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행복해지려면 행복해지는 일을 해야 한다

  • 입력 2016.08.17 13:43
  • 기자명 전현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현 수
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돈이란 글자와 도(道), 돌다(狂)를 유심히 보면 재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도, 돈, 돌이 한글로 같은 자인 도를 공유하고 있다. 돈을 잘 다루면 도를 이루고 돈을 잘못 다루면 돌게 된다. 돈을 잘 다루면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 생기지만 돈을 잘못 다루면 큰 화가 생길 수도 있다. 돈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종교 단체도 청정한지 아닌지를 보려면 보통 두 가지를 보면 된다. 돈과 여자다. 이 둘에 청정하지 못하면 그 종교 단체는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돈과 여자를 위해서 그 단체가 설립되었든지 아니면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 뒤에 문제가 생겼는지 둘 중의 하나다.

돈으로부터 청정하고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특이한 뉴스를 봤다. 러시아의 젊은 수학자인데 현상금을 걸고 낸 문제를 풀고 난 뒤에 상금을 안 타갔다고 한다. 상금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이 수학자는 오로지 수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경제적인 형편 역시 넉넉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상금을 받아가지 않는지에 대해 정확한 보도가 없어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아마도 돈으로 자신의 삶이 영향 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돈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 돈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보지 못한다. 돈이 많으면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돈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30대 후반의 남자 환자는 돈에 대해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돈이 10억 이상 있으면 행복해지겠지 해서 금융 쪽 일을 해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 정도의 돈을 수중에 넣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나 후배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환자는 인생에서 귀중한 경험을 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해지는 일을 해야 행복해지지 행복과 관계가 없는 일을 하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티베트 스님에게 들었다며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이와 관계가 있어 해보겠다. 티베트를 떠나 인도 북부에서 살고 있는 티베트 아이들이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달라이 라마에게 “존자님, 존자님은 세계를 돌면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 보셨죠.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었나요?”하고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고 달라이 라마는 잠시 생각한 뒤에 “배고플 때 먹었던 음식이 제일 맛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얘들아 너희들은 항상 배가 고프니 항상 맛있는 것을 먹고 있단다. 너희들이 먹고 있는 음식이 참 맛있는 거란다’하는 의미다. 사실이다.

나도 그랬다. 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먹었던 자장면이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였다. 그때는 돈이 없었다. 자장면을 사먹기도 힘들었다. 그때 어렵게 사먹었던 자장면이 지금 얼마든지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자장면보다 훨씬 맛있었다. 풍족해지면 오히려 잃는 것이 있다.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주말이 참 달콤하고 기다려진다. 그런데 방학이 되어 맨날 노는 학생이나 실업자는 딱히 주말이 기다려지거나 설레지 않는다. 부족한 것이 우리가 가진 것을 소중하고 귀하고 좋게 만든다. 실제를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남에게 받은 것이다
내게 돈에 대해 어느 정도 실상을 볼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인데, 하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콩트를 한 편 봤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이 다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배일집이라는 코미디언이 주인공으로 나온 콩트였는데 이 사람은 항상 돈을 실컷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 생각을 하면서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찾아와 “당신, 돈 한번 실컷 써보지 않겠소.” 하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럴 기회가 와야 말이지요. 그리 됐으면 소원이 없겠소.” 하니 찾아온 사람이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돈을 쓰는데 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하루에 얼마를 써야 하는데 절대 남에게 주거나 버려서는 안 되고 꼭 자기 손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그 돈 액수는 오래 되어 기억이 안 나는데 지금으로 치면 몇 백만 원 정도 되는 액수였다. 시계가 없어 시계를 살 때 고급 시계를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시계가 있는데 또 시계를 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고급 음식점에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사주는 것은 괜찮은데 친구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자기 손으로 매일매일 써야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게 무슨 문제냐. 걱정마라.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니 그 사람이 문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그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돈 쓰는 일을 인계받았다. 인계를 해 주고는 그 사람은 쏜살같이 가버렸다.

자기에게도 결국 행운이 찾아왔다고 하면서 주인공은 그 다음날부터 돈을 쓰기 시작한다. 집도 사고 시계도 사고 친구들 불러다가 고급 음식점에서 밥도 사주고 돈을 신나게 쓰기 시작한다. 너무 너무 행복해 한다. 그렇게 신나는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밥을 사준다고하면 약속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고급 음식점도 한두 번이지 자꾸 가니 음식이 물리고 시간도 없고 밥은 사주지만 돈을 주지는 않으니 도움이 안 되고 귀찮기만 했다. 이 사람 자신도 돈 쓰기가 쉽지 않았다. 써야 할 돈을 하루 내에 다 쓰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한 번은 새벽부터 돈을 썼지만 다 쓰지 못해 못 쓴 돈을 버릴 수도 없어 강도를 만나 줄려고 골목길에 돈뭉치를 양복 윗주머니에 보이게 꽂고 서있으니 강도가 보고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지 도망을 쳐버렸다. 그렇게 돈 쓰기가 힘든 날들이 계속되면서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돈 쓰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 자기에게 계약서를 쓰고 돈 쓰는 일을 물려주고 간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그 콩트는 끝이 났다.

