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전문가 칼럼 문국진
[Painting & Crime]유혹살인과 의거
구약성서 외경에는 아름다운 여인 유디트(Judith)가 조국을 구출하려고 자기 몸을 희생해 적장을 살해하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빌로니아 왕국의 침공을 받았는데, 이때 침략군을 총지휘한 사령관이 바로 홀로페르네스(Holofernes)다.
이웃나라들은 바빌로니아 군대에 모두 항복했으나 이스라엘만은 강하게 항거했다. 이에 화가 난 홀로페르네스 군대는 집집마다 쳐들어가 남성들은 살해하고 여성들을 겁탈했으며, 재산과 귀중품은 모조리 약탈하고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적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한편 유디트는 남편을 잃은 후 3년 상을 치르며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과부였다. 그녀는 용모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했다. 홀로페르네스 군대의 잔인무도한 행동을 들은 유디트는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남자들의 눈을 홀릴 만큼 몸단장도 요란스럽게 했다. 그리고 하녀를 데리고 적진을 찾아 나섰다.
유디트를 본 군사들은 한결같이 소리 지르며 미모에 감탄했다. 홀로페르네스 역시 난데없이 나타난 미인에 넋이 나가 그녀를 향한 욕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치솟는 욕망에 이성을 잃은 그는 낯선 여인에 대한 경계심을 내던지고 광란의 술 파티를 벌이고 여인의 체취에 취해 그녀를 자기의 침소로 끌어 들였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유디트는 하룻밤을 같이 지내기로 하고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권해 녹아떨어지게 했다. 기회를 잡은 유디트는 적장의 목덜미를 쳤고, 잘라낸 머리를 하녀에게 자루에 넣게 하고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지도자를 잃은 바빌로니아 군대는 전의를 잃고 달아났고, 이스라엘군은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줄거리에 흥미를 느낀 많은 화가들은 앞으 다투어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림은 화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표현에는 많으 차이가 있어 우선 세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그 표현이 어떻게 변천됐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L]틴토레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가 그린<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550)>를 보면 도저히 살인을 한 장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유디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데 그 옷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또 적장의 목을 베기 전에 자신의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이런 옷차림은 적장을 유혹하는 데는 효과적이라 하겠으나 목을 치는 작업을 하는 데는 거추장스럽게 보인다. 자른 목은 주의깊게 봐야 겨우 확인할 수 있으며, 목 잘린 적장을 시트로 덮어주고 있어 그림만 보고는 줄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2R]이탈리아의 여류화가 아르테미지아 겐틸레스크(Artemisia Gentileschi 1593~1623)는 카라바지오의 그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의 명암법 뿐 아니라 화면 구성법까지 답습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를 그렸는데 그림에서 적장은 등을 침대에 대고 누워있으며, 그의 머리는 화면 바로 중앙에 있다. 유디트는 두 팔을 끝까지 내밀고 있는데 이것은 온갖 힘을 다 모으기 위해서다. 적장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왼손으로 그의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려놓고 오른손으로 목을 힘 있게 자르는 장면은 보기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아르테미지아는 다른 화가와는 달리 매우 힘 있고 억센 여인상을 그렸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처지가 유디트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녀는 아버지의 제자인 화가 타시(Tassi)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데 타시가 청혼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지가 꺾인 타시는 그녀를 성폭행했고, 재판이 열렸지만 단순 폭행죄만이 인정되었다. 판결에 격분한 그녀는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던 원한을, 강하고 결단력 있는 유디트를 통해 그림에 나타낸 것이다.

클림트의<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
이처럼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의 폭발적인 호흥을 얻었던 유디트의 인기는 한동안 주춤하다 19세기에 들어서 다시 되살아났다. 회화와 문학 속에서 남자의 목을 치는 잔인한 여인이 다시 맹활약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유디트 설화에 가장 흥미를 보인 화가는 오스트리아의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였다. 에로틱 회화의 대가답게 클림트는 주제는 성서에서 빌려왔지만 분위기와 내용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형의 유디트로 표현했다. 즉 음탕하고 선정적인 요부형의 유디트를 그렸던 것이다.
그는 1901년과 1909년에 거쳐<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I>라는 주제로 두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I에서 유디트는 한쪽 유방을 드러내고 다른 쪽 유방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옷 속에 감춘 채 시선을 유혹한다. 파격적인 노출과 아슬아슬한 감춤의 미학이 걷잡을 수 없이 시선을 자극한다. 그녀의 왼쪽 겨드랑이 사이에 무참하게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보인다. 여인은 게스츠레 눈을 감고 저절로 벌린 입술 사이로 쾌락의 신음을 흘려내는 듯이 그렸다. 이런 모습은 나라를 구한 영웅적인 여성상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육제를 무기로 남자를 얼마든지 살해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림 II 유디트를 아득히 먼 구약성서에 나온 전설적인 여인이 아닌 밤거리에 득실대는 꽃뱀처럼 표현했다. 불룩 튀어나온 젖가슴, 어깨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옷과 예리한 무느의 곡선은 공포와 불안을 유발한다. 독기 어린 표정에다 갈고리 같은 손가락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잡아 쥐고 있어 마치 창녀가 어떤 이유로 화가 나 단골손님을 살해한 것 같이 보이고, 애국심에 불타 적장을 살해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이 그림에서 여인은 성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남성의 생명까지도 관장하는 절대적 지배자가 됐다.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힘은 역전되어 여자는 가해자이고, 남자는 비참한 희생자로 전락되었음을 표현하였다.
범죄사회학에서는 문화와 범죄를 중요시하는데 의거나 테러를 감행하는 측에서 위법이 아니고 오히려 미덕이라 주장하지만, 이를 당하는 측에서는 위법적인 범죄행위가 된다. 이러한 것을 문화갈등범죄(文化葛藤犯罪)라 하느느데 특히 점령과 피점령 당사국에서는 이러한 범죄가 더욱 심하고 노골화된다.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고귀한 동기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과정을 깊숙이 묻어 버리고 증오하는 남자와 살을 섞어 안심킨 다음 상태를 살해한 여인의 속셈은 영원한 의문을 남긴다.
유디트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남자를 살해할 의도적인 유혹에 이끌린 채 만족감에 젖은 무방비 상태의 남자의 목을 잔인하게 자른 데 있다. 성을 제공한 대가로 남자의 목숨을 가져간 무자비했던 유디트는 여자의 성적 매력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가를 여실히 말해준다.
[3L] 클림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II':1909,베네치아, 국립현대미술관











[4L] 클림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I':1901,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emddaily  emddaily@emddaily.com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mddaily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