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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음악, 사랑은 비를 타고

  • 입력 2017.08.22 13:51
  • 기자명 글 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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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여름’ A. Vivaldi(1678-1741)
    ‘Summer’ from The Four Seasons(Le quattro stagioni)
■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G. Rossini(1792-1868) ‘William Tell’ Overture
■  쇼팽 ‘빗방울 전주곡’ F. Chopin(1810-1849) Pre?7lude Op.28 No.15 ‘Raindrop’

우산을 펼치고 기다리는 우리의 비 음악

7월과 그리고 8월. 여름비는 우산을 쓰고 나가도 바람에 흔들리며 다가와 얼굴을 간지럽히는 빗방울들은 마음을 정돈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작곡가 중에도 비를 좋아했던 인물--그들은 인간의 마음이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을 갖고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이나 비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변하는 하늘의 모습, 비가 내리고 난 뒤의 풍경 등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본다.

우산을 소유하게 하는 음악
자연의 힘 천둥과 번개 영감을 준 멜로디


비발디 작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여름’

네 곡의 협주곡으로 이루어진 ‘사계’는 각 계절의 자연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들어 있으며 작품마다 악보와 함께 시가 쓰여 있다. 그중 ‘여름’의 1악장은 태양의 광활한 빛으로 타오르는 듯한 그 열기에 사람과 동물 모두가 지친 가운데 갑자기 몰아친 소나기를 맞는 것으로 악곡의 형식이 이루어져 있다. 느린 2악장은 파리와 모기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간간이 천둥이 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3악장에서 본격적인 폭풍우가 다가온다.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라는 속도 지시어가 붙어 있는 3악장은 촘촘히 붙어 있는 음표들이 쉴 새 없이 내리는 빗줄기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친 악센트(악보에 강세를 지시하는 것)들은 번개 치는 모습을, 곡의 마지막에 더욱 격렬해지는 음표들은 비가 우박으로 바뀌어 내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3악장 악보에 있는 시는 문학과의 조우이다.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 번개, 그 뒤에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던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시를 읽으면 그 묘사가 더욱 가치를 높인다.

오페라 서곡 중에도 비바람을 묘사한 곡이 있다. 로시니가 작곡한 ‘빌헬름 텔’ 서곡이다. ‘빌헬름 텔’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오스트리아의 압제로부터 독립하는 데 공을 세운 명궁 빌헬름 텔의 이야기는 희가극으로 성공을 거둔 로시니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발표된 심각한 오페라 곡이다. 그 당시 초연의 연주에서 오페라 자체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지만 앞에 연주되는 서곡은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된다. 서곡은 모두 네 부분 중 두 번째 부분이 ‘폭풍우’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스위스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 번개와 강한 비바람은 오스트리아 군대의 갑작스러운 침공을 비유하고 있다. 저음 악기들과 팀파니의 연주가 천둥을 묘사하고 플루트 음표들은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트롬본을 포함한 금관악기들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듯한 폭풍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혼란스러움은 지나고 다시 평화롭게 갠 맑은 하늘에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 멀리서 들려오는 유명한 스위스 병사의 행진곡이 시작된다. 서곡은 명랑하고 흥겨운 행진곡으로 이어진다.

-. 비 내리는 처마 끝에서  들리는 음악

피아노곡으로는 쇼팽이 만든 24개의 전주곡 중 15번째 곡 ‘빗방울’이 잘 알려져 있다. 앞의 두 곡이 무서운 폭풍과 비바람이었다면 이 곡은 조용히 내리는 비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악보에 옮겼다. 전반적으로 조금 느리게 연주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하나의 음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연주하는 모습이 똑똑 소리를 내며 일정하게 떨어지는 낙수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연주에서의 연주자와 청중의 무언의 긴장된 대화가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Description: 쇼팽이 폴란드 귀족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어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일정하게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했죠.

그 위에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과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며 중후한 컬러의 음색이 나온다. 그 후 한 차례 격정적인 장면이 지나간 후 빗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변하고, 작품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듯 종지를 갖는다.

-. 상드 우산을 내밀어 주다
   또 하나의 사랑, 쇼팽을 향한 구애

조르즈 상드(George Sand, 1804~1876년)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가 있었다.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 당대엔 흔치 않은 여성 작가로 그녀는 남장을 하고 시가를 입에 문 여걸이기도 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 안주인으로서의 삶은 포기했다. 남작과 헤어지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영어로 ‘조지’라고 하는 ‘조르주’는 남자 이름이었다. 당시 여성 작가들이 종종 했던 방식이기도 하고, 남성과 여성의 삶이 모든 부분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소신의 피력이기도 했다. 상드에게 6살이나 어린 연하의 피아니스트가 다가왔다. 피아노로 시(詩)를 쓰는 남자, 섬세하고 여린, 명주실같이 상처받기 쉬운 유리알 같은 남자 그는 ‘프레데릭 쇼팽(Fryderyk Chopin)’이었다. 1836년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 한사람이 또 한사람의 우산이 되어주다

상드의 열정적이면서도 모성애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으며 모처럼 깊이 음악에 빠져들 수 있었던 쇼팽은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생애두각을 내비치는 시기가 된다. 시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곡가! 아름답고 영롱한, 그리고 그 강한 정열과 사랑이 담긴 곡들이 작곡으로 이어졌다. 그런 어느 날 상드는 두 아이들과 외출에 나선다. 마침 비가 왔고, 홀로 집에 남아 있던 쇼팽은 촉촉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젖어들었다. Ab와 Gb 음이 교차하면서 반복되는 피아노의 선율이 마치 빗방울을 연상시키는곡 이곡. 후세 사람들에 의해 부제가 붙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Raindrop’ Prelude )’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의 단조로움으로 시작해서, 어둡고 묵직한 감정의 터널 속에서 이따금씩 세차게 퍼붓는 빗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아름다운 곡. 상드는 그녀의 ‘회상록’에서 빗방울이 단조롭게 내리던 마요르카섬의 깊은 밤, 쇼팽이 연주하고 있던 이 전주곡을 추억하고 있다.

-.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우산이 되어주는 그의 음악

이후 더 악화된 쇼팽의 병세 등 여러 어려움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난다. 그로부터 1년 후 쇼팽은 세상을 뜬다. 그런 쇼팽과의 이별을 상드는 후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죽을 때까지 쇼팽은 몰랐다는 것. 쇼팽과 상드는 행복한 사랑이 이토록 아름다운 결실로 남음을 세상에 음악으로 남기고있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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