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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화 작가의 북촌 까페

  • 입력 2017.04.13 17:28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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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북촌에 가면 
까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흐려진 인물들
마주앉아 따뜻한 입김을 내 뿜는 찻잔을 들고 있네
창가의 식물들도 없는 귀를 기울여 듣고 있네

Take out Americano Caramel Macchiato Capuccino

비오는 날 북촌에 가면
밝은 불빛이 창밖을 내다보네
유리벽에 그려진 거미줄에 맺혀있는 것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고
추억의 사진들
불빛을 되비치며 한 번 더 흐려지네

밝고 따스한 북촌 까페

후배 이비인후과 의사 중에 사진작가가 있다. 미친듯이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이런 표현은 듣기에는 거북하지만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비가 오면 비오는 풍경을, 눈이 오면 눈이 오는 풍경을, 그것도 어느 산사의 눈 오는 풍경을, 구름이 끼면 구름을, 그것도 노을로 붉게 물든 구름을 찍고 싶어 하니 깊고 깊은 예술 병이 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고, 그만큼 지극히 행복한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개원의들은 그저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고작가가 올린 페이스북 사진이 아련한 그리움 같은 감정으로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들었다. 비오는 날의 북촌 카페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들은 추억 속의 나의 모습이고 당신의 모습이고 그리운 내 친구들의 모습으로 느껴졌지만 너무 흐릿해서 나인지, 당신인지, 친구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어 보였다. 마치 꿈결 속 장면처럼 그저 그리운 이들이 모두 거기에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사진 속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물들은 서로 마주보며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기울이며 나지막히 조곤조곤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고, 창문 밖 창가에 놓여진 화분 속 화초들도 그런 분위기에 함께하고 싶은지 빗방울이 맺힌 잎사귀들을 늘어뜨려 마치 고개를 기웃거리며 카페 안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어쩌면 작가의 시선을 대신하는 존재, 사진의 독자와 함께 카페 내부를 동경하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창가의 화초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유리창에 그려져 있는 거미줄은 마치 추억을 거미줄의 끈끈이로 잡아놓은 듯 한 풍경을 자아냈고,“Take out Americano Caramel Macchiato Capuccino”유리창에 써놓은 메뉴 글씨들도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보였다. 비오는 날 불빛을 뿜어내는 밝고 따스한 북촌 까페, 그곳에 가보고 싶다. 아니 그런 표현은 부족하다. 그 속에 살고 싶다. 그것도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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