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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주고 받기'cycle

  • 입력 2006.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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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좋든 싫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며 또한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관계에는 혈연으로 맺어지는 관계도 있고 지연, 학연 또는 사업상의 만남일 수도 있다. 동양에서 關係란 "서로를 묶어 빗장을 채운다"는 뜻이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사이라는 의미다. 그러자면 내가 상대의 위에 올라가서 맞물려야 하느냐 아래에 있어야 하느냐를 결정지어야만 마찰이 없다. 즉 둘 사이의 hierarchy가 빨리 정립이 돼야 순탄하게 관계가 맺어진다. 그렇다면 서열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까? 만남의 성격에 따라서는 학식의 정도에 따라 가늠이 되기도 하고 富의 정도가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서열을 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단연 나이가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로 길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나 운전자들 간에 싸움이 붙었다. 서로의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해결이 잘 안 나면 엉뚱하게 튀어나오는 말이 "당신 나이가 몇 살이야? 너만한 아들이 있다", "나이 값을 하라"는 등 사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번지게 되는 것을 쉽게 본다. 즉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 너보다 위인데 니가 왜 나에게 함부로 하냐는 뜻이다.부부관계에서도 결혼을 하고 나면 처음 얼마 간은 부부 싸움이 잦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서로를 제압하기 위한 기 싸움의 성격을 띤다. 즉 누가 누구 밑으로 들어갈 것인가다. 이것이 대충 결정이 되고 타협점을 찾으면 그 때부턴 가정의 평화가 온다. 그러나 서로 위에 서겠다고 끝까지 싸우면 갈등의 연속이다. 이렇게 관계의 hierarchy가 정해지고 나면 그 때부터 서로 편해진다. 주고 받음(give and take)은 관계형성의 키워드 그 다음으로 관계형성에서 중요한 것이 주고 받음(give and take)이다. 인류학에서 쓰는 용어로 prestation cycle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 사이에는 뭔가 항상 주고 받음이 연속된다는 뜻이다. 주고 받음의 대상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내가 저 사람한테 뭔가를 주고 있는데 상대로부터는 받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사제지간에도 제자는 배움을 받고 스승은 보람이라는 반대 급부를 받는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가 정성을 쏟는데도 자식이 나 몰라라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거꾸로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이나 관심이 부족하면 또한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을 때는 누군가 한쪽에서 되돌려 주기 사이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영어로 관계는 relation 이다. 이 단어는 동사 relay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일방이 아닌 한 사람이 주면 다시 다른 사람이 받고 다시 상대에게 주고, 즉 핑퐁 게임과 같은 개념이다. 10을 받으면 10을 주고, 5를 받으면 5를 주고, 안 받으면 안 주게 된다. 즉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만약 주위의 내가 맺고 있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우선은 내가 지금 나의 역활을 잘 하고 있나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관계는 유기체와 같이 항상 변화하며 움직인다"이런 개인 간의 개념을 확대해석해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과 견줘 보면 상대세력 간의 관계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존의 어느 정도 확립돼 있던 정치세력 간의 hierarchy가 붕괴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면서 기세를 잡기 위한 정계개편이 일어났다. 그동안 소외됐고 비주류에 묻혀 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구 세력의 저항이 만만할 리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결국엔 서로 수긍할 수 있는 질서로 재편될 것이다. 또한 prestation cycle을 잘 지켜 나가지 않고 정당 간의 협상이 잘돼갈 리 없다.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남의 주장도 들어줘야 하며 양보를 해줘야만 그들이 말하는 상생의 정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 간에도 적용된다. 새 정부 들어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여기저기서 잡음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전에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많았다. 그러나 냉험한 국가 간의 이익다툼에서 일방적 도움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로부터 얻는 이익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우리가 그들로부터 얻고 있는 유무형의 이익은 간과하려 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만 강조할 뿐 자신들이 냉전의 이데올로기에서 얻는 반사이익은 감추려 한다. 서로 일리는 있지만 이렇게 해서는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 두 나라 간에도 이럴진데 하물며 6자회담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여섯 나라의 이해득실이 맞아 떨어지려니 타결이 쉽지 않음이 당연하다. 지금은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돼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좋든 싫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이 항상 변화하며 움직인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서먹하다면 일단 내가 줘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의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뭔가 돌아와야 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지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