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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물의 의인화로 미크로코스모스 표현

  • 입력 2017.07.20 10:53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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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화가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93)는 그림솜씨가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기상천외한 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에 신성로마제국의 페르티난도 1세, 막시밀리안 2세 그리고 루돌프 2세 등 세명의 황제에게 발탁되어 궁정화가로 활약하였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초상화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정물화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면서도 의미가 있고 흥미로운 표현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림을 그렸다. 즉 과일이나 채소, 꽃이나 나무들이 집합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것들이 모여서 사람의 얼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얼굴 전체가 과일, 채소, 꽃이나 나무로 구성되어 징그러운 면이 없지 않으나 그 의미가 이를 능가하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게 한다. 그의 사람 얼굴의 그림들은 한결 같이 이런 식으로 그렸는데 분명 화포는 2차원의 평면인데 그려진 과일이나 채소는 3차원의 입체처럼 보이는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자연산물을 의인화(擬人化)한 그림 중에서 ‘4계(四季)’와 우주를 구성하는 ‘4대 원소(물, 공기, 불, 흙)’를 의인화하여 연작으로 그렸는데 이 두 연작 그림은 서로의 의미가 연계된다는 점에서 그는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과학지식도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이렇게 ‘4계’와 ‘4대 원소’를 연작으로 그린 것은 황제를 찬양하기 위한 것인데 황제는 영토를 지배하고, 미크로코스모스를 지배하고, 사람을 지배하는데 미크로코스모스는 수많은 물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황제가 4계와 원소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원소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며, 해마다 틀림없이 찾아드는 4계절의 자연불멸의 섭리 모양 황제가 영원한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황제와 지배자들은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선호했으며 이를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주어 황제일가의 권위와 신망을 높이는데 활용되었던 것이다. 즉 이러한 그림을 선물하는 것은 예로부터 맺어진 친분을 돈독케 하는 목적과 또 한편으로는 새로 인연을 맺으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화가의 독창적이면서도 추(醜)에서 미(美)를 구하고, 미에도 추가 곁든다는 화가의 솔직하면서도 풍자적이고 농담 같은 표현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화가가 ‘봄’을 처음 그린 것은 1563년으로 이를 페르난도 1세에게 바쳤는데 그 그림에는 무수히 많은 꽃과 꽃 봉우리 그리고 잎으로 사람 얼굴을 형성하고 있다. 그림에서 거리를 좀 두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숙녀가 미소를 짓고 있는 듯이 보이나 거리를 좁혀 다가서 보면 피부나 머리칼, 의복으로 보였던 것은 착각이며 정밀하게 그려진 꽃잎과 잎 그리고 줄기임을 알게 된다.
피부는 희거나, 핑크색 꽃과 꽃잎으로 생생해 생기 넘치는 꽃으로 그리고 의복은 녹색 식물의 집합체이고, 코는 백합의 봉우리로, 귀는 튤립, 눈은 2개의 꽈리 열매와 그 꽃으로 그리고 옷 동정은 흰 꽃잎으로 하여 목과 의복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 그의 ‘4계’의 그림중의 하나인 ‘불(火)’(1566)은 그림의 밑 부분의 몸통에 해당되는 부위는 총과 대포로, 턱은 불이 점화된 램프대로, 수염은 불쏘시개로, 코와 귀는 불부시께로, 눈은 초로, 이마는 도화선으로, 머리는 장작더미로 표현하고 ‘불’이라는 제목을 부쳤다.

그의 상상력을 더욱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으로는 ‘사서(司書)’(1516)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 대해서 벤노 카이가라는 작가는 ‘사서’처럼 현대미술에 가까운 작품은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16세기 추상미술의 승리라고 하였다.

사서는 책을 정리하고 보전하고 열람에 관한 사무를 시행하는 도서관 직원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누가 보아도 고전주의적인 실사의 화법을 따른 것은 틀림이 없다. 얼굴과 온몸이 책으로 구성된 사서는 깡그리 마른 것으로 보아 춥고 배고픈 청빈한 사서임을 의미하며 이를 다소나마 위로라도 하는 듯이 사서의 좌측 어깨에 애정이 담긴 포구한 커튼을 덮어준 것에 화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 ‘법조(法曹)’(1566)라는 그림은 법조인을 풍자한 것이다. 머리와 얼굴은 프랑스 병(당시의 매독의 병명)으로 다 빠지고 망가져 얼굴 전체를 삶은 닭과 튀긴 생선으로 덮었으며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닭의 눈이 초상화의 사나이의 눈이 되고 있고 입은 생선의 입이 대신하고 있다.

몸에는 고가의 모피 코트를 입고, 배에는 서류 상자를 띠고 있으며, 가슴에는 귀중한 재판서류로 가득 차 있어 법조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재판은 기지와 이치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억울한 사람을 없애고, 법정에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되며, 상대의 주장에 흠집 내고 입장을 당혹스럽고 난처하게 만들어서라도 무조건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도덕에 어긋나는 짓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러한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재판을 자기주장에 유리하게 만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법조인도 있다는 것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다.

 

그의 생각을 표현한 대부분의 얼굴그림은 옆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플로라(Flora)’(1591)라는 그림은 전면의 그림으로 얼굴모습이 뚜렷이 나타나게 그렸다. 플로라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의 여신’이다. 따라서 꽃의 여신답게 균형 잡힌아름다운 모습을 여실히 나타내기 위해 얼굴을 전면으로 하고, 검은색 배경에다 얼굴과 목은 흰색과 핑크색의 보다 섬세한 꽃과 꽃잎으로 하여, 마치 얼굴이 어둠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이 표현하여 ‘꽃의 여신’임을 강조 하였다. 머리에는 화관을 쓴 것으로 하기 위해 빛깔 짙은 꽃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명암의 조화로 얼굴은 마치 빛을 받은 것 같이 보인다. 목 주위는 흰 꽃의 연계로 옷 동정을 삼았으며, 꽃의 수술을 다수의 노란색 점으로 표현해 활기를 찾고 있다. 검은 꽃으로 된 옷을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다산(多産)의 상징인 노란 나리꽃을 달고 있다. 화가는 자기를 어느 황제보다 더 사랑 했던 루돌프 2세를 ‘베르툼누스로 분장한 루돌프 2세’(1590)라는 화제로 그렸는데, 황제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베르툼누스(Vertumnus) 신(神)으로 분장한 루돌프 2세를 과일, 야채, 꽃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자연을 지배하였던 베르툼누스 신과 마찬가지로 루돌프 2세도 자연을 지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루돌프 2세로부터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에 감탄한 그의 친구이며 시인인 코마니니는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시로 예찬하였으며 카이가라는 작가는 코마니니의 시를 토대로 책을 펴냈는데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정확히 이해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시라고 극찬하는 한편, 시를 근거로 아르침볼도의 그림에 대한 철학도 기술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천지와 같이 사람은 물질로 빚어졌는데 식물과 동물은 불, 물, 대기 그리고 흙에서 생겨났다. ‘죽을 운명을 타고난 창조물인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불과 대기와 접하면서 살아야 하며, 이렇게 살다가 낡아지면 살아지게 마련이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신은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냈는데 그 종류와 모양 그리고 감각이 다른 종류의 생물을 종으로 하였다. 태고에는 모두가 야생생물이어서 생명 있는 것은 무엇이 든 간에 생물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을 갖고 그림에 임한 아르침볼도는 플라톤과 같이 인간, 동물, 식물을 우주의 구성단위로 보고 그 통일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