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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때문에 고민인 자녀가 있다면

  • 입력 2016.10.17 16:47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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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학교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인 학생들이 나를 찾아오면 우선 예습을 권한다. 무조건 예습을 권하는 건 아니다. 우선 내 경험을 얘기해준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배우기에 아주 어려운 언어다. 우선 글자부터 힘들다. 그리고 문법이 아주 복잡하다. 수도 단수, 중수, 복수가 있고 격도 8격이 있다. 수와 격마다 어미가 다 다르다. 물론 처음에 바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두 번을 실패하고 세 번째에야 배울 수 있었다. 두 번 실패 후 세 번째 성공했던 이유는 바로 예습 때문이었다. 어려운 공부일수록 예습이 필요하다. 예습의 위력을 알게 되자 초기 불교 경전 결집에 사용된 빨리어도 쉽게 배웠다. 내 경험에 의하면 예습을 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예습을 하기 전에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당연히 가르쳐 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습을 해보면 선생님이 이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학교에 가고 싶어진다. 예습을 해보면 배우지 않았지만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예습을 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으면 예습을 할 때 이해가 된 것은 더 확실해지고 몰랐던 것은 풀리게 된다.

수업을 듣고도 모르면 질문을 하게 된다. 선생님과 무언의 대화가 오고간다. 수업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복습을 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학교생활이 즐거워진다. 당연히 성적도 오른다. 생기가 있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인상도 좋아진다. 선생님 눈에도 든다. 복습은 주로 주말에 하는 것이 좋다. 주말에 넉넉히 시간이 있을 때 하고 모자란 것은 해당 수업이 들기 바로 전날 보면 된다. 예습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 좋다. 연습 문제가 있으면 가능하면 풀어보는 것이 좋다. 철저하게 안 해도 된다. 예습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게 예습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에 대학원에서 한 학기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 강의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예습을 시켰다. 예습에 대한 내 경험을 이야기한 후에 수업을 하기 전에 배울 내용을 미리 읽어오라고 했다. 그 대신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예습을 하는 대신에 시험은 치지 않겠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을 보고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사심에 입각하지 않고 학생들을 열심히 살펴서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리포트를 내라고 했다. 세 가지 항목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첫 번째는 다 읽었는지 아니면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적으라고 했다. 세 번째는 질문할 내용이나 수업 시간에 같이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적으라고 했다. 물론 대학원 수업이고 세미나 수업이니까 이런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한 학기 강의를 마쳤다. 나도 만족스러웠지만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예습이 인생을 바꾼다
사실 예습이 내 인생을 바꾼 큰 경험을 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그 당시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정신 치료를 하고 불교 공부, 수행을 하고 난 뒤에 과거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 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수학에 대한 오해였다. 나는 내가 수학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학을 못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을 못했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에서 몇 등 이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른 과목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학 성적이 안 좋으면 평균 성적이 어느 수준 이상 나올 수 없었다. 수학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갔고 고등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는 어려운 과목이 없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수학이 어려웠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는 산수라고 하고 중학교부터 수학이라고 해서 수준 차이가 많았다. 수학은 중학교에 가서 처음 배웠다. 그 당시 처음 배우는 수학이 어려울 때 자동적으로 ‘나는 수학에 소질이 없어. 나는 수학을 못하는 애야’하고 나 자신을 단정 지었다. 그러고는 내가 왜 수학을 못하는지,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도 하지 않았고 주위의 도움도 많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는 1960년대 후반이라 우리나라가 살기에 어려운 시절이어서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과목은 열심히 하고 수학도 기출문제를 철저히 풀어 고등학교 입시는 무난히 통과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서도 반에서 몇 등 이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대학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수학은 언제나 풀리지 않은 문제처럼 나에게 숙제로 남아있었다. 심지어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나를 닮아 수학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걱정을 했다. 아이들에게 수학이 어렵지 않느냐 하고 물어보면 전혀 어렵지 않다고 대답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딸은 수학을 아주 잘해서 ‘이상하다. 나를 닮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평생을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불현 듯 떠올랐다. 내가 수학을 못한 것은 예습 때문이었다. 영어를 잘한 것은 영어를 예습한 결과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것은 내 친구와 둘이서 영어 공부 책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공부한 것이다. 그 친구 이름도 기억이 나고 그 영어 책 이름도 기억이 난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고 난 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대략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 영어 책을 구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재밌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수학은 전혀 그런 준비 없이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니 영어는 쉽고 재밌는데 수학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수학은 예습을 하고 영어는 예습을 안 했으면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수학은 초등학교 때 산수를 했으니 조금 어렵긴 해도 할 만한데 영어는 처음 배우는 것이라 나에게는 안 맞아. 나는 외국어에 소질이 없어’ 물론 둘 다 예습을 안 했으면 둘 다 못했을 수도 있다.
예습은 이렇게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예습을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것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사는 것이 참 피곤하다. 나는 정신과 의사인데 환자 보는 것이 싫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지겠는가? 그처럼 학생은 주로 하는 일이 공부인데, 말하자면 직업이 학생인데 공부가 재미없으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예습이다.

공부 잘 하는 사람 보고 배우라
학습과 관련되어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중·고교 동창생 이야기다. 이 학생은 공부를 아주 잘했다. 항상 전교에서 1등이었는데, 2등과 격차가 크게 나는 1등이었다. 중·고교 내내 그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도 최고성적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2학년 때 이 학생과 같은 반이었는데 키가 비슷하여 자리가 가까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면서 얼핏 보니 사회 시간이 끝났는데 사회 공책에 영어가 잔뜩 적혀 있었다. 그 당시는 왜 사회 공책에 영어가 적혀 있지 하며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 뒤에 의문이 풀렸다. 그 친구도 하루 24시간이 있고 우리도 24시간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공부를 아주 잘 했다. 이유가 있었다. 사회 공책에 영어가 잔뜩 적혀 있는 것이 그 비결 중 하나였다. 아마도 이 친구는 사회 시간에 영어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했을 것이다. 사회를 영어로 society로 적으면서 따로 영어를 복습할 필요가 없게 그 시간에 영어 복습을 했을 것이다. 여러 과목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효과적으로 공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몇 년 전에 고교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에 가서 이 친구에게 이것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기억이 안 났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게끔 연구를 하거나 주위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예습도 그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