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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환자를 오도하는 ‘Non-EBM’

  • 입력 2005.10.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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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관련 해프닝이 현직 판사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3대 지상파 중 하나에서 특집으로 다루는가 하면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하고 있다. “민중의술은 우리 의료계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는 보물이다”라고 주장하는 울산지법 황종국(黃宗國) 부장판사는 1982년 이비인후과 수술로도 낫지 않았던 비염을 동네 침술원에서 뜸으로 고친 개인적 경험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전국의 민간 명의(무면허의 名醫?)들을 만나고 관련 책을 구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민중의술’이란‘동의보감’등에 집대성된 한의학 주류의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질병을 다스려 온 민간의 침술, 뜸, 부황 등의 요법을 말한다. ‘민중의술 마니아’가 된 황판사는 올해 초엔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라는 책까지 냈다. 그는 광주, 전남,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민중의술 살리기 연합”을 창립했거나 창립하고 다니며 침술, 쑥뜸에서 영혼치료까지 10여 가지 민간 치료법의 역사를 소개했고 민중의술에 대한 상급 법원의 부정적 판결을 비판하고, 의료개혁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처벌하는 의료법이 환자의 치료수단 선택의 자유와 건강권·생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황 판사는 “이 나라의 법률과 판결이 뛰어난 민간의술을 감옥에 가두고, 하늘이 내려준 신의(무면허神醫?)라도 의사 자격증이 없으면 수갑을 채운다”며 “진정한 의술은 병을 값싸게 잘 고치는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의료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인들이 변호사가 하는 일을 하게 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둔다. 진짜로 신의(神醫)나 명의(名醫)가 되려면 이 사람들이 정규 의과대학이나 한의대 과정을 공부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학문을 하는 데 나이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울 김용옥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무면허 민간의술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 없이 자신의 과거 체험만을 토대로 이야기하지만, 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 보편적 사실이라고 고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Non-EBM에 회원들이 몰리는 이유 생각해야 황 판사 개인의 행동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의 이런 행동을 경쟁적으로 다루는 언론의 Populism적 태도가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의 실수는 곧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법정에서 일어나는 판결은 일심, 이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확정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판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질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진료나 의료에서 종종 나타나는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법원의 판결과 달리 한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의료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1990년대부터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건의료체계에서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위한 새로운 학문으로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EBM)이 발전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근거중심의학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최신의 근거중심의 연구결과를 환자의 진료에 이용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사고에서 출발하였다. 얼마 전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보건의료체계에서 근거중심의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이 있어 참석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각국에서 온 석학들의 발표를 통해 각 나라마다 의료기술 평가와 근거 중심의 의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근거가 없거나 미약한 의료행위는 퇴출되고, 인정받은 의료기술과 행위만이 정당한 수가를 받을 수 있고 환자들도 그러한 국가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사평가원의 의료기술평가사업단장인 이상무 박사가 “우리나라에서 근거중심의학과 의료기술평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EBM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대한의학회는 현재 의학회 산하 137개 학회를 비롯한 총 500여 개가 넘는 학술단체들로 인해 ‘학문연구’보다 ‘취업 기능’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며, 의학교육 기능 등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학회가 난무하고 있다. 따라서 비만이나 노화, 줄기세포, 내분비 등 최근 유행하는 분야도 의료계에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전문지식이지만 근거중심의학에 기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의학회도 EBM이 아직 덜 확립된 분야를 다루는 유사 학회에 회원들의 참여도가 왜 그렇게 높은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앞서 황 판사의‘민중의술 살리기’운동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아직도 EBM보다는 Non-EBM이 벼랑끝에 몰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들을 그릇된 곳으로 오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