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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흔들리는 의사 정체성

  • 입력 2005.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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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교육을 왜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잘 진료 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대로 된 의사를 배출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현재 전국에 42개의 의과대학이 있고 매년 3,600명 정도의 신출 의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오는 것일까?세계보건기구(WHO) 이종욱 사무총장은 초청강연에서 “의대생들이 돈 번다는 생각, 이 한 가지만 빼면 성공할 수 있다”며 의대생들이 돈벌이를 생각하는 것은 낭비라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의대를 그만두고 비즈니스쪽으로 가야 한다”면서”선배와 교수들이 꾸려놓은 틀에 절대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1952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소크가 태양을 특허 낼 수 있냐며 백신특허를 내지 않아 현재 WHO에 소아마비백신 한 도스가 100원에 납품되고 있다.”막대한 부를 포기하고, 세계 공중보건에 크게 이바지한 소크와 같은 인물의 행적을 마음에 품어달라”고 당부했다. 의대를 지원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귀감이 될 만한 충고다. 그러나 의대 졸업 후 의사의 길이 아닌 비즈니스쪽으로 갈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은 3,600명 중에 한 두 명에 불과 할 것이다.의과대학에 있는 교수들의 존재 이유는 의대생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의대생들이 마치 의과대학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의사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2년이나 더 대학교를 다니고 5년의 수련 과정이 추가 되지만 석사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대 졸업 후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배출되지만 그 사람들이 실제로 활동하게 되는 현장은 전공의 시절 배웠던 한정된 분야만 가지고는 생존하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의대교수들은 학생들뿐이 아니고 개원하고 있는 의사들조차 교육을 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종종 개원의 단체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들이 소화기내시경학회를 만들어 개원의들을 교육하면서 내시경 인정 전문의를 주는 과정에서 내과 개원의 협의회 회원들과의 갈등이 발생해 내과개원의 협의회에서서 자체 교육으로 내시경 (인정)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원의들이 학회가 주관하는 춘·추계학술대회에 참석률이 저조한 이유 중에 하나는 대학교수들이 실제 임상에서 적용 가능한 내용들보다는 다분히 이론적이고 실험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실제 환자 진료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는 의사와 개원의사가 처한 현실은 많이 다르다. 교직에 있는 사람들은 7~10년마다 안식년을 갖고 1년 정도 연수를 떠나 재충전을 할 기회가 있지만 개원의사들은 개원하는 날부터 폐업할 때까지 안식년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폐업하는 날이 안식년의 시작이지만 은퇴 결심을 밝힌 뒤 외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왕따 당한 의사의 예에서 보듯 폐업 후 갖게 되는 안식년은 가족으로부터 왕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들은 개원의사들에 비해 갖게 되는 Benefit도 많고 명예도 갖게 되니 의대교수 만큼 부러운 직종도 없다 하겠다. 물론 의대 교수 사회에서도 동료 교수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처절한 생존 경쟁이 벌어진다. “의사들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으며 주류 집단에서 아웃사이더로 점차 밀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은 어느 사회, 어느 직종에서도 있기 마련이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다보니 의사 집단 내에서도 갈등은 생긴다. 그러나 개원의들도 춘·추계 학술대회 일정이 적어도 2~3개월 전에 고지되므로 1년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학술대회에 참석해 학문적인 발전도 꾀하고 교수들과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개원의사들도 교수들에게 할 말이 생긴다.의약분업 파동 당시 의사들의 휴업을 주도한 의사협회장의 행동도 낱낱이 도청됐다고 한다. 의사들이 행한 모든 의료 행위와 경제 활동은 국가의 전산망 안에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파악이 가능하다. 현재 의사들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주류 집단에서 아웃사이더로 점차 밀리고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발의 된 간호사법에서 볼 수 있듯 의사들은 간호사에 의해 고발당하게 되어 있는 예비 피고발자이다. 의(醫)파라치를 부추겨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을 조장하더니 이제는 같은 직종 안에서 아예 고소, 고발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이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의식을 갖게 만드는 시스템(paranoid society)으로 가고 있어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에 의한 통치를 연상하게 한다. 386세대가 주축이 된 참여정부에서는‘존재하는 모든 것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나라의 근간을 흔들 기세여서 의료 문제도 이러한 개혁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