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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그림속의 그리스도 참수

  • 입력 2006.06.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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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폴로 작:'십자가를 운반하는 그리스도'(1737~1738), 베네치아,세인트 알비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로했다는 전설에 나오는 예루살렘 여성의 이름은 베로니카(Veronica)이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가톨릭의 기도문 '십자가의 길' 제6처에 나오는 '피땀으로 물들어 걷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군중 속에서 달려 나와 얼굴을 닦는 천을 바쳤더니, 예수는 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 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새겨져 나왔다.'라고 기록돼 있다. 즉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는 그렇지 않아도 채찍으로 맞아 고통스러운 몸을 힘차게 추스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때 한 여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나와 천으로 그의 땀을 닦아 주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고통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던 것이다. 곁에 있던 군인들이 그런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그렇게 힐난을 들으며 내쳐진 그녀는 그 정황 중에도 예수의 얼굴을 닦던 천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천을 펼쳐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천에 예수의 얼굴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티에폴로, 십자가를 운반하는 그리스도
이와 같은 장면을 그림으로 잘 묘사한 것이 이탈리아의 화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가 그린 <십자가를 운반하는 그리스도>(1737~1738)다. 십자가를 진 예수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지쳐 쓰러졌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졌으며 이마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다. 얼굴은 창백해져 탈진상태에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병사들은 십자가에 끈을 매어 끌며 예수가 일어설 것을 재촉하고 있어 많은 추종자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 가운데 그림의 우측에 한 여인이 천에 새겨진 예수의 두상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 여자가 베로니카이며 붓의 힘을 빌리지 않고 피땀을 닦은 수건에 기적이 일어나 예수의 초상이 수건에 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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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작:'성 베로니카(1577~1580),톨레도, 성 십자가박물관

16세기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앞서 베로니카가 들고 있던 예수의 초상을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해 <성 베로니카>(1577~1580)를 그렸다. 베로니카가 손수건 같은 천을 들고 있고 거기에 예수의 얼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믿음을 가진 성녀였기에 이렇듯 예수의 은총이 분명한 기적으로 그녀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이 기적의 선물은 그녀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거물로 영원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베로니카의 성안포(聖顔布, Sudarium)' 의 진실성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어쨌든 베로니카의 천 그림이 활발히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부터다. 이 천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고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라 할 수 있는데, 이 베로니카의 초상 그림과 유사한 전설이 여럿 있다. 즉 비잔틴의 아브갈 왕이 화가를 예수에게 보내어 초상을 그려 오도록 명령했으나 붓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화가는 누구보다 기량이 뛰어났으나 예수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모자랐다. 또 다른 일화에는 화가가 감히 붓을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수가 자신의 얼굴을 씻고 수건을 집어서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고 한다. 수건에 초상을 남겨서 화가에게 건네어 주었다는 것이다.
빌라도 문헌 '화금 전설'에 의하면 티베리우스 황제가 심한 병에 걸려 의원을 구하는 대목에서 베로니카를 언급한다. 못 고칠 병이 없는 명의가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을 듣고 황제는 볼루시아누스를 그곳에 파견했다. 그러나 이미 예수는 빌라도의 음모로 십자가에 매달린 다음이었다. 볼루시아누스를 만난 빌라도는 자신의 죄상이 밝혀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차에 볼루시아누스가 베로니카를 만나 예수 처형의 진상을 알게 됐다. 볼루시아누스는 황제의 병을 고칠 의원이 세상에 없는 것을 알고 실의에 빠졌다. 베로니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떠돌며 설교를 베푸시니, 저는 그분의 모습을 늘 가까이 뵙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여기 계시지 않더라도 뵌 듯이 위안을 받으려고 그분의 초상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그림 그릴 천을 들고 화가에게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나 뵈었는데, 저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길을 나선 까닭을 말씀드리자 주님께서 천을 보여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돌려주셨는데, 거기에 주님의 얼굴 그림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큰 권능을 가지고 있어, 그대의 황제가 경배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들여다본다면 병이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볼루시아누스는 금과 은으로 그림을 사려고 했지만 베로니카는 고개를 흔들며 이를 거절하였다. 신앙과 경배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그림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소용없기 때문이었다. 베로니카가 볼루시아누스를 따라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이를 잘 설명하여 황제가 이를 실천하자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베로니카의 수건 그림이 인간의 병을 고치는 첫 기적을 이루었다. 이렇듯 베로니카의 예수 상을 놓고서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많다.

베이덴, 책형(?刑)
베로니카의 예수 초상을 좀 다른 각도의 해석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다. 15세기 프란도르의 화가 베이덴(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은 삼연제단화(三連祭壇畵) <책형?刑>을 그렸는데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좌측의 여인은 막다라 마리아이며 우측의 예수의 성안포를 펼쳐들고 있는 여인이 베로니카이다. 막다라 마리아는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리고 향유가 든 석고 단지를 슬프게 내려다보고 있는 데 비해 성안포를 든 베로니카는 그 얼굴이 화사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감싼 흰 베일은 성모 마리아의 것과 같은 빛깔이고 모양이어서 두 사람의 친밀감을 나타내고 있어 이른바 덕(德)의 접근이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막다라 마리아의 경우는 그녀가 머리칼과 입술로 예수에 접촉해 직접성은 있었으나 그만큼 상실이 크며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억뿐이며 그 기억과 연계될 수 있는 것은 향유 단지뿐이기에 그녀는 수심에 잠겨 단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베로니카에는 움직일 수 없는 확고부동한 증거가 남아 있어 예수가 그녀에게 남긴 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자랑스럽고 행복하기 때문에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가 이 세상에서 행복감을 주고 간 마지막 여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의 해석을 은유적(隱喩的)이 아니라 환유적(換喩的)으로 배열해 해석하자면 예수를 둘러싸고 서 있는 여인네를 겹침이 없이 옆으로 연쇄해 생각한다면 혈액으로 연결된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즉 달거리를 하던 여인 성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면서 그 달거리는 멈추고 없어졌음이 분명하다. 순결무구(純潔無垢)의 상징인 흰옷이 달거리 때는 피를 담는 역할을 해서 이른바 '혈천(血泉)'이라 할 수 있는데 예수가 이를 멈춘 것이다. 즉 임신으로 생리가 멈추는 것과 같이 천을 매개한 남녀의 접촉으로 피가 멈춘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던 예수는 가시면류관에 의해 머리와 이마에서 흐르던 피를 베로니카가 내민 한 장의 천으로 닦음으로 멈추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베로니카 전설은 여성의 유혈(流血)로 시작돼 남성의 유혈로 그 순환을 멈추게 되는 철두철미 피의 순환을 둘러싼 이야기가 된다. 막다라 마리아는 이 이야기에는 관련이 없으며 단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다는 특권이 부여돼 있기 때문에 등장한 것에 불과하게 된다.
문제가 상징적인 레벨에서의 이야기라면 베로니카 전설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베로니카의 천에 예수의 얼굴만을 다른 몸에서 분리해 이를 특권화한 것은 천에 의한 일종의 참수(斬首)임에 틀림이 없다. 즉 베로니카의 성안포는 그림에 의한 예수의 참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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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덴 작:삼연제단화(三連祭壇畵) '책형(?刑)'(1445),비엔나, 큰스티스토리스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