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야단맞다

  • 입력 2017.10.17 17:12
  • 기자명 홍지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근하여 메일을 열어보면 삶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생활/경영/컨설팅 메일이 몇 통씩 와 있다. 한결 같이 좋은 내용들이지만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이고, 절실한 심정으로 대하지 않으므로 큰 감동이나 공감을 불러 오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다가도 간혹‘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라든가‘비교하는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없다.’라는 경구는 마음을 뒤흔든다. 내가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아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기 때문일 것이며,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질투와 부러움으로 불행감을 느끼는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원의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수십 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개원하고 있으려니 정말 재미없고, 환자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단골환자들은 단골환자대로 특별히 친근한 대우를 바라고, 젊은 사람들은‘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으로 클리닉을 찾는다. 자신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온 유료 고객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버릇없는 환자에게 야단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고, 개원의들은 동네에서 짜증쟁이로 소문나면 치명적이니 그저 꾹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렇다보니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떨 때에는 새처럼 훨훨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새들만 부러운 것이 아니다. 약한 바람에도 흔들흔들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마치 즐거움에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그 자리에 붙박여 꼼짝 못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사를 그저 묵묵히 견디면서도 저런 즐거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저런 모습이 바로 상황에 자신의 온 몸을 내맡긴 식물의 지혜인 것인지 그저 부럽게만 보인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도 특별히 돌보아 주는 이 없어도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 스스로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꽃을 피워낸 자랑과 영광의 모습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유력한 증거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부럽기 그지없다.

환자가 없을 때 무료하여 클리닉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 보인다. 스마트 폰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그들 모두가 부러워지며, 빈 클리닉에서 하염없이 환자를 기다리는 내 신세가 처량해 진다.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내가 몰라서 그렇지 저들도 나름대로의 고단함을 참고 사는 보통 사람들일 것이 분명한데 그들만 재미있게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바보스러운 것인지 물론 잘 안다. 바쁘고, 보람 있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생활만 바라는 것은 아주 고약한 욕심이라고 스스로 꾸짖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생활 바보라는 평을 듣는 내가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도 들어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