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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그 시절

  • 입력 2017.07.20 10:54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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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유니폼과 비슷한 디자인의 하늘색 줄무늬 티셔츠를 오랫동안 입었었다. 왼쪽 가슴에 랄프 로렌 폴로 상표가 붙어있는 티셔츠였는데, 젊은 아빠 시절에 큰 아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가족 앨범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족히 20년은 된 것 같다. 몇 년 전인가 그 옷을 입고 아내에게 물어보았었다.

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기억력이 유난히 좋은 아내에게 혹시 나와 큰 아이만 같은 옷을 입었었는지, 가족 모두 같은 옷을 입었었는지, 그 당시의 기억이 있는지 물어본 것인데, 돌아오는 대답은 영 달랐다.
“너무 낡았네. 이제 그만 입어요.”
가족의 복지를 담당하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대답이었고, 한편 생각하면 허를 찌르는  예상치 못한 신선한 대답이었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다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들도 역시나 특별한 감정을 담지 않은 평소의 말투로 배 부분만 볼록 표가 나는 것을 지적하며 너무 작아진 옷이니 흉하다는 반응이었다.

오래 전에 입던 옷이 계속 몸에 맞을 리 만무한 것이고, 기억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특별한 기억이 함께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추억의 패밀리룩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추억의 사진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 주고 있어, 사진 속 젊은 아빠 시절의 행복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며 이 시를 지은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장롱을 뒤져보니 그 옷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아내가 버린 모양이다.

요즈음도 제주도와 같은 관광지나 호텔 식당, 공항에 가면 커플룩 차림의 연인이나 신혼 부부, 가족들이 보인다. 다들 같은 옷만 입어도 행복해 보이고 행복 인증을 받은 듯 생각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리운 그 시절. 오래 오래 잊지 않겠지만 그 시절에 대한 작별인사는 해야겠지. ‘잘 가라, 그 시절’하고 작별인사를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니?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정말 돌아갈 생각이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면, 그냥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대로 지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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