일지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들을 분석한 후세의 정신과 의사들은 닷드의 망상은 편집증적(偏執症的)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드 병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닷드의 그림은 유명무실한 것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 후 한 사람의 화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90년에 가까운 1974년에 그의 회고전이 태트(Tate) 미술관에서 개최되면서부터다. 닷드가 20여 년간 입원하고 있던 베트레헴 정신병원은 그 당시는 사리 주의 사자크에 있었는데 그 지역이 지금은 런던 시내로 편입됐고, 병원 건물은 전쟁기념관이 됐다. 그 병원은 1930년에 현재의 사리 주로 이동해 병원 내에 작은 미술관이 병설됐고, 현재 그 미술관에는 닷드의 수채화 약 20점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