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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입력 2016.05.13 12:27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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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시인 1927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서정시가 노랫말
박재란 1965년 취입해 히트… 일제강점기 한민족 이상향 그려


생동의 계절 봄이 싱그럽다. 새들의 지저귐, 꽃 냄새가 향긋하다. 산과 들의 짙푸른 녹음,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와 밀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김동환(金東煥, 1901년 9월~1958년, 함경북도 경성출생) 작사, 김동현 작곡, 박재란 노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은 이맘때의 분위기에 잘 맞는 가요다. 고향냄새가 물씬 나 여건만 되면 노랫말에 나오는 그런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노래엔 시 구절 2절까지만 사용
1965년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여 히트한 이 노래의 가사는 시인 김동환이 1927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서정시 구절이다. 시는 3절(‘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 바람은 타고서 고이 들리네’)로 돼있지만 노랫말엔 2절까지만 나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음반이 나오고 방송전파를 타자 대중들에게 궁금증을 주면서 인기를 더했다. “남촌이 어디에 있는 마을인거야?”, “남촌에 정말 가보고 싶네!”하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 히트곡 대열에 올랐다.

노래 속의 남촌은 현실세계가 아니다. 김 시인이 그리던 꿈의 나라를 말한다. 민초들이 바라는 지상낙원과 이상적인 세계로 중국 진나라의 시인 도현명은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을, 영국의 인문학자 토머스모어는 유토피아를 꼽았다. 반면 김 시인은 일제강점기로 어려움을 겪는 한민족의 이상향을 ‘산 너머 남촌’이라고 했다. 일제탄압이란 힘든 현실에서 산 넘어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꿈과 희망, 용기와 힘을 준 것이다.

노래를 들으면 봄 하늘 구름밭에 숨어 우는 종달새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봄을 맞은 처녀총각들의 춘심(春心)을 읽는 듯하다. 시인의 고향풍경이 담겼을, 쉽고 고운 이 시로 노래한 박재란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노래멜로디도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가볍고 경쾌한 스윙리듬에다 전주와 간주에 하와이언 기타연주가 이어져 부드러운 맛이 난다. 못갖춘마디에 라장조 4분의 4박자와 4분의 2박자가 적절히 섞여 노래가 맛깔스럽다. 대부분 한 가지 박자로 나가는 보통의 가요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제목 드라마도 2년여 방영
이 노래는 이미자, 하춘화 등 다른 가수들도 음반으로 취입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2012년엔 노래와 같은 제목의 드라마(‘산 너머 남촌에는’ 시즌2)까지 나왔다. KBS -1TV가 2012년 5월 20일~2014년 12월 28일 매주 일요일(오전 9시 10분) 방영한 128부작으로 농촌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젊은 부부와 마을사람들 이야기를 그렸다. 우희진(최영희 역), 김찬우(김철수 역), 신유민(김보라 역), 김창숙(이순덕 역), 송기윤(김일만 역) 등이 출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산 너머 남촌에는’을 취입한 박재란은 1957년 KBS 제4기 전속가수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목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꾀꼬리’로 불렸다. 미모가 뛰어나고 부지런해 데뷔 후 얼마 되지 않아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는 가창력, 음악성, 귀여움까지 갖춰 인기였다. ‘산 넘어 남촌에는’ 노래 덕분으로 요즘의 소녀시대나 아이돌 못잖게 유명했다. 박재란은 ‘산 넘어 남촌에는’ 외에도 ‘밀짚모자’, ‘럭키모닝’, ‘맹꽁이 타령’ 등 히트곡이 많다.

KBS가 1958년 광복절을 맞아 문예작품을 모집, 박서림의 명작을 드라마로 엮어 주제곡 없이 방송했으나 곧이어 만들어진 영화에선 박재란이 주제곡을 불러 화제가 됐다. 영화의 인기를 타고 취입한 곡마다 히트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패티김, 현미 등과 함께 그 무렵 고급문화를 접하고 싶은 층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무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노래했던 다른 가수들과 달리 정(靜)적인 듯 살짝살짝 귀엽게 움직이는 율동을 곁들여 점수를 많이 땄다. 특히 1960년대 들어 TV방송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잘 나가는 ‘바쁜 몸’이 됐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란 늘 좋은 일만 있지 않았다. 방송출연, 공연, 음반취입, 영화출연이 겹치면서 건강이 나빠지고 가정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국내·외를 오가며 대중들 사랑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론 불행의 싹이 텄고 결국엔 어려움을 겪었다.

노랫말 작시(作詩)한 김동환, 기자로 뛰다 잡지 펴내
노랫말을 쓴 김동환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 서사시 ‘국경의 밤’을 썼다. 아명은 삼룡(三龍), 아호는 파인(巴人). 6남매 중 장남인 그는 경성보통학교 졸업 후 1916년 서울로 와 중동중학교를 다녔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東洋大) 영문과에 들어갔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해 함경북도 나남에 있는 북선일일보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다. 1929년엔 이광수·주요한과 함께 ‘삼인시가집’을 펴냈다. 그해 종합잡지 ‘삼천리’를 펴내고 민족주의 입장을 내세운 그는 1937년 이후부터 황국신민화운동을 벌이는 등 친일적인 글을 썼다. 1938년엔 순문학지 ‘삼천리문학’을 펴냈다. 해방 후 친일행위가 문제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돼 공민권을 제한받다 6·25전쟁 때 납북됐다.

‘산 너머 남촌에는’ 노래제목과 비슷한 시로 예술가곡 2곡이 있다. 박찬석(1922년 3월~2009년 7월, 완도 태생)과 김규환(1925년 8월~2011년 1월)의 ‘남촌’이 그것이다. 많은 예술가곡 작곡가들이 이 가사에 사랑을 줬음에도 선뜻 작곡을 하지 못한 건 대중가요 작곡자의 작품으로 이 노래가 널리 알려져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박찬석은 대중가요로 인기절정에 있던 10여년 뒤 작곡했다. 라장조의 4분의 4박자와 마지막 악절에 4분의 2박자로 끝을 맺었다. 낭만적 시상(詩想)을 적절히 나타내 훌륭한 가곡으로 탄생했다. 노래풍은 향토색 짙은 한국적 냄새가 나지만 바탕은 양곡(洋曲)기법을 썼다. 또 다른 ‘남촌’은 1980년 김규환이 작곡한 것으로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다. 못갖춘마디 4분의 4박자, 다장조다. 곡 흐름을 점점 느리게, 본디 빠르게, 여리게, 점점 세게 등을 섞으며 4월의 꽃향기, 5월의 보리냄새 등 자연의 변화와 사물을 관찰하는 시적표현을 음악적으로 버무렸다. 2부, 3부 합창으로도 편곡돼 합창단연주 때 빠지지 않는 훌륭한 가곡이다. KBS어린이합창단 지휘자였던 김규환은 교사·교수를 지냈고 합창편곡으로도 이름난 작곡자다. 음악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 ‘남촌’을 박재란 노래 ‘산 너머 남촌에는’과 비교하며 가르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