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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사 미륵부처님

  • 입력 2017.11.15 10:20
  • 수정 2017.12.18 15:22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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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광화문으로 가족 나들이 갔다가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조계사에 들렀을 때 아내는 처조카들 수능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국화꽃을 올렸다. 처남의 아들과 처제의 딸을 위해 올린 것이다. 조계사 대웅전의 금동불상은 너무나 커 감히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고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경내에서 향을 피우고 탑을 돌며 합장 삼배만 하고 왔다.

가끔 들리는 개화산 약사사 대웅전에는 부처님도 모셔놓았지만, 작은 체구의 여러 보살들도 함께 계신다. 각각의 보살님 앞에 이름표까지 달아놓았고 가장 중심 위치에 돌부처님이 서 계신다. 보현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문수보살님들이 각각 맡으신 특별한 임무가 있으시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계시지만, 가운데 우뚝 서 계신 돌부처님이 단연 눈길을 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40호로 지정된 약사사 석불로, 고려말 혹은 조선 초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적어도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계신 셈이다.

투박한 질감의 돌부처님이지만, 법의를 걸친 옷자락까지 표현한 주름이 보이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꽃 한 송이를 들고 계신 것으로 보아 미륵부처님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맷자락 근처는 낡아 허옇게 변색되었고, 오른쪽 어깨에는 금이 가 있다. 부처님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실 리는 없고, 불자들이 수백 년 동안 찾아와 소원을 빌며, 꼭 들어달라고 간청을 하며 무거운 짐을 얹어드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다행스럽게도 소원이 이루어졌고, 요즈음도 가끔 약사사에 들르면 감사의 불공을 드리며 돌아가신 아버님과 장인어른의 극락왕생과 남아있는 가족 모두의 건강을 빌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표정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다. 너의 소원을 내가 들어준 것을 잘 알고 있지? 하고 찡긋 눈빛을 보내주셨으면 좋으련만, 마치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 계신다. 중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세히 보시려는 것 같기도 하고, 들어 주어도 들어 주어도 끝이 없는 중생들의 욕심스런 소망에 눈이 휘둥그레지신 듯도 하다.

오늘 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자 55명이 발표되었다. 아들이 수년 동안 준비하던 시험이므로 이제는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간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부모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경험해 보았던 심정이므로 남의 일 같지 않은 탓이다.

올해 수능 시험일자는 11월 16일 목요일이라고 한다. 수능 날이 다가오면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부모님들로 개화산 약사사는 붐비기 시작한다. 중년의 가장 절실한 소원 중 하나가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일 것이다. 자식들의 입시가 뭔지…

마침 국화꽃이 피는 계절을 맞아 부처님께 꽃을 바치며 간절히 소원을 비는 분들이 많다.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 주위에 가득한 작은 화분마다 소박한 글씨로 써넣은 소원 표찰이 꽂혀있다. 건강기원, 과학고 합격기원, 결혼 기원, 수능대박 기원, 취업기원 등 예측 가능한 세속의 소원들이 꽃과 함께 활짝 피어있다. 오늘도 돌부처님은 무념무상 무표정으로 속세에 가득한 중생들의 소원을 굽어 살피며 들으시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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