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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 입력 2016.04.26 09:53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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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쌀쌀한 날씨가 한동안 이어지며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활짝 열렸다. 계절의 옷을 갈아입고 진달래꽃, 개나리꽃, 벚꽃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대중가요가 있다. 순백색의 꽃 목련화를 소재로 한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다. 봄의 정감을 섬세하게 살린 노래다. 봄이 되면 자주 들을 수 있어 생동의 계절을 알리는 가요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만들고 양희은이 작사와 노래까지 부른 이 곡은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 리듬으로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가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사람에 따라선 슬픔, 쓸쓸함, 외로움마저 느껴진다. 목련꽃 색깔처럼 맑고 산뜻한 노랫말이 확 끌린다.

김희갑 작곡…1984년 공전의 히트 기록
‘하얀 목련’이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건 33년 전인 1983년이다.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은 양희은이 힘들었던 30대 초반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난소암을 앓고 있던 때여서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양 씨는 2014년 12월 20일 방송된 KBS-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 생사의 갈림길 앞에 만든 노래가 ‘하얀 목련’이라며 숨은 뒷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1982년 봄 어느 날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친구는 “오늘 너와 똑같은 병(난소암)으로 세상을 뜬 사람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넌 잘 살고 있니? 싸워서 이겨”라고 썼다. 양희은이 31살 때로 그는 병실에서 간절한 기도를 마치고 창밖을 보는데 하얀 목련이 눈부시게 피어있었다. 그는 북받치는 감정에 노랫말을 썼다.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될 노래”라 생각하고 유서처럼 써내려간 가사는 김희갑 작곡가에게 넘겨져 태어난 곡이 불후의 명곡 ‘하얀 목련’이다. ‘하얀 목련’은 198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데뷔곡 ‘아침이슬’이 1976년 방송금지곡으로 묶인데 이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가사가 퇴폐적이라며 금지곡이 돼 마음고생이 매우 컸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살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는 의기소침한 가운데 1981년 유럽배낭여행을 갔다가 14개월 뒤 귀국, 병원에서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양희은은 방송에서 그 같은 ‘하얀 목련’ 탄생사연을 들려줬다. 이에 앞서 그의 동생 양희경 씨도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 언니 양희은이 난소암으로 3개월 시한부판정을 받았던 사실을 밝혔다.

양희은은 ‘하얀 목련’ 취입 후 35살 때인 1987년 사업가(조중문)와 결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난소암이 기적처럼 나아 1994년 귀국했다. 게다가 ‘하얀 목련’ 등 취입했던 노래들이 크게 히트해 가수로서의 위치도 확고히 굳혔다. 자신감을 얻어 부산서 송창식과 귀국콘서트를 연 그는 무대에서 ‘하얀 목련’을 부르며 오열해 관객들을 울렸다.

‘하얀 목련’ 가사엔 삶의 순리와 인생이 녹아있다. 특히 1절 끝 부분 ‘그대 떠난 봄처럼 하얀 목련은 피어나고 /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는 대목이 그렇다. 절망 뒤에 행복이 찾아오지만 영원할 것 같은 행복도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노래한 것이다. 다정함과 외로움의 마음도 잘 나타나 있다. 노래 중간의 ‘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에서 대조적인 감정표현이 자연스럽게 균형감각을 갖췄다. 병이나 죽음으로 생기는 외로움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다정한 연인들’과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라고 에둘러 대칭시킨 것이다.

양희은, 1971년 ‘아침이슬’로 데뷔
양희은은 1952년 8월 13일 서울 가회동에서 군인집안(아버지 양정길, 어머니 윤순모)의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서울재동초등학교, 경기여중, 경기여고,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1971년 ‘아침이슬’(김민기 작사·작곡)을 취입, 가수로 데뷔했다. 취입곡들 중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작은 연못’ 등 30여곡이 금지곡으로 묶여 가수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나 1987년 6·29선언 후 대부분 풀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음반활동과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포크록 가수 한대수, 포크팝 가수 겸 뮤지컬연출가 김민기, 기자출신 방송인 이상벽 등과 친분이 두텁다. 그녀의 아버지는 육사 및 보병학교 출신으로 6·25전쟁 참전공적이 있는 아버지는 양희은이 어릴 때 대령으로 예편, 병을 앓다 별세했다.

‘하얀 목련’을 작곡한 김희갑 씨는 1936년 3월 9일 북한 태생으로 6·25전쟁 때 월남해 대성고를 졸업, 1967년 옴니버스음반 ‘사랑아 사랑아’로 데뷔했다. 함경북도 나진 태생의 작사가 양인자 씨가 부인이다.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는 1980년대 히트곡이 되기 위한 하나의 브랜드였다. 김 작곡가는 1980년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 이선희 ‘알고 싶어요’, 최진희 ‘그대는 나의 인생’과 ‘사랑의 미로’, 김국환 ‘타타타’,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많은 히트곡들을 낳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표준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16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수상자로 지난 2월 29일 오후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상을 받았다.

목련(木蓮)은 ‘나무에 핀 연꽃’이란 뜻
노래 소재가 된 목련(木蓮)은 ‘나무에 핀 연꽃’이란 뜻이다. 봄꽃 중의 귀족으로 꼽히며 연못이 없는 작은 절에서 많이 심었다. 이름도 갖가지다. 옥같이 깨끗한 나무라 해서 옥수(玉樹), 꽃이 피기 전에 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한다. 백목련, 자목련을 북향화(北向花)라 이름 지어진 전설도 애틋하다.

목련을 소재로 한 시, 노래도 적잖다. “목련 꽃 그늘 아래서 /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나가는 ‘4월의 노래’(시인 박목월 작품)는 학창시절 많이 불렀던 곡이다. 요절가수 김광석의 4집 음반에 실린 ‘회귀’엔 “목련은 피어 흰 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란 관조적 노랫말도 있다. 2014년 4월 25일 우리나라를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백악관에 걸려있던 성조기와 함께 안산 단원고에 부활과 고귀함을 뜻하는 목련을 기증했다. 앤드루 잭슨 미국 제7대 대통령이 먼저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며 백악관 뜰에 심은 나무도 목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