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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에서 벗어나자

  • 입력 2017.02.13 15:28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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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과 우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교한다. 비교는 흔히 두 가지인 줄 아는데 세 가지다. ‘나보다 낫다’, ‘못하다’ 그리고 ‘같다’이다. 사람들은 낫다, 못하다 하는 것만 비교인 줄 안다. 그러나 같다도 비교다. 엄밀한 의미로 같은 것은 없다. 다르다. 그런데 비교의 결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 가지 비교는 다 감정적인 반응을 수반한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여유도 생긴다. 내가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움츠러들고 기분이 나쁘고 기가 죽는다. 같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때로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같아서 안 될 사람이 같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비교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활력소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비교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비교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마치 공기처럼 자동으로 일어난다. 비교가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교는 괴로움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실제를 못 보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편안하고 행복하려면 비교가 없어져야 한다. 비교가 있는 한 언제나 힘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비교는 알게 모르게 장애를 가져온다. 비교에 취해서 산다고 볼 수 있다. 비교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비교가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지를 보자. 그것을 보면 비교에서 벗어날 길도 보인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동으로 비교를 한다. 비교를 하는 조건이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인식하고 비교를 하는 조건을 우리 속에서 없애면 자동으로 비교를 안 할 수 있다.


비교가 일어나는 조건

비교는 두 가지 조건 속에서 일어난다. 첫째는 비교는 나를 기준으로 일어난다. 내가 남과의 기준점이 된다. 나보다 크다, 작다, 많다, 적다는 판단이 일어난다. 둘째는 비교를 위해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취하거나 고정하여 어떤 것을 취하는 것이 일어난다. 먼저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취하는 것을 보자. 비교할 때 모든 것을 다 비교하지는 않는다. 비교하는 어느 하나를 취한다. 자기가 비교하고 싶은 것만 취해서 비교한다. 그러면 ‘너는 왜 그것만 비교하고 다른 것은 안하니’하고 남들이 반박한다. 다음으로 고정시켜 취한 것만 비교에 동원된다. 실제를 보면 고정이 없고 모든 것은 진행 중이다.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을 고정시켜 취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 직위가 비교의 대상이 되면 그 직위만 있다. 그 직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직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비교 대상에 들지 않는다. 타고 다니는 차면 차 종류만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 차를 구입하기까지 과정은 없다.
내가 기준이 되는 것과 많은 것 중에 어느 하나를 취하는 것 그리고 어떤 상태를 고정 시키는 것, 이 두 가지를 비교는 필요로 한다. 이 둘이 없으면 비교는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기준이 되지 않고 많은 것 중에서 하나를 취하거나 어떤 상태를 고정시켜 취하지 않고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나.


비교에서 벗어나려면 이 두 가지를 없애면 된다. 하나는 내가 기준이 되지 않으면 된다. 나와 관계없이 상대를 보면 된다. 내가 없이 상대만 있으면 된다. 남을 보는 순간 내가 없다고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로지 상대방만 본다. 그러면 상대가 잘 보인다. 내가 문제다. 나라는 잣대로 재면 비교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두 번째는 어느 하나를 취하지 않고 전체를 보거나 어떤 상태를 고정시키지 말고 과정으로 보면 비교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현재 어떤 상태가 벌어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과정이 있다. 그걸 보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남에게 왜 그런 일이 있고 나에게 있는 일이 왜 있는지 알게 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지혜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운 마음이 된다. 남의 어떤 모습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고, 같이 기뻐하게 되고, 같이 나누게 된다. 남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기보다는 같이 의논하게 된다. 이런 마음이 될 때 비교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없어진다. 비교에 가려져 실상을 못 보는 것도 없어진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는 비교를 없애라는 붓다의 말이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특히 초기 경전으로 분류되는 『숫따니빳따』에 비교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그 중의 한 경의 내용이 다음과 같다. 붓다가 말하기를 “사람이 ‘같다’하든가, ‘낫다’하든가, ‘못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때문에 다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에게는 ‘같다’하든가, ‘낫다’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숫따니빳따』「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 422쪽, 전재성 번역,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붓다의 눈으로 볼 때 비교는 실상을 보지 못하는 무지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작용하는 번뇌가 있는 상태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나 유한한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비교에 빠져서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비교는 경쟁심을 불러일으킨다. 경쟁심이 있으면 즐기지를 못한다. 힘이 들고 지친다. 과정을 중시하지 않고 결과만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를 찾지 못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만큼 경험하고 인생이 풍부해지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긴 마라톤에서 지쳐서 경기를 포기해야 한다.


비교는 실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면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데 그걸 보지 못한다. 친척이나 친구가 잘되면 기분 좋고 축하해주기보다는 그 사람은 잘되는데 나는 뭐냐 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많다. 남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마음을 보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비교의 마음이 들어있다. 비교의 마음이 없어져 실제를 보면 남의 성공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기뻐서 축하하게 된다. 가까운 사람이 성공하고 잘되면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자. 나에게 좋은 일이 여러 가지가 일어난다.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올리는 일이다. 못하는 사람을 아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을 아는 것도 내 능력이다. 내 친구가 또는 내 친척이 잘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 사람들이 나를 빛내준다. 그러니 고맙고 잘 된 일이다.

두 번째로 좋은 것은 능력 있고 성공하고 잘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필요한 정보를 그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
세 번째는 그 사람들을 잘 보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내 약점을 점검할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 그것을 배울 수 있다.
네 번째는 잘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은 넉넉하니깐 뭘 나누어 줄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도와주지는 않아도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속담이 잘못되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밥이라도 한 끼 생긴다’로 바꾸어야 한다. 기존의 속담으로 인해 우리는 주위 사람이 잘되면 당연히 기분이 안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무지와 감정이 작용한 잘못 된 것이다. 우리는 자칫 세상일에 대해 감정으로 반응하기 쉽다. 실제를 보기보다는 내 생각으로 하기 쉽다. 속담이 이것을 조장하고 있다. 속담을 바꾸어 실상을 보도록 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이 안 되면 좋아하는데 그것도 실제를 잘 봐야 한다.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주식이 떨어지면 좋아하는데 실제 주식이 떨어져 기업에 돈이 들어가지 않고 경기가 위축되고 사회에 돈이 돌지 않으면 나에게 나쁜 영향이 온다. 내가 만약 장사를 하면 손님이 줄어든다. 실제를 잘 봐야 한다. 어떤 현상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봐야 한다. 요즘 미국의 부채가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미국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미국이 빚이 많은 것에 대해 좋아한다. 그런데 미국이 경제적으로 안 좋으면 우리나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생각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에게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산다면 성공하기도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