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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바(Shiva) 신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

  • 입력 2017.03.30 17:12
  • 수정 2018.03.23 11:43
  • 기자명 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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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동장군의 녹슨 투구에 성애가 시퍼런 2월 초 초저녁, 두꺼운 파커의 뒷깃을 추켜올려 자라목인양 쏘옥 집어넣으면 어울릴만한 차갑고 창창한 날씨다. 다섯 시간 반 남짓 비행하여 도착한 캄보디아, 인천공항에서 보았던 달과 별들이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으로 이어지는 씨엠립 공항의 하늘에서 격려와 환영의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열대림의 미로만큼이나 복잡한 그 옛날 동남아의 참혹하고 어두운 역사.

서로 빼앗고 뺏기는 땅의 전쟁에서 캄보디아의 고대 왕국이 타이로부터 승리하여 얻은 땅, 즉 '패배한 타이'를 의미하는 것이 씨엠립의 뜻이란다. 표현 방법부터가 우리와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같으면 '타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곳'이라는 표현이 익숙하겠지만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역사적 증거로서 강렬한 표현을 통하여 기를 죽여 놓는 것을 보면 단어 한 마디에서 문화의 차이가 느껴진다.  

이곳은 (사)경희국제의료 협력회의 스물한 번째 해외 의료봉사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인데, 천부의 빈곤이 있는가하면 멀지 않은 곳에 '앙코르 왓트'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원이 있는 곳이다.

구름같이 몰려가는 한국인 관광객들 틈바구니에서 비행기 표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탓에 일정을 한 달 가까이 연기하고, 참가 신청자의 일부에게 죄송한 양해를 구하여 결국 봉사대원의 수를 20명으로 줄였다. 표를 구하기 위하여 지인까지 동원하여 구매한 비행기 표로 겨우겨우 도착한 곳이다.

자기 돈 내고 봉사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인데 모두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마치 하늘의 뜻을 저버린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했다. 마침, 며칠 동안 연속으로 저가항공의 기체 결함 문제가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걱정 때문에 마음속이 편할 리가 없었지만, 길 떠나는 남편에게 부정 타는 이야기가 될까봐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는 집 사람의 마음을 유리알 같이 들여다보면서 조마조마함과 함께 타고 온 저가항공의 비행기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남방의 특유한 푹푹함과 찐득거림은 있었지만 새벽길을 달리는 동안도 그랬거니와, 도착 당일 서너 시간의 새우잠을 자고난 다음날 아침에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오히려 시원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높은 산의 아주 좁은 골짜기 마다 옹기종기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있다"라고 할 것 같다.

산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나라. 보이는 것은 푸른 논과 벌판 그리고 지평선이 전부다. 끝을 모르게 드넓은 평원의 평화로운 모습. 그러나 그 속에 말 못할 애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에 접해 있는 농촌지역에 차려진 진료소는 그래도 대학의 강당 같은 곳을 사용했기 때문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진료 환경은 좋은 편 이었다. 진료에 맞추어 밀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거 그 어느 곳과도 마찬 가지었다.

이제는 20여년의 해외 봉사에 이력을 좀 쌓다 보니까 진료를 하는 틈새 틈새에 이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얻어 갈까? 무엇을 배워 갈까하고 습관적으로 두리번거리게 된 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행위에 합리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산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예상 했던 것 보다는 위생상태가 상당히 좋다는 것이 놀랍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린이들은 의도적으로 구강을 한 명 한 명씩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의외로 썩은 치아도, 농이 낀 편도도 보이지 않아서 마음 속 걱정의 한시름을 놓았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 어린이들의 한없이 맑은 눈동자는 age of innocence라는 말에 걸 맞는 천사의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여러 가지 준비와 지원을 해 주신 분은 이곳에 여러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과 선교 사업을 하고 계신 김영옥 목사님 내외분이신데 이곳에 Cambodia Christain Sireysorphorn University라는 간호대학을 설립하여 총장님을 겸하고 계셨다.

이분들은 학생들과 함께 하찬캄(HACHANCAM)이라고 외치기도 하였는데 그 뜻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캄보디아”의 한글 첫 글자에 영어 철자를 차용한 것이었다. 통역을 담당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모두 이 대학교 학생들이었고 참 친절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를 좀 놀랍고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 학생들의 단체복에 새겨진 내용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체복 앞뒤에 우리말로 '고종황제 독도칙령 10.25 기념일'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이번에 특별히 만든 것이 아니라 이들의 평상시 단체복 이란다. 당연한 일이기에 무심하게 지내던 국내에서의 일상을 해외에서 갑자기 접하니까 가슴이 뭉클하여 Sroeung,Sokhoevy라는 통역 학생의 동의를 얻어서 촬영을 했다. 한국에 가서 기회가 되면 네 사진을 신문이나 잡지에 싣겠다니까 좋아 했다.
 
우리 팀이 수 백 명의 환자를 진료하던 어느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이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였다. 모든 의료봉사에서 가장 많은 환자 층은 70-80대 남자 노인들과 할머니들 인데 유독 이번 봉사 기간에는 남자 노인 분들이 없었다. 농번기 때문에 생긴 일인가? 하는 생각으로 통역 학생에게 물어 보았더니 오히려 내 질문이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며 들려주는 기막힌 대답은 “그들은 젊은 나이에 다 죽었지요, 그래서 못 와요”.

1975년부터 1979년 까지 4년간 캄보디아의 집권세력인 크메르 루즈 공산정권의 폴 포트는 “노동자 농민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지식인, 지식인 비슷한 사람 그리고 돈 있는 사람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자비하게 학살을 했는데 그때 희생된 사람들이 무려 150만명으로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25%가 희생되었단다. 도시와 시골이 따로 없이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이 사건은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로 우리에게 killing fields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경악과 분노를 사기지 못하게 한 것은 이렇게 처참한 죄악을 주도한 집단 중에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딱 3명이라는 현지인(확인 할 수는 없었음)의 설명 이었다. 아픈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학생에게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여하튼 이 나라는 지금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없어서 난리란다.

이 나라에 도착한 다음날 맑은 새아침에 품었던 알 수 없는 의문은 여기서 풀렸다. 그리고 엄습해 왔던 괴로움은 사람을 향한 인간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불과 며칠 안 되었던 기간이었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빈곤이 있을 수 없는 풍요로운 자원의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고, 천진한 어린이들이 달러를 외치며 외국인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봉사를 통해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 중에 하나는 이 모든 죄악의 단초는 추악한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의식이 없는 천진한 사람들은 그들의 권력욕 앞에서 죽창을 휘두르는 노예가 되어 자기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흥분과 광분 속에 날뛰며 무수한 생명을 앗아가는데 크게 앞장을 서는 악을 범하였다는 것이다.

권력에 몰입한 자들의 야비한 책략과 무식한 대중의 광분 속에 편안한 국민은 없다. 마지막 날 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주어진 반나절의 자유 시간에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인간의 잔혹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브라만은 창조를 통해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었지만 이 과분함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 인간을 망쳐 놓은 것은 시바신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의 야만성과 잔혹함이다. 남들은 앙코르 왓트나 기타 사원에서 신비와 경탄을 맛보았다고 했는데 왜 나는 한 순간도 경탄하지 못하고 입맛을 다셔야 했는지 많은 반성을 하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귀국선 저가항공 속에서 다짐하면서 이번 제 21차 해외 의료 봉사를 마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박한 그들에게 위대하신 절대자의 사랑과 관심이 듬뿍 내리길 기원한다.

글 - 경희대학교 의과대학교수 장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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