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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전환 장애, 몸으로 표현되는 마음의 고통

  • 입력 2006.08.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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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L씨를 처음 만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종합병원에서 당직을 서다 응급실로 불려 내려가는 경우는 자살을 기도를 한 사람 아니면 급성 정신병적 발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L씨는 달랐다. 30대 후반의 여성인 L씨는 북적대는 응급실 침대에 조용히, 말 그대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대신 말을 거들었다. "얘가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온대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계속 말을 못 하네요."발치에서 얼굴이 벌겋게 된 남편이 걱정스러운 듯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신경과적인 확인은 이미 마친 상태였고, 뇌 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도 정상으로 나온 상태였다. 어머니나 남편 모두 L씨 때문에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목소리를 잃은 당사자인 L씨는 조용히 이 상황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전환 장애는 신경증적장애 가운데 매우 고전적인 것으로, 심리적 갈등이 신경계의 이상 증상으로 표현되는 병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신체화 장애와 전환 장애가 히스테리 hysteria라고 불리는 하나의 상태로 생각됐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hystera(자궁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1900년대의 이집트 의사들은 이러한 증상이 신체 내에서 자궁이 돌아다니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경계의 증상에는 감각 기관의 이상(예를 들면 눈이 안 보이게 되거나 감각을 잃는 것)과 수의 운동기관(voluntary motor system)의 이상(마비와 같은 증상) 등을 포함한다. 대개 사춘기나 성인 초기에 발병하며, 여성에게서 약 2~5배 많다고 한다. 사회 경제적 계층이 낮거나 농촌 지역, 저학력일 때 많이 관찰된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군인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L씨는 증상의 경과를 좀 더 관찰하기 위해 입원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비록 말은 못했지만 그녀의 의식은 매우 명료했다. 어떤 소리든 내보라는 요구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기침 소리는 낼 수 있었다. L씨는 입원 생활에 서서히 적응했고,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날 아침부터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을 만큼 의사를 신뢰하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입원 전에 뭔가 충격받은 일이 있었나요? 왜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셨을까요?"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했는데… 사실은 입원 전날, 우연히 남편이 낯선 여자와 통화하는 것을 엿들었거든요. 항상 무뚝뚝하게 할 말만 딱 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사는 동안 나에게는 한 번도 쓰지 않던 낯간지러운 표현을 늘어놓는 걸 들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남편이 눈치 챌까 봐 살며시 전화를 내려놓고 목욕탕에서 한참 울었는데, 나와서 말을 하려니까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남편은 처음엔 제가 자기를 약 올리는 줄 알고 화를 막 내다 나중에 내가 진짜 목소리를 못 내는 걸 알고서야 겁을 먹고 주춤하더군요. 그래도 그 사람, 내가 자기 전화 엿들은 건 생각 못할 거예요."전환 장애는 혼란스러운 갈등의 정신적 에너지를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신체 기능 장애라는 은유(隱喩)로 변화하거나 전환하는 것이다. 감각기관과 수의 운동기관의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서이며, 환자 본인은 증상의 의미를 모른다. 전환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성적, 공격적 본능의 충동을 경험하고 이를 억압하려는 과정에서 증상을 보인다. 억압 외에도 해리 같은 자아 방어 기제가 환자의 의식 바깥에서 활동한다. 무의식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L씨는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엿들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배신당했다는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L씨는 싸움을 싫어하고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기 어려워하는 다소 미약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보다 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남편에게 사실을 따지고 들었을 수도 있고, ꡐ더 확실한 증거ꡑ를 잡을 때까지 못 들은 척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여린 자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이 목소리를 마비시켰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녀의 몸이 L씨의 생각과 마음을 대신해 고통의 비명을 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발병 기간이 매우 짧아 수 일 혹은 1개월 정도 증상이 지속되다 소실전환 장애를 겪으면서 환자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익을 얻는다. 첫 번째 이익은 내적 갈등을 계속 겪지만 이를 깨달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환 증상을 경험하면서 환자들은 불안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것을 느낀다. 두 번째 이득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관심과 보호를 받고 사회적으로 곤란한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이다. L씨는 목소리가 안 나오는 증상을 겪으면서 자신의 심리적인 고통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느끼지 못하는 것을 그녀의 몸이 대신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것이 그녀의 1차 이득이다. 그리고 목소리가 안 나오는 증상을 통해, '아내가 무슨 큰 병이 생긴 거라서 죽기라도 한다면?' 하는 생각에 기겁을 한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제발 건강만 되찾아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등 그녀로서는 상당히 달콤한 2차 이득을 누린 것이다.전환 증상에는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기 쉬운 환경이 선행하는데, 급격한 분노나 충분히 표현되지 않고 뭉뚱그러진 애도, 성적 학대나 신체적 학대 같은 것이 그러한 환경에 속한다. 많은 수의 전환 장애는 발병 기간이 매우 짧아 수 일 혹은 1개월 정도 증상이 지속하다 갑자기 사라진다. 병이 갑자가 나타났을 때,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할 때, 병전 적응이 좋았을 때, 다른 정신과적 장애가 없을 때, 진행 중인 재판 문제가 없을 때 예후가 좋다. L씨와 같은 환자들은 일차적으로 철저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신과 의사가 앞서 진단을 내리는 전환 장애는 진단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한 번 검사를 받은 뒤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재검사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물처방도 될 수 있는 대로 제한적인 것이 낫다. 중요한 것은 정신 치료적 접근인데, 의사는 돌보는 태도로서 권위를 가지고 지지적인 정신 요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치료 방법을 사용해도 좋아지는 것은 비슷했지만, 권위를 가지고 접근하면서 환자의 정신 사회적 곤경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었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조심해야 할 점은 상상에 의해 생긴 병이라든가 하는 얘기는 상태를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환자로 하여금 정신 사회적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을 불러 일으켰다는 치료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우격다짐 식의 설명을 하거나, 환자와 전환 장애의 원인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 만일 환자가 좋아지지 않을 때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설명은 1) 장기간의 자기 검토를 요하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 2) 환자가 노력하고 있지 않다 3) 증상이 지나친 과자극과 피로 때문에 유발됐으며, 어떤 종류의 자극도 피하는 충분한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맨 마지막 견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환자에게 행동치료적인 목표를 가지고 실제로 깊은 쉼을 갖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때의 깊은 쉼은 독서나 TV 시청이나 다른 환자나 의료진과의 교류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치료는 절대로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매우 지지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러한 바탕 위에서 환자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도 서서히 증상을 소실하게 된다. 결국 가장 치료가 필요한 것은 환자의 병이 아닌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