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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 - 첫 번째 이야기

  • 입력 2017.09.12 14:59
  • 수정 2017.09.12 16:46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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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로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공감이었습니다. 공감은 정신치료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론 치료자가 환자에게 하는 ‘공감’을 말합니다. 정신치료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정신분석을 창시해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치료를 가능하게 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이후 많은 정신치료 학파가 나타났습니다.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 프릿츠 펄스(Fritz Perls)의 게슈탈트 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의미치료, 인본주의 치료, 도(道) 정신치료 그리고 최근의 마음 챙김 정신치료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정신치료의 형태가 있고 앞으로도 많은 정신치료 방법이 새로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정신치료가 있어 각기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지만 모든 정신치료에는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통되는 것은 어떤 방법을 쓰는 정신치료자든 환자에 대해서 공감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치료자가 공감 능력을 갖추는 것은 치료 능력을 갖추는 것과 같습니다. 칼 로저스(Carl R. Rogers)라고 하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 치료자는 어떤 심리치료가 효능이 있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갖추고 있는 치료자의 심리치료가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감적인 이해’, ‘무조건적인 수용’, ‘진실성’입니다. 여기서도 보듯이 성공적인 치료에 공감은 필수입니다.

공감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자신을 멈추고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put oneself into another’s shoes’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남의 신을 신고 먼 거리를 가는 것입니다. 공감은 동정과는 다릅니다. 동정은 나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안 좋은 처지에 대해 ‘안 됐다’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 느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감을 해 보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알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 추측하고 판단하고 선입견을 갖습니다. 그러나 공감을 하려고 노력해 보면 우리가 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대한 존중이 생깁니다. 그래서 남에 대한 선입견, 추측, 판단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고는 남을 유심히 보게 되고, 남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됩니다. 우리의 표정이나 말, 행동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이나 표정, 행동을 따라가면 마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이나 표정,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공감은 훈련입니다. 모든 훈련이 그렇듯이 훈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감은 사람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추측이나 판단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확실합니다. 추측이나 판단은 자칫하면 모래성이 될 수 있지만 공감을 통해 쌓아 올린 사람에 대한 이해는 견고한 성이 됩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

정신치료자는 공감을 통해 환자를 이해합니다. 치료자는 환자에게 항상 질문을 합니다. 질문을 통해 환자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게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에 대한 이해가 쌓입니다. 또 환자도 치료자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경험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가끔 “왜 이걸 몰랐지요.”, “아,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네요.”하는 말을 합니다.

치료시간에 하는 치료자의 질문은 환자로 하여금 중요한 것을 보게끔 하는 질문입니다. 환자는 자신이 중요한 경험을 해놓고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질문을 통해 그것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환자는 치료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훈련을 합니다. 자신을 보는 훈련이 잘되면 남이 나를 객관적으로 보듯이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정신분석이론에 의하면 자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입니다. 밥을 먹으면 그것은 경험하는 자아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먹는 행위를 관찰하면 그때 관찰하는 자아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자아가 작동하면, 행위를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말을 할 때 관찰적 자아가 작용하면 말을 잘못 할 때 고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신치료는 관찰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과정입니다. 명상을 해도 관찰적 자아가 발달합니다.

정신치료에서 공감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공감이 정신불건강과 정신적인 문제 그리고 정신장애의 발생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나 중요한 사람이 아이에게 공감을 하지 못할 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고 치료자가 환자에게 공감을 함으로써 치료가 된다고 봅니다.

환자는 치료자로부터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치료자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고 환자가 느낄 때,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길이 공감입니다. 치료자는 공감을 통해서 추측이나 판단을 하지 않고 환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치료자를 믿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치료입니다. 괴로운 일이 있는데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보니 가슴은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고 온몸이 아프던 사람이 진료실에 와서 자신의 고민을 시원하게 탁 털어 놓고 나서는 가슴 답답하던 것도 풀리고 속도 뚫리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정서지능

공감은 중요성을 밝힌 것은 정신치료가 세상에 한 기여 중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감은 치료실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인간관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중요한 인간관계의 열쇠가 되는 것이 공감입니다. 공감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와 저서가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라는 사람이 1995년에 쓴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 (국내에서는 『EQ 감성지능』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됨)이라는 책이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다니엘 골먼은 EQ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지금은 EQ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했던 실험과 연구를 종합하여 쓴 것입니다. 무엇이 공부를 잘하게 하고 인생에서 성공하게 하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실험과 연구가 있었습니다.

EQ 연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공감에 대한 연구입니다. 학생들, 회사원 그리고 결혼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한지를 관찰했습니다. 연구 결과 성공과 행복에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누가 성공하고 행복한지를 알아보려고 시행한 많은 실험과 연구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EQ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절제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었습니다. 얼마만큼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과 충동을 참고 뒤로 미룰 수 있느냐 하는 자기절제와 인간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공감 능력이 EQ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절제가 잘 되고 상대방에 대해서 공감이 잘 되면 EQ가 높은 것입니다. 공감 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고 선생님에게 호감도 받으며 학업성적도 뛰어났습니다. 공감은 인간관계의 근본이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 잘 모르면 그 사람과 잘 통할 수 없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잘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의 칼럼에서 ‘21세기의 문맹은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공감의 중요성이 알려지는 것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공감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친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행복은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려고 합니다. 공감을 통해 사람들이 뭘 추구하고 뭘 피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난 뒤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치 스텝이 잘 맞는 춤처럼 추기도 쉽고 보기도 좋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를 때, 특히 상대가 셀 때 두려움에서 방어적이 되기 쉽습니다. 공감을 통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알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를 잘 모르고 두려움에서 나온 말이나 행동이 상대를 자극하여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존중하고 자극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습니다. 공감을 통해 상대를 잘 파악하면 상대를 섣불리 자극하지 않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