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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식으로는 1~4시기

  • 입력 2017.04.12 17:14
  • 기자명 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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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우선 어른들을 치료하는 일반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2년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만큼 어린 아이들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른들을 재는 잣대로 아이들의 행동을 지레 짐작하여서 판단하다가는 인정사정도 없는 자식, 앞날이 답답한 자식, 아무데에도 쓸데가 없는 자식 등등의 비난을 퍼부어서 아이의 자존심을 깎아내린다.

그래서 결국은 부모의 예언대로 사회의 실패자로 전락될 수가 있다. 나를 찾아오는 많은 부모님들께 나는 꼭 한 가지를 기억하시라고 신신당부한다. 지금 부모님이 보시고 있는 말썽장이 아이는 아직 완성품이 아닌, 초기 단계를 거쳐 가고 있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포유동물에게 모두 있는 감정뇌(번연계)는 배고픈 것, 몸이 아픈 것, 그리고 응급시에는 도망가거나 싸우는(fight or flight response)반응을 해서 생존을 가능케 한다.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에도 이 원시적인 두뇌 덕분에 살아남게 된다. 아기가 배고프거나, 몸이 아플 때 울어대는 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며, 아기가 화를 내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결코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작정한 행동이 아니다.

인간도 다른 포유동물(개, 사자, 사슴 등)처럼 스트레스가 있으면 fight or flight반응을 한다. 아기의 스트레스에는 아마 기저귀가 젖어있어서 기분이 나쁘다거나,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심심할 때 일 것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몸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 안에서도 생겨 날수 있다. 가령 이빨이 처음 나오려 할 때 등등.

우리의 이성적 사고를 가능케 하고, 공부를 하며, 계획을 세우고, 판단을 하는 두뇌는 머리의 앞부분에 있는 집행뇌(executive brain)이며, 출생 후부터 서서히 성숙해 간다. 갓 낳은 후의 첫 번째 해에 가장 많은 두뇌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머리의 크기도 출생 때보다 세배나 커진다.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고, 엄마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 내고, 기거나 설 수 있고, 드디어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한단어로 된 말을 시작하는 행동들이 두뇌의 성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두 살쯤 되어서 조금 더 발달되면,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뒤뚱거리며 걸어나가다가 책상모서리에 꽝! 부딪치면 아파서 울지만 그때 엄마가 소리 지른 책상이란 단어를 금방 배운다. 또 지나가던 누나가 많이 아파? 라고 따뜻이 안아주면 아이는 아프다는 말의 뜻을 알아낸다.

촘스키라는 언어학자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두뇌 안에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이처럼 주위에서와의 사회적 접촉이 없으면 언어 발달이 지연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말을 배우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 불란서의 어느 산속 짐승들 틈에서 자라난 소년은 인간 사회로 돌아온 후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을 배우지 못했었다. 따라서 아무리 머리가 좋게 태어났더라도 가족의 사랑이나 주위의 관심이 없다면 두뇌 발달에 지장이 온다.

세살쯤 된 후에는 대소변 가리기를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기저귀, 침대, 옷 대신에 변기에 가서 일을 보려면 우선 충분한 두뇌의 성장이 필요하다.

대개 두살부터 세살 사이에 훈련이 가능하지만 어떤 아이들(특히 남자)은 다섯살 때까지 기다려야 될 때도 있다. 집행두뇌(또는 전두엽)에서 우선 직장이나 방광에서 오는 자율신경계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변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잽싸게 옷을 벗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귀찮기 짝이 없는 이 일들을 아이가 열심히 하려는 이유는 엄마나 아빠의 칭찬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엄마가 동생이라는 적을 병원에서 데리고 와서 온 식구가 아기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다면, 아이는 공연히 심술이 나고 허전해지며 화가 난다.

감정뇌가 기승을 부리니 그동안 어렵게 배워두었던 것들도 힘을 못 쓰고 그만 바지에 실수를 하였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부모님이 화를 내실 거라 알고 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서 아는 데에도 오줌을 싸버린 것은 아직도 연약한 집행두뇌의 힘이 감정뇌의 노도같은 힘에 졌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오줌 싸면 나쁜 행동이고, 엄마에게 야단맞는다는 믿음이 바로 그때쯤에 생겨난 양심이다. 요강 양심(chamber pot conscience)이란 말도 여기서 생겼다.

그러니까 세살 이전의 아이에게서는 양심이라는 고도의 두뇌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셈이다. 0~3라는 시기를 요즈음 사회나 정치 교육계에서 많이 떠들어대는 이유는 이 3년 동안에 아이들의 두뇌 성장, 언어 발달 그리고 감정조절의 첫걸음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현명하게 엄마 뱃속에서 자란 나이를 감안해서 탄생시에 한살이라 했으니 한국에서는 1~4시기라 불러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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