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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숙 작가의 부귀영화(富貴榮華)

  • 입력 2017.06.21 16:53
  • 수정 2017.11.14 17:40
  • 기자명 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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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나기 집안의 공간에서 오는 아이와 어른의 책 놀이터!
집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철학이 있다.
그 위에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의 작품이 있다. 

▲ 전통적인 책가도(冊架圖) 형식과 현대적 책 읽기 경험의 만남

이지숙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테라코타 기법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부조(浮彫), 즉 테라코타 릴리프(Terracotta Relief)이다. 작가는 청자토나 분청토와 같은 흙을 매개로 거대한 도판(陶板)을 만들고 그 위에 또다시 흙을 덧붙이거나 파내어 입체감 있는 부조의 형식으로 기본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기본 형태가 만들어지면 흙을 건조 후, 가마에 들어갈 만큼의 크기로 분할 각 조각들을 1000℃정도에서, 구워진 조각들을 합판 위에 재구성하여 붙인다. 성형이 끝나면 구워진 도판 위의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겹쳐서 채색한다. 아크릴 채색 작업은 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강렬한 색채를 통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초미의 과정을 거친다.

작품은 액자와 같은 상태로 벽에 걸리기를 시도한다.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2차원적 평면을 벗어난 모두 흙으로 만들어내는 3차원의 입체 도자 조형예술품이다. 흙 판으로 만든 부조 형태, 이미지는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낮이를 가진 입체감의 음영이 주는 미묘한 감상 매력이 작품에서 온다. 작가의 작품은 이미지보다는 실물 자체로 시각, 촉각, 입체감을 직접 갤러리 공간 감상 그 이후의 그 감성을 공감할 수 있다.

흙은 작가의 원초적 생명의 근원이며 예술성의 본질이다. 땅의 영원한 고향이다. 그녀가 흙으로 만들어 내는 평평하면서도 입체감 있는 거대한 부조의 공간은 모두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책가도 형식을 차용하여 재해석한 형상들이다. 이 형상들은 전통 민화의 조형성과 작가의 삶의 내면세계 투영으로 재구성된 다원적 공간이다.

조선 시대 후기에 유행한 책가도란 “책거리 그림”이라고도 말하는, 책장에 책을 꽂은 상태 책과 주변의 꽃병, 가구 배열의 전통적인 그림이다. 책가도 그림은 대체로 18세기 후반 궁중에서 시작하여 민간으로 이어진다.

이지숙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책과 책장, 장식장과 꽃병, 과일, 그릇 등과 같은 소재는 민화의 책가도 그림에서 차용해 오고 있다. 작가의 책가도에서 주제는 “책”이다. 작품의 제목으로 치환되어, 작품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작가의 독서경험에서 직접 읽은 여러 책 중 선택되는 특별한 책이다. 작가가 읽은 책만을 주제로 책가도의 재구성이다. 백자항아리에 꽂힌 붉은 모란, 섬세한 나전칠기 가구, 책더미와 그릇, 과일 등은 독서를 통해서 얻은 작가 자신의 현대적 경험을 조형화하기 위한 시각적 보조 수단이다. 작가의 독서를 통해 획득된 내적 경험세계는 전통과 일상적 사물의 공간에서 시각화, 혹은 객관화로 타자의 경험적 공유를 시도해 오고 있다. 작가가 흙으로 만드는 이 현대적 “책가도” 는 바로 그녀의 삶이자, 예술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책가도 형식의 차용으로 현대의 디지털 문명에 살고 있는 자신의 삶과 예술가의 체계를 돌려놓으려는 에너지원이다.

민화에서 보이는 시각적 전통성의 차용을 통해 작가가 현대 사회의 일상의 모순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모란은 아름다움, 풍성함에 더한 일상의 행복,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전통적인 이미지로 또한 작가 자신의 삶에 내재된 예술혼이다.

▲ 모란꽃과 부귀영화

이지숙 작가의 모란꽃 작품들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 시대 속에서 변주되고 있는 것일까! 그녀를 조명 한다. 민화를 흙으로 빚어서 재해석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 도예가 이지숙의 작업 중에 둥그런 달항아리 백자에 꽂혀 있는 빨간 색의 화려하고 풍성한 모란!

모란(혹은 목단 牧丹)은 예로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부귀영화’, “부유하고 귀하여 영화롭게 빛남” 누구나 다 갖기를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꿈이다.

선덕여왕의 모란꽃 그림 스토리나 설총의 화왕계(花王戒) 등과 같은 스토리에서 또한 모란은 여왕, 혹은 꽃들의 왕으로서 왕권의 상징이라고 알려진다. 중국 당나라 때 양귀비가 모란꽃에 비유되는 문헌이 있다. 모란은 탐스러운 미인의 상징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탐스러운 모란꽃의 풍성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미술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고려 시대다. 당시에는 신하를 아끼는 왕의 마음을 모란꽃으로 표현하여 왕이 내리는 하사품에 모란꽃 문양을 새기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 시대에는 모란꽃의 의미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으로 확대되어, 왕실에서 행하는 국가 의례에서는 언제나 모란꽃 그림 병풍을 펼쳐 놓았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모란꽃을 부귀영화를 기원하기 위한 길상적(吉相的) 문양으로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수놓기도 했다. 민화의 소재로 차용했다. 서재에서 선비들은 공명과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경계하기 위해서 모란꽃을 자신들의 책가도(冊架圖)에 그려 넣기도 했다. 모란꽃의 상징성은 시대에 따라, 감상자에 따라 다양성의 변화에 전통적인 조형예술 속에서 변주되어 왔다.

▲ 작가의 시간 여행길에서 서서

그녀는 나선다. 예술가가 찾아가야 하는 부귀영화 예술적 난해의 길로! 긴 여정이다. 하루하루는 바뀌지 않는 듯한 시간, 어느새 변해버리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흐름 속에 존재하는 행복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놓쳐버리는 찰나이다. 작가의 붉은색 모란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 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그녀의 ‘부귀영화’이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견고하고 확실하게 지켜가기 위한 자기 마음의 굳건함이다.

“마음속에서는 수시로 울컥거림이 일어나고 슬픔에 젖은 눈물을 훔쳐내도, 여전히 작업 속에는 모란이 활짝 피어 있고, 함께 읽으며 쌓아둔 시간의 책들을 그려내고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파문(波紋)을 잘 견뎌내기를 바라며 나 자신의 확실성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녀의 작업일지 소고이다. 도시인의 호흡, 일상의 소소함이 기꺼이 나에게 다가오게 하는 일! 살아나가는 하루! 바로 그 순간에 오는 또 한 번의 붓질.

▲ 클래식(classic)과 모던(modern)의 예술적 변주
작가의 작업에 보이는 전통 이미지와 색채의 풍성함은 작가의 내면적 고뇌의 승화로 조형화된 현대적 예술 작업의 결과이다. 산업혁명 4.0 현대화의 속도는 인간의 정서적 측면의 변화 고려를 잃어버렸다. 전통을 부정하려는 탈피는 다시 전통적이며 전근대적인 사고 체계를 유지하는 모순된 모습으로 오고 있다. 이 모순은 더 극대화된다. 가족, 부모 세대와의 단절에서도 그것을 끊을 수 없는, 자식 세대와의 소통을 바라며 소통되지 않는, 피로사회 속의 행복함을 말한다. 현대 사회 모순성을 염려한다. 작가의 예술적 변주 그녀의 책가도와 모란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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