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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라는 몸짓언어

춤이란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육체의 예술적 활동을 말하는데, 즉 인간의 육체를 표현매체로 삼아 사상, 감정, 감각, 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몸짓으로 일명 “무용 [舞踊, dance]” 또는 “무도(舞蹈)”라고 한다. 시와 음악이 시간 속에 존재하고, 회화와 조각이 공간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몸짓의 예술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계 최고(最古)의 예술이라고 하는 구석기시대의 서(西)사하라벽화 등에 이미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무용은 원시종교의식에서 발생했다고 하는데 자연의 재해, 죽음이나 기아 등과 같은 재앙과 액운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기원의식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와 내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은 스위스의 화가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의 ‘무한과의 교감’ (1892)이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다. 한 여인이 알몸으로 양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자세와도 같이 보인다. 여인의 머리는 언덕 위에 보이는 하늘 쪽을 향하고 있어 무한(우주)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실 인류가 처음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는 춤과 기도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춤이라 할 수 있는 몸짓과 동작을 취하게 된 것은 자기가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어떤 힘과 하나가 되거나, 그런 힘을 지닌 존재에게 자기의 소원을 기원하기 위해서 시작 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에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 중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솔직한 것과 정확한 것을 동시에 표현 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몸은 스스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바로 마음으로 만드는 몸짓, 즉 춤이 우리를 가장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춤은 본래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박한 생활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즐기는 춤과 보며 즐기는 춤으로 변천하였는데, 이러한 무용의 발전 과정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등의 문명 초기와 우리나라의 무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무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사람들이 집단으로 춤을 출 때 둥근 원형을 그리며 춤을 추는 소위 “원무(圓舞)” 또는 “회전무(回轉舞)”라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것은 지금의 기쁨과 행복을 원형과 같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지속 되였으면 하는 갈망에서 또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화합을 다진다는 것을 춤추는 사람들의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원무의 표현을 가장 신나고 활기차게 표현한 것으로는 바로크의 화가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즐거움의 춤’ (1630)을 들 수 있다. 복장으로 보아 시골 사람들인데 현실의 고단함과 근심을 잊고 어쩌면 자기 자신마저도 잊을 정도로 춤에 전신전력을 다해 몰두하고 있어 원무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재액의 근본인 악마를 쫓고 신과의 일체가 되는 황홀을 얻기 위해 대지를 밟는 무용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로 스페인의 춤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를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은 미국의 화가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엘 할레오, El Jaleo’ (1882)와 ‘플라멩코 무용수’ (1900~1901)이다.

‘엘 할레오’는 춤을 사랑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춤의 이름이며, ‘플라멩코’는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의 춤이었던 것이 스페인의 춤으로 정착되였다는 것이다. ‘엘 할레오’에서 춤을 추는 여인은 뒤로 재친 몸과 살짝 든 고개와 강하게 뒤틀어진 팔 그리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발의 모습이 무희의 능수능란하며 탁월한 춤 솜씨를 보여준다. 그녀의 발놀림에서 무대의 마루를 힘 것 치며 밟아서 나는 딱딱  터져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플라멩코 무용수’의 그림은 우선 여인은 정열적인 붉은 옷에서 풍기는 열기가 그림에 묻어난다. 양팔을 올리면서 한 팔은 허리에 한 팔은 하늘을 향한 뚜렷한 두 팔의 표현이 여인의 섬세한 몸짓을 보여주며 한쪽 발을 힘 것 올렸다가 내리치면서 대지를 밟는 역동적인 모습은 플라멩코의 가장 멋진 몸짓으로 신이 난 여인의 치맛자락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쳐내기 위해 그의 아버지(계부) 헤롯왕에게 선보인 요염한 춤을 7겹 춤이라고 한다. 즉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차근차근 요염하게 한 자락씩 벗어 재치며 사람의 얼을 빼내는 춤을 말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희곡 형식으로 쓴 단막극 ‘살로메’(1896)는 성서의 내용에 에로틱한 양념을 가미해 선정적인 러브스토리로 각색했는데,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살로메의 연정을 거부한 세례 요한을 증오한 나머지 잔인하게 보복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내용을 맞받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도 이에 가세하여 살로메를 연작으로 그렸다. 그래서 살로메하면 곧 모로를 연상하리만큼 그의 살로메 작품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작품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874)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나오는 ‘일곱 개 베일의 춤’을 추는 것을 그린 것인데 요염한 댄서인 살로메가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헤로데의 욕정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춤을 추기 시작한 살로메를 헤로데는 막강한 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듯 웅장한 궁궐의 옥좌에 앉아 내려다본다. 왕의 왼쪽에는 헤로디아 왕비가 춤추는 딸을 대견스럽게 지켜보고 그 앞에 루트 연주자가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음탕의 상징인 흑표범과 번득이는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가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화면 중앙에 화려한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살로메의 한 손에는 연꽃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뻗어 허공을 가르고 있다. 땀이 스며 나오기 시작해 빛나는 흰 피부에 거칠게 몰아쉬는 숨결로 부푼 가슴의 관능미는 벌써 노안의 왕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모로의 살로메에 대한 또 하나의 그림 ‘출현’(1876)은 살로메가 일곱 개 베일의 춤을 추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 이제는 나체가 되는 찰나이다. 그녀가 왼쪽 손으로 가리키는 허공에는 목이 잘려 피가 떨어지는 요한의 머리가 나타나 있다. 졸지에 억을 한 죽음을 당한 요한은 눈을 부릅뜬 채 사악한 요부를 노려본다. 살로메 역시 이에 질세라 표독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있는 요한을 향해 거칠게 손가락질하며 맞선다.

헤로데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여인의 등 뒤에 희미한 그림자로 남았다. 왕도 왕비도 망나니도, 살로메의 아찔한 성적 마력의 춤에 취해 한낱 배경을 장식하는 무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악마적이고 사악한 힘으로 충만한 여인의 춤은 남자를 압도해 한 남자는 애꿎은 죽임을 당하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여인의 강렬한 유혹에 빠져 그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수채화로 그린 ‘출현’의 장면은 요한이 참수 당하기 전의 장면으로 허공에 뜬 요한의 머리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망나니 등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幻視)현상으로 그린 것이다. 즉 얼마 후에 벌어질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살로메는 알고 이를 환시를 통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술적인 숙련도와 시각적인 볼거리만을 강조하는 폐단으로 말미암아 춤은 소모적이며 절실하지 않은 오락이나 장식적인 기능을 하는 차원에 머물렀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차원에서 벗어나 억눌려 있던 인간 정서를 표출시키고 영혼, 즉 본질적인 정서에 반응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하는 예술로 변하게 되였다.
 

문국진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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