이 콩트를 보면서 내가 그 콩트의 주인공이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니 돈을 써야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고역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안 사실은 내가 하루에 돈을 얼마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밥을 사먹는다든지 나에게 필요한 일로 돈을 써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게 필요하고 관계없이 돈을 쓰게 되면 굉장히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쓰기에 바빠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를 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 특히 돈에 대해 실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가지고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돈이 있을 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나에게 주는지, 나에게 꼭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등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로또를 사지 않는다. 이유는 1등을 할까 겁이 나서다. 큰돈이 들어오면서 나와 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두려워서 안 산다. 내가 통제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 사지 않는다.

돈에 이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 중에 돈만 딱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음식점에서는 ‘우리 집에 좋은 음식 만들어 놓았으니 와서 맛있게 드세요’ 이고 영화관에서는 ‘이번에 시간을 많이 들여 이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니 꼭 와서 보세요’ 하는 것이고 옷가게는 ‘이번에 이런 멋있는 옷 만들었으니 입어보세요’ 하는 것이 된다.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서로를 돕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돈 뿐만 아니라 지위도 마찬가지다. 남을 돕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세상을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갑 속에 든 돈을 보면 돈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그 돈을 준 사람이 있다. 준 사람이 없다면 그 돈이 내 지갑에 없다. 다 내가 아닌 남으로부터 받은 돈이다. 가까운 남인 가족이 준 돈이거나 진짜 남이 준 돈이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준다. 그러나 남은 내가 먼저 뭘 주었을 때 그 대가로 돈을 준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때 그 대가로 돈을 나에게 준다. 사실 돈은 남을 도운 대가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정부패가 만연했을 때 권력을 부정적으로 이용하여 돈을 번 경우는 예외다. 사회가 안정되고 법대로 돌아갈 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을 어떤 형태로든지 많이 도운 결과다.

진료실에서 만난 학생들이 나에게 돈을 많이 갖고 싶다고 하면 돈의 이런 속성을 이야기해 주면서 “너는 남에게 뭘 줄 수 있니.”하고 묻는다. 대답이 없거나 궁색하면 돈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돈은 정신 건강과 관련이 많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환자가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항상 알아본다. 자기 수입이나 처지에 맞게 돈을 적절하게 쓰면 정신이 건강하다. 그렇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지 않게 돈을 쓰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 돈을 형편에 맞게 쓰게 도와주는 것도 나의 할 일이다. 돈을 자신의 형편보다 많이 쓰는 환자들에게 현대그룹을 만든 정주영 씨 이야기를 해준다. 방송에서 기업가로서의 정주영 씨 인생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정주영 씨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주영 씨는 평생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항상 자기 형편보다 돈을 덜 써서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은 “정주영 씨가 뭐 힘들었겠어. 그렇게 돈이 많았는데.”하고 말할 수 있지만 재벌이 되기 전에도 항상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인 강원도 통천을 떠나 서울에서 고생할 때 일하는 데까지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는 전차나 버스가 있던 시절이었다. 버스나 전차를 탈 형편인데 타지를 않고 걸어 다녔다. 자기 형편보다 좀 덜 쓴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전차나 버스 탈 형편인데 택시 타고 다닌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아마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정신병의 일종인 조증이 되면 돈을 항상 많이 쓴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갑자기 돈을 많이 쓴다고 하면 조증을 의심한다. 조울증인 경우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정신적인 상태의 척도가 된다. 돈을 지나치게 아끼는 것도 정신 불건강이다. 친구를 만나고 즐겁게 놀다 와서 자기가 돈을 친구보다 많이 썼다고 생각하니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친구를 만나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불건강한 것이다. 돈을 쓴 것은 친구와 만나서 일어난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와 친구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돈만 보면 시야가 좁은 것이다. 돈은 형편이 나은 사람이 쓰는 것이 좋다. 남을 위해 써놓으면 남은 그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것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지 나에게 온다. 시야가 넓어야 한다. 물론 내 형편과 맞지 않게 무리하게 쓰면 안 된다. 친구 만나 쓴 돈이 내게 무리가 되지 않는 정도라면 그 쓴 돈이 내 지갑에 있지 않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지지 않는다. 요긴하게 잘 쓴 것이다. 그러면서 소비를 했으니 우리나라 경제에도 일조를 하지 않았나? 나에게 크게 해가 되지 않으면서 남을 돕는 즐거움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내 통장에 들어있는 얼마의 돈이 나에게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지만 그것이 남에게 갔을 때 큰 도움이 된다면 그 돈을 그쪽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인생을 잘 사는 길이다.

돈만 가지고 있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하려면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아야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