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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뇨기과 의사가 수술도 합니까?”

  • 입력 2005.10.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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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올챙이 의사 시절 늘 후회를 했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낀 것도 아닌데 왜 비뇨기과를 택했느냐 이겁니다. 일이 고되서도 아닙니다. 학문적인 재미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수술,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아주 정밀한 수술, 지옥의 통증을 한칼에 날려 버리는 수술… 아주 매력 있는 외과학 분야인데 말입니다.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비뇨기과 의사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그게 아니다 이겁니다. 동창회라도 나가면 ‘어이 임질선생!’ 아니면 ‘어이 하수도 청소부!’가 보통입니다. 비뇨기과 의사라는 죄로 좋은 규수감으로부터 딱지 맞은 동업자도 수두룩합니다. 그래도 이쯤은 참을만 합니다. 대학병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간단히 나을 수 있는 데 엉뚱한 병원들을 헤매다 온다 이겁니다.중년여성들의 천적인 요실금 환자가 그렇습니다. 애꿎은 산부인과만 돌다 심신이 다 망가져 찾아옵니다. 요관 결석인데 일반외과에 가서 맹장수술을 받고 온 환자가 한둘이 아닙니다.한술 더 뜨는 환자도 있습니다.“아니 비뇨기과 의사가 수술도 합니까? 임질 매독이나 보는줄 알았는데…”울화가 치밀었지요.“성병과가 아닌 진정한 오줌학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비뇨기과학(泌尿器科學)의 비뇨는 샘 泌자에 오줌 尿자를 붙여 씁니다. 샘같이 흐르는 ‘오줌학’ 뭐 이런 뜻이겠지요. 비뇨기과학을 영문으로 ‘Urology’라고 합니다. Uro는 오줌을 뜻하는 urine에서 온 라틴어입니다. 물론 ‘logy’는 학문을 뜻하지요 역시 ‘오줌학’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오줌외과학입니다. 비뇨기과학을 의학적으로는 ‘남녀의 비뇨기계 또는 요로에 오는 질병과 남자의 생식기관에 오는 질병을 외과적으로 진료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여성의 생식기관인 자궁, 난소, 질 등에 오는 질병은 역시 산부인과의 몫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오줌이 질금질금 새는 요실금환자나 오줌 눌 때마다 자지러지는 방광염 환자는 으레 산부인과로 몰려간다 이겁니다. 광복 후, 의학용어의 우리말 작업을 할 때 아주 쉽게, 영문 그대로 오줌학, 오줌과로 하던지, 좀 더 정확하게 오줌외과학, 오줌외과로 정했어야 했습니다.그 어려운 한문과 오해 때문에, 수많은 환자가 오줌이 막혀 세상을 떠나야했습니다. 부지기수의 환자가 배를 두세 번씩 째야 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이 기저귀를 차야 했습니다. 올챙이 의사에서 개구리 의사를 걸쳐 외과대학 훈장이 됩니다. 한 가지 목표는 분명히 정했습니다. 성병과가 아닌 진정한 오줌학 전도사가 되기로 말입니다. 강연을 하던, 잡지에 글을 쓰던, 일간지에 연재를 하던, 방송을 하던 순수 오줌학만 외쳐 댔습니다. 오줌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헷갈리게 하지말자, 국민들에게 제대로 오줌학을 알리자는 것입니다.몇 년이 흐릅니다.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영화의 꿈이 실현됩니다. 85년, 극성스럽게도 세계적인 비뇨기과 교수이고 학술영화의 태두인 Gil Vernet 교수를 찾아 스페인으로 아주 이상한 연수를 떠납니다. 영화를 공부하러 가는 거지요. 원래 소형 영화인 8mm나 16mm도 촬영, 편집, 녹음, 자막 그 제작 과정이 장난이 아닙니다.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대학 훈장의 주머니로는 택도없는 엄청난 제작비가 듭니다. 영화 제작! 정말 언감생심이지요.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그런데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립니다. 바로 이때가 비디오 시스템이 모든 영상매체에 접목되고 의료계에서는 내시경 카메라가 개발되어 그 섬세한 시술장면들을 모니터에 생생하게 띄울 수 있게 된 시점입니다. 귀국하자마자, 촬영녹화시스템도 아예 방송용으로 마련합니다.결석이 부서지고 방과암을 레이저로 날려 보내거나, 비대 된 전립선 조직이 소작되는 장면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비디오 테이프로 제작됩니다. 국내 학계는 시큰둥했지만 방송국에서는 신통하게 봅니다. 섬세한 내시경 수술 장면, 겁나는 개복수술 과정 등 오줌학의 진수들이 수없이 안방으로 전파됩니다. 오줌학이 서서히 날개를 답니다. 오줌학 전도사의 역할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방송의 영향인지 일간지에서도 손짓을 합니다.1년 넘게 서울신문에 제대로 된 오줌학을 연재합니다. 용어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의학을 보다 쉽게 알리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또한 이 작업을 하면서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전철 안에서 부담 없이 읽으며, 가벼운 지식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오줌과 의사! 아주 좋은 괜찮은 사람들입니다한술 더뜹니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쓰려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왜냐하면 의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딱딱하고 메마른 과학이지만 대상이 사람이다 보니 이를 전공하는 의사는 지극히 인간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연재물을 읽고 수많은 환자들이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사실 책을 낼 엄두도 못 내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이고 제자인 정정만 박사와 이윤수 박사, MD 저널의 송영용 주간이 1년 전부터 꼬드깁니다. 책을 내자고…. 오줌학! 그것은 성병 나부랭이나 고치는 학문이 아니라고, 평생을 외쳐 댔으니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고 진짜 오줌학 이야기를 엮어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전립선관리협회를 운영하다보니 전반적인 오줌학을 외쳐 대다가 최근에는 범위를 좁혀 오줌학의 핵심인, 전립선을 주로 외쳐대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국의 도서벽지를 찾아 무료 진료를 하고 전립선이란 잡지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방송인의 말대로 전립선 전도사가 된 셈이지요. 그러니 이참에 오줌학의 대표인 전립선이야기를 중심으로 오줌학 책을 펴내기로 작심을 합니다.아무리 글이 좋아도 의학 이야기는 재미없고, 지루합니다. 간간히 쉬어가는 글도 좀 끼워 넣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섭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의학이니 글을 쓴 시점과의 시간차에 의한 진단과 치료의 개념, 방법, 장비의 격차가 눈에 띕니다. 어쨌거나 보편성을 유지하려고 애도 썼고, 윤하나 교수에게 부탁을 합니다.신세대의 눈에 벗어나는 개념이나 이론은 과감히 바꾸자고…. 전문적이거나 생소한 용어들에는 토를 달았습니다. 해당 질병에 대한 정보도 꼭지로 넣었습니다.오줌! 안 나오면 못삽니다.오줌학! 꼭 필요한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오줌과 의사! 아주 좋은 괜찮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