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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을 나누다

  • 입력 2017.08.17 10:12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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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개화산에서 송진을 긁어모은 적이 있다. 나무의 상처에서 스며 나온 것을 볼 때에는 소나무의 피인가 느껴지기도 했고, 작은 가지나 솔잎에 투명하게 맺혀있는 것은 삶에 겨워 흘리는 소나무의 땀인가 여겨지기도 했다. 계절에 따라 겨울을 준비하며 불필요한 체액을 버리는 배설물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오래된 상처에 굳어있는 것을 볼 때에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딱지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모은 송진 일부는 솔방울에 묻혀 진료실 구석에 두었다. 은은한 소나무 향이 실내에 퍼졌으면 좋았으련만 별다른 향기를 풍기지는 않았고, 코를 대고 향을 맡으면 겨우 느껴질 정도였다. 또 일부는 작은 주머니에 넣어 차안에 두었다. 자연 방향제로 쓰려고 했으나 역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부는 향낭에 넣어 형님께 드렸다. 받으실 때는 무척 반기셨는데 아마도 곧 쓸모가 없다고 느끼셨을 것이다. 아우가 하는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에도 기쁜 마음으로 응해주시는 형님의 정을 느꼈었다.

아들이 고시 공부를 하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개화산 전망 좋은 곳 큰 바위 곁에 돌탑을 만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 돌탑 근처에 작은 소나무, 때죽나무, 싸리나무가 있었다. 소나무야 척 보면 소나무지만 다른 나무는 꽃이 핀 후에 비로소 알아보았다. 돌탑에 돌 하나를 더 얹으려고 소나무 아래서 돌을 집었더니 송진이 손에 묻었다. 소나무에게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돌은 소나무에게서 송진을 얻었던 것이고,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 손에 묻은 송진도 돌이 나에게 거저 나누어준 것이다. 손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코에게는 잠시나마 향을 나누어준 것이니 그나마 작은 기쁨이 되었다.

그 소나무 근처에서 청설모가 오래된 솔방울을 들고 엉거주춤 어색하게 서있던 순간이 있었다. 솔방울을 주웠으나 소나무 열매인 솔씨는 실하지 않은데다가 얇은 막이 붙어있어 멀리 날아가 버리므로 먹거리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만약에 잣나무 열매를 주워들었더라면 쏜살같이 나무 위 안전한 곳으로 가서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내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 쓸모없는 바보 같은 시간들인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끼는 일, 희미한 향을 맡는 일, 돌을 주워 돌탑을 쌓는 일, 숲속 작은 동물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 꽃이 피고 지는 나무들의 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이런 일들은 삶에 필수적인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가끔 떠올려보면 삶에 무늬가 새겨지는 듯이 느껴지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밋밋한 삶에 무늬를 새겨 넣는 일, 가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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