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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의약품 협상 '실리냐?', '명분이냐?'

  • 입력 2006.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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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의약품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영향으로 2년 연속 두 자릿수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8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적인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인 IMS헬스는 지난 3월 26일 2005년 한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7조8천900억 원으로 2004년도의 6조8천860억 원에 비해 14.6% 성장했다고 밝혔다.이는 2004년도 성장률인 13.5%를 넘어선 것이다. 지난 2003년도 시장 규모는 6조670억 원으로 전년대비 1.8% 증가에 그쳤던 것을 볼 때 국내 의약품 시장은 2004년을 기점으로 두 자릿수대의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고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너무 준비 없이 시행한 의약분업의 영향이 크다.미국이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험약품 선별등재 방식'(Positive List System)을 전격 수용했다. PLS란 약효를 인정받은 신약이라고 해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등재하는 의약품의 건강보험 선별등재 방식이다. 미국은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제2차 FTA 협상에서 이 시스템이 미국 제약업체 이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어 협상 자체를 보이콧 했었다. 양국이 회담을 재개키로 함에 따라 협상 전반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나 양국 간 의견 차이가 적지 않아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PLS를 수용하는 대신 협상 이행 여부를 감시할 기구와 양국 관계자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이의신청기구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이 PLS에 연연하지 않으리란 전망은 협상 초기부터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식 협상 장소에서의 '절대수용불가' 입장과는 달리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서 '협의해 볼 수 있다'는 시그널을 여러 차례 보내왔다"고 전했다.자국 제약업체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략적 차원의 반대를 견지했을 뿐 애당초 PLS 도입 자체를 좌절시킬 셈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관심은 처음부터 PLS의 세부 내용에 관심이 맞춰져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PLS을 도입한다는 큰 원칙만 나왔을 뿐 세부 시행방안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미국은 의약품, 의료기기 분야의 FTA 합의 이행여부를 감시할 공동 위원회 구성과 양국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의약품분야 별도 협상에서 미국은 큰 틀의 양보를 내세워 나머지 쟁점에서도 대폭 야보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협상 반대파들은 "의약품 포지티브제는 FTA 협상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2차 협상의 파행도 의도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왔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대로 미국 측이 포지티브제를 수용하면서 9월6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3차 협상에 앞서 싱가포르에서 별도 협상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 협상 반대파들은 미국이 당초부터 포지티브제 보다는 자국 의약품의 신약 특허기간 연장과 가격 인상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파해왔다. 포지티브제에 딴죽을 건 행동은 더 큰 성과물을 얻기 위한 협상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은 국내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카드로 , 미국은 실익을 거두기 위해서 각자가 포지티브제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이를 볼 때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포지티브제를 양보 받는 대신 다른 것을 내주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물론 복지부에서는 미국과 그같은 합의는 없었고, 세부 내용은 별도협상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미간에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수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그렇지 않다면 공개된 자리에서 협상을 하면 되지 의약품 분야만 제3국에서 막후협상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은 호주와 체결한 협상에서 최초에는 선별등재 방식 전환을 반대했지만 이를 수용하는 대신 특허기간 연장과 약가 결정과정에서 자국 제약사가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의기구 설치를 얻어낸바 있다. 복지부가 당초 포지티브제는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다가 이 문제까지를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포지티브 제도만 지켜내면 국민의 과도한 약가부담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듯 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정책성명을 낸 바 있다. 결국 미국의 포지티브제 수용으로 한미 FTA와 의약품 협상의 진도는 나가게 됐지만 의약품 분야만을 볼 때는 한국은 '명분'을, 미국은 '실익'을 챙길 공산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많은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경험을 갖고 있는 프로라면 우리나라는 겨우 칠레와 FTA 체결을 경험한 아마추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마추어가 프로와 협상하고 있으니 모든 현안에 아무 때나 끼어들곤 했던 시민단체들은 이번만은 좀 자중해 주었으면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익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무서운 나라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5년 전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잠시 여행한 적이 있다. 거의 공해가 없고, 깨끗한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을 겪으면서 잠시 여행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냥 그런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한국은 끊임없는 정치.경제적 논란 속에 색다른(different) 현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국가. 연 초에 본국으로 귀임한 데이비드 테일러 뉴질랜드 대사는 과거 3년10개월 동안 한국에 재임하면서 "한국은 놀랄 만큼 급속히 산업화한 국가"라고 정의하며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산업화가 크게 진전된 국가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으며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뉴질랜드 귀국 후 외무부 동북아 국장으로 일할 예정인 테일러 대사는 "한국과 뉴질랜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양국 경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한국은 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뉴질랜드는 교육 영화 관광 등에서 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도 말한바 있다.한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이념.사회적 Hot issue들로 시끄럽다. 이제 한국의 다른 이름인 조용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와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된 것 같다.그러나 앞서 말한 뉴질랜드 대사의 말처럼 한국은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발전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의약분업 시행처럼 엄청난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의약계 모두가 자신이 속한 분야의 얄팍한 이익에 얽매이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FTA협상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의협 회장이 회원들에게 가급적 중저가 약을 처방하도록 권장하고, 가칭 '약제비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약제비 절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 뜻을 헤아려 현명하게 처신 할 줄 아는 회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