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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기를 그친 아이

  • 입력 2017.09.13 16:00
  • 기자명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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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하게 생긴 소년이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서 나를 찾아왔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온 꼬마의 피곤함보다도 엄마 아빠의 표정이 더욱 안쓰럽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싶어서 데려왔다고 한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가끔 내쪽으로 눈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를 볼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냥 낯선 물체(?)가 불편하고 불안할 따름인 것이다. “나이가 몇 살이지?”하고 물어도 반응이 없다. 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기는 하다. 왜냐하면 불편한 몸짓으로 엄마에게 더 가까이 안기려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내지만, 결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장난감을 주어본다. 장난감 자동차나 비행기를 보고도 가지고 놀 생각이 전혀 없는듯하다. 세 살짜리 동생이 오히려 형의 손이 가기전에 장난감을 집어들고 논다. 소년은 같이 놀 기색이 전혀없다. 이 소년의 나이에는 친구나 형제들과 놀이를 즐기는 때인데...

놀지 못하는 아이는 나를 걱정스럽게 한다. 우울하거나, 발달 장애가 심한 아이일 확률이 크니까. 2살 정도까지 잘 크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말하기를 그쳤다는 부모의 말이다. 그리고서는 알고있던 단어들마저 조금씩 잃어가더란다. 아이는 가끔 ‘밥’, ‘엄마’, ‘아빠’ 등의 단어만을 급하면 사용한다고 한다.

그것도 엄마를 사랑하는 몸짓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엄마의 손을 잡아끌고, 냉장고로 가는 식에서나 쓰일 뿐이다. 그러니 엄마는 ‘밥 주는 도구’로만 느껴져서 서러워질 때가 많다.

친구를 사귀는데에도 별 관심이 없는듯하다. 가끔 비슷한 또래끼리 함께 있도록 해주어도 혼자서 놀 때가 많다. 사랑을 표현하는 몸짓도 없다. 그러나 졸리거나 속상할 때면 엄마를 찾고, 안기려 든다. 행여나 엄마가 없거나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를 벽에다 부딪친다.

가끔은 옆 사람을 차거나 소리를 지르며 운다. 우울증이나 다른 심리적 타격을 받을만한 환경의 변화도 없었다고 부모는 말한다. 광범위한 발달장애, 그 중에도 자폐증 증세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이 젊은 부부는 땅이 꺼질듯한 숨을 쉰다.

아마도 이미 각오를 한 진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의사들은 “그러다가 나아질 겁니다”라고 하며 “좀 더 관찰하고 기다리자”고 권고했던 것 같다. 2~3세 정도의 나이에는 나도 그런 충고를 할때가 있다.

특히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지를 가려내고 있는 과정에서는 말이다. 이 부모님도 그렇게 몇 년을 기다렸나보다.

아마 그리고 미국에 와볼 생각까지 했나보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이런 진단이 내려지면 곧 특수교육을 받을수가 있다. 3세부터 21세까지는 공립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치료해야만 하도록 법이 규제되어 있다. 그러니 조기 진단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즈음 미국에서는 ‘자폐증’ 진단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조기치료 혜택’의 이유만으로는 크게 늘어가는 자폐증의 추세를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원인은 ‘유전’이 주라고 본다. 과거에 비해서 부모들의 지식이나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에는 막연하게 정신질환이라고만 부르던 것으로부터 더욱 구체적이고 정확한 병을 식별하는 작업이 발달되었기 때문일까.
“이 아이도 정상인이 될 수 있을까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훌륭한 직장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인이 자신감을 느끼면 인생 항로를 열심히 헤쳐 나가고, 성공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마치 어떤 당뇨병 환자들은 병을 가지고서도 일반인들보다 더욱 건강하고 알찬 생활을 누릴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 사이에 잠잠해진 아이를 내려다보는 부모님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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