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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 입력 2017.05.19 12:26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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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결혼식에 가려고
한복을 꺼내 살피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내는 속눈썹을 붙이고 싶다고 했다
퇴근하여 집에 오니
아내의 눈매가 검어졌다
속눈썹이 어떠냐고 살포시 눈을 감는데
아주 작은 깃털로 된 날개 한 쌍 생겨있다
아내는 멀리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사는 모양이다
신혼부부는 외국으로 여행 떠나고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 올 한 올 떨어져 나간 아내의 속눈썹은
어디로도 날아갈 수 없는 성긴 날개로 변했다

큰 형님의 막내아들 광의가 지난 2월에 결혼을 했다. 광의는 조카들 중에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나도 큰 형님을 닮았고 조카도 제 아버지를 닮았으니까 당연한 일이고, 그러니 작은 아버지라 불리는 것이다.

가족 결혼식에 갈 때 여자들은 대부분 한복을 입는다. 그것도 깔맞춤을 하여 비슷한 색조의 옷을 입는다. 어머니를 필두로 하여 큰 형수, 작은 형수, 아내, 제수씨 까지 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한복을 입었다.

조카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꺼내 살피다가 아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혹은 별 생각 없이 잔치 분위기를 살리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속눈썹을 붙이고 싶다고 했었다. 가족들의 말을 들을 때 생각에 사로잡혀 건성건성 듣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나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출근을 했는데, 퇴근해 보니 아내의 눈이 더 크고 검어진 듯 보였다. 굳이 속눈썹이 어떠냐고 눈을 감아 보여주었다.

뷰티 숍에서 수작업으로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접착제를 묻혀 속눈꺼풀에 붙이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속눈썹이 바깥쪽으로 휘어있어 작은 날개처럼 보였다. 없던 날개가 생겼으니 아내의 작은 꿈이 파닥파닥 멀리 날아갈 것 같아 보였다.

만약 날수 있다면 아내는 어디로 날아가고 싶을까. 멀리 날아가고 싶다는 것은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붙인 속눈썹 때문에 힘없는 남편의 자격지심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보이는 신랑 신부는 왕자와 공주처럼 보였다. 덕분에 큰 형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하루 동안이나마 왕족이 되었다. 어머니는 대왕대비마마가 되신 것이고 큰형님은 주상전하가 되신 것이다. 목동에 살고 있는 나는 木洞君이 되었고, 아내는 郡夫人 마님이 된 것이었다. 폐백실에서 신랑 신부의 큰절을 받고, 덕담을 해주고, 절값을 주고 즐거운 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반 백성으로 복귀했다. 

며칠 후 아내는 붙인 속눈썹을 떼려다가 원래 속눈썹도 뽑히는 느낌이 들어 그냥 두었다며 속눈썹 뗀 자리가 아픈데 어떻게 보이냐고 눈을 감아 보여주었다.  한 올 두 올 떨어져 나간 속눈썹들이 성긴 날개처럼 보였다. 그런 날개로는 멀리 날아갈 수 없어 내 옆에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도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멀리 날아가 버리고 싶어 한다는 생각도,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이래저래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내 자격지심이 제법 깊게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월간 웹진 청탁 원고로 보냈더니 삼월호에 실렸다.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고 정색을 하며 화를 낸다. 그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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