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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맞지 않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라

  • 입력 2016.06.15 16:03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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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 자식과 잘 맞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겐 둘만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한다. 여행을 할 때는 굳이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거나 둘만의 대화를 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식이 부모와 여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식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여행지 선택을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부모들에게는 여행을 통해 뭘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보다는 그냥 무작정 떠나보라고 조언한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부모들은 난감해 한다. 부모들은 ‘걔가 나하고 여행을 가려고 하겠나?’에서부터 ‘간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나?’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주저하는 부모들에게는 내 경험을 들려준다. 나 역시 아들과의 두 번의 여행을 통해 많이 달라졌다.

첫 번째 여행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아들과 나는 타고난 기질과 성향도 다르고 취향도 달랐다. 어릴 때 아들은 게임을 아주 좋아했는데 나는 옛날 것이건 최근 것이건 그런 것에는 아예 흥미가 없었다. 나는 진지하고 꾸준한 반면 아들은 유쾌하고 빠르며 또 변화를 좋아했다. 물론 아들과 처음부터 서먹했던 건 아니었다. 어릴 때는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꽤 많았다. 하지만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에게 마음을 터놓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의논할 일이 많아지고 오해할 일도 많아진다. 대표적인 게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오해다. 내 한마디 한마디가 자식에게는 ‘공부만 해라’라는 말로 들릴 터이고 스트레스로 연결될 소지가 많았다. 그럴 즈음 애 엄마가 둘이서 여행을 같이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듣는 순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아이에게 같이 여행을 가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네가 원하는 나라 어디든지 갈 것이니까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당시 아들은 일본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다. 아들은 ‘일본으로 간다면 가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해서 아들과 일본 여행을 하게 되었다. 둘만의 시간이 많은 게 좋을 것 같아 여행사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여행하는 동안 아들에게 일부러 말을 시키거나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필요한 말만 했다. 서로 말없이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는 음악을 듣기 위해 항상 귀에 뭘 꽂고 있었다. 나는 경치를 구경하거나 책을 봤다. 그렇지만 한 공간에 있었다. 도쿄 공항에서 도심까지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데 도쿄 지하철이 워낙 복잡해서 지하철 표 자동 구입기에 한 사람은 동전을 넣고 한 사람은 노선을 보는 역할 분담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것을 통해 서로 접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방을 쓰니 또 자연스럽게 서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서 한집에 살지만 각각의 공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안다고 생각하는데 모르는 것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직접 한방을 쓰니 평소에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갔다 온 후에 아들이 아내에게 ‘효도 관광 갔다 왔다’고 표현은 했다지만 내가 아들을 보고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들도 여행 전과 달리 나를 보는 것이나 대하는 것이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하던 중 오사카에서 내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다행히 내 친구가 도쿄에 있어 그 친구의 도움으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같이 경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들의 볼 수 없는 면을 볼 수 있었고 아들 역시 평소에 보지 못한 나의 어떤 면을 봤을 것이다. 나는 사실 아들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공부를 해야 되는데 공부를 하지 않고 미래도 준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하면서 보니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를 피곤하게 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앞에 놓인 일을 잘 처리하였다. 아들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자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좀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평소에 보지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상대방이 어려울 때는 우선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라
두 번째 여행의 기회가 왔다. 역시 일본 여행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첫 번째 여행 이후 3년이 지났다. 여행의 계기는 달라이 라마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은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거나 아니면 가까운 일본으로 가야 한다. 나도 달라이 라마를 직접 봤으면 하여 정원으로 유명한 일본의 휴양 도시 가나자와에서 열리는 법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달라이 라마의 건강도 점점 안 좋아져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변의 권유도 한몫했다.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었다. 아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또 같이 일본에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물론 그때 아이는 학기 중이었다. 학교를 빼먹고 가야했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아들에게 이런 조건을 붙였다. ‘이틀간 열리는 달라이 라마 법회는 꼭 참석하고 나머지 시간을 네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아들이 흔쾌히 동의했다. 첫 여행 후 3년이 흐른 시간이었다. 그동안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져서인지 3년 전에 여행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이때는 같이 간 스님들과 어울려 같이 시간도 보냈다. 이 여행을 하고 난 뒤 아들과 부쩍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번의 여행이 없었으면 둘의 관계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찔하면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하면서 가족 간에 호흡이 맞지 않고 코드가 맞지 않고 서로의 장점을 보지 못할 때 내 경험에 근거해서 나는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또는 가족 간의 여행을 관계 개선의 처방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