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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앞바다 배경 청춘남녀 이별 다룬 ‘해운대 엘레지’

  • 입력 2016.08.18 16:23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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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계절’ 여름이다. 산과 물을 찾아 더위를 식히려는 피서인파가 줄을 잇는다. 국내 최대 바닷물 놀이터로 꼽히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도 인산인해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바로 추억의 대중가요 ‘해운대 엘레지’(4분의 2박자, 트로트)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손인호(본명 손효찬) 노래인 이곡은 1958년 첫선을 보여 크게 히트했다. ‘해운대 엘레지’(빅토리레코드)는 부산 해운대 앞 바다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이별을 다룬 곡이다. 노랫말에 처연한 헤어짐의 슬픔이 절절히 녹아있다.

이별의 회한이 백사장 모래와 물결에 굽이굽이 묻어나는 이 노래는 1966년 이미자가 리메이크해 재발표하며 더 큰 사랑을 받은 명곡이다. 조용필, 주현미, 김용임 등 다른 후배가수들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취입했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KBS 1TV ‘가요무대’ 프로그램 등에서 가끔씩 소개되고 있고 노년층과 나이가 든 재외동포들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해운대서 보는 달 모습, 대한팔경 중 하나
이 노래와 관련해 재미난 공모행사가 지난 2000년 부산서 있었다. 그해 부산 해운대구청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운대를 가장 잘 나타낸 노래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 ‘해운대 엘레지’가 1위로 뽑혔다. 구청은 이를 바탕으로 해운대해수욕장 한 쪽에 노래비를 세워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노래배경이 된 해운대는 나라 안팎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자 영화촬영지다. 1960~1970년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신혼 여행지였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보고 싶은 선망의 해변이다. 그 인기는 요즘도 여전하다. 해수욕장 해안선은 세계적 휴양지로 잘 알려진 하와이, 괌, 사이판, 발리 못잖다. 특히 야경이 일품이다. 해운대 달맞이고객에서 바라보는 달의 모습(月景)은 대한팔경 중 하나다. 2009년 개봉된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 누적관객수 1,132만4,545명)도 이곳 등지에서 찍었다.

지금의 해운대는 노래가 처음 취입될 때와 많이 달라졌다. 고층건물인 마린시티, 센텀시티, 해운대 신시가지, 동백섬, 조망권이 뛰어난 해변가 호텔들, 마린시티 아이파크, 두산위브더제니스·엘시티 초고층아파트 등이 새로 생겼다. 2005년 11월 18일~19일 제13차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Nurimaru), 해안산책로, 인어상, 동백섬 등대, 만남의 광장, 대마도 전망대, 부산아쿠아리움, 수영구 남천동~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잇는 광안대교도 부근에 있다.

해운대(海雲臺)는 신라말기의 시인이자 유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름을 붙인 곳이다. 1999년 3월 부산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동백섬엔 동백공원과 최치원 동상, 최치원 선생이 쓴 ‘해운대 석각(石刻)’이 있다. ‘해운대 석각’ 안내판엔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가야산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이곳을 지나가다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대(臺)를 쌓고 바다(海)와 구름(雲),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거닐다 바위에 ‘해운대’란 글자를 새김으로써 이곳의 지명이 됐다”고 쓰여 있다.

손인호, 국내 최고령가수로 노익장
‘해운대 엘레지’를 취입한 손인호는 인생스토리(Life Story)가 많은 가수다. ‘라디오’와 ‘스크린’을 장악했던 미남·미성(美聲)의 ‘얼굴 없는 가수’로 유명하다. 1954년 ‘나는 울었네’(김동일 작사, 박시춘 작곡)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울어라 기타줄’,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대동강’, ‘비 내리는 호남선’,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청춘등대’ 등 1950~60년대 우리나라 대표가요들을 히트시키며 가요계 정상에 섰다.

그는 그렇게 잘 나갔지만 방송무대는 물론 일반무대에 서지 않았다. 오랜 삶을 지탱해온 본업(공보부 영화녹음기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로선 150여곡을 취입했지만 녹음기사로선 2,000여 편에 이르는 영화녹음을 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로맨스 빠빠’, ‘미워도 다시 한 번’ 등이 그가 녹음한 것이다. 대종상 녹음상 등을 7번이나 받았을 만큼 국내 영화녹음분야에서 독보적이었다. 반면 그가 가수로서 받은 상은 하나도 없다. 1955년 톱 가수 대열에 오른 그가 가수임을 갓 결혼한 아내(이선자 여사)도 몰랐다.

그가 방송무대에서 얼굴을 내민 건 75살 때인 2001년 KBS 1TV ‘가요무대’ 프로그램(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서다. 그는 이를 계기로 2003년에야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회원으로 가입, 화제가 됐다. 몇 년 전 가수데뷔 40여년 만에 ‘휴전선아 말해다오’란 신곡을 취입, 국내 최고령가수로 노익장을 보여줬다. 

 ‘소리의 마술사’로 뛰어온 그는 1927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월남하기 전 평양에서 열린 이북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에 나가 ‘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했다. 그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46년 12월 6살 터울의 형과 서울로 왔다. 작곡가 김해송이 이끌던 ‘부길 부길 쇼단’에 들어가 가수로 활동하다 6·25전쟁이 나자 군예대에서 ‘군번 없는 용사’로 전장 터를 누볐다. 현재 그는 80대 후반이지만 원로가수 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자녀 3남 1녀 중 맏아들 손동준도 ‘사랑은 OX’, ‘러브 샷’을 부른 가수다.

국악소녀 송소희, ‘해운대 엘레지’ 불러 5연승
올 5월 28일 KBS 2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253회, 불멸의 작곡가 ‘故 백영호’ 특집) 프로그램에서 국악소녀가수 송소희(1997년 10월 20일생)가 ‘해운대 엘레지’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창작국악밴드 불세출과 함께 부른 그녀의 노래를 듣고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목소리를 잘 살리기 위해 아쟁, 생황, 기타, 해금 등 최소한의 악기로 이뤄진 무대를 꾸며 관객들 가슴을 먹먹하게 했을 만큼 감동을 줬다. 이날 방송엔 부활, 김태우, 김보경, 박미경, 옴므, 송소희, 샘김 등의 가수들이 출연했다. 판정단의 최종투표 결과 송소희는 5연승으로 우승했다. 송소희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8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에 나가 연말결선 1위를 해 얼굴을 알린 소리꾼으로 단국대 음대 국악과에